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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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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드루엥(Joseph Drouhin) 네고시앙에서 만든 뫼르쏘(Meursault) 이번 주 토요일에 소개하는 와인을 잘 읽으려면, 다음의 지도가 필요하다. 지난 주에 이어 계속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 와인을 소개하고 있다. 이 지역의 와인 주요 산지는 위의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북쪽에서부터 샤블리(Chablis), 꼬뜨 도르(Côte d'Or), 꼬뜨 샬로네즈(Côte Chalonnaise), 마꼬네(Mâconnais) 지역으로 이어진다. 지난 주에 우리는 꼬뜨 도르 중에서 북쪽의 꼬뜨 드 뉘이 지역을 살펴 보았다. 이번 주는 그 아래인 또뜨 드 본느를 살펴본다. 꼬트 드 본(Côte de Beaune) 지역은 길이가 25㎞인 완만한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도 이회토나 석회석, 철분을 포함한 점토질의 석회암 등이 섞여 있어 변화가 매우 많은 토양이다. 재배 면적은 꼬뜨 드 뉘이..
시선을 우리 사회로 돌려 본다. 코로나-19 이후로 생활 속 거리두기 1단계가 되자, 일상이 기지개를 켜면서 다소 나를 향한 걸음보다 세상에 관심을 두었다. 패거리에 끼지 못한 것인지, 안 낀 것인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패거리들의 내부가 상해 있고 와해가 임박해 보인다. 『데미안』의 마지막 장에서 데미안이 다시 나타나 패거리보다 진정한 연대를 강조한다. "진정한 연대는, 개개인들이 서로를 앎으로써 새롭게 생성될 것이고, 한동안 세계의 모습을 바꾸어 놓을 거야." 대신 패거리 짓기를 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한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라고 이어 말한다. 시선을 우리 사회로 돌려 본다. 현재 우리 사회의 비극과 부조리는 근본적으로 부의 편중,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에서 ..
<질문의 책>/ 파블로 네루다(정현종 역)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젠 바빠 시를 공유하지 못했지요. 지난 화요일 밤에는 함께 모여 네루다와 정현종 시인의 시들을 읽었어요. 시를 읽을 때,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발견합니다. 특히 영혼의 떨림을. "이런 단어에 끌리는 구나!", "이런 소재에 반응하는구나!", "이런 문장에 마음을 내어주는 구나!"하면서, 우리의 몸의 반응을 느낍니다.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는 늘 저 단어가 있었으며, 저 단어가 내 인생에서 단단한 매듭을 만들어 주었다." 이런 식일 겁니다. 그리고 시를 읽으면, 우리가 시적화자가 되어,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늘어납니다. 어떤 시는 잘 모르는데, 시를 읽는 순간 내 몸을 파고 든다. '파고든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시적 상황에 깊이 스며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시..
나이를 먹으면 인생이 비슷해지는가? 사람들은 말한다. 40대는 외모의 평준화가. 50대는 지식의 평준화가, 60대는 재산의 평준화가, 70대는 영성, 정신 세계의 평준화가, 80대는 건강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정말일까? 정말이라면, 왜 그렇까? (1) 많이 가진자의 즐거움이 적게 가진 자의 기쁨에 못 미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즐거움과 기쁨이 차이가 있는가? 사전을 찾아 본다. 기쁨은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즐거운 마음이나 느낌이라면, 즐거움은 마음에 거슬림이 잆이 흐믓하고 기쁜 느낌이나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비슷한 것 같은데, 즐거움은 어떤 상태라면, 기쁨은 어떤 행위의 결과인 것 같다. 그러니까 없다가 얻게되었을 때 오는 것은 기쁨이고, 늘 있는 것은 즐거움인 것 같다. 그러니까 기쁨이 즐거움보다 더 강한 감정인 것 같다. 늘 ..
진리가 무엇이냐?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수는 30세에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 최고의 가치와 그 가치에 도달하기 위한 패러다임을 깨닫고 그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다. 예수는 죽음을 걸고,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켰다. 10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외국인의 통치를 받아온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구원해줄 메시아가 오기만을 학수고대(鶴首苦待 학의 목처럼 목을 길게 빼고 간절히 기다림)하였다. 기원후 4세기 로마제국이 그리스도교를 유일한 종교로 수용한 후,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했다는 생각은 서양인들의 인식에 깊이 새겨졌다. 그 죄의식은 지난 2000년 동안 서양인들에게 반유대주의의 원인을 제공했고, 20세기는 인류 최대의 비극인 홀로코스트를 야기했다. 예수의 언어인 아람어가 그리스..
왜 사는 게 힘든지 아시는가요? 힘이 들어가서 그럽니다. 힘을 빼세요. 인생의 목적은 무언가를 이루려 하거나, 어떤 자리를 올라가려 하기보다는 영혼의 성숙을 위해 하루하루 성실하게 사는 꾸준함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려면 남과 비교하며 부러워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마다 가진 것이 있고 못 가진 것이 있다. 그런데 대개 가진 것은 당연하게 여기고 못 가진 것은 그걸 가진 사람을 보며 큰 결핍으로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해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돈과 성공만 외치는 'Big Me’의 시대에서 ‘Little Me’의 가치를 추구하는 시대로 바귀고 있다. '리틀 미'를 유지하려면, 자존감을 잃지 말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테크닉이 필요하다. 자기 과잉의 시대에 약간은 고전적인 자기절제와 겸손의 미덕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시시할지라도 '힘'..
어떤 일을 할 때, 우리는 적을 하나 줄이고, 친구를 하나 늘리면서 일을 해 나가면 성공한다. 오늘 아침 화두는 '소멸'이다. 원노트 내 계정에 소멸이란 단어를 넣었더니 수십 개의 노트가 열린다. 김남조 시인의 이 눈에 들어 왔다.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비통한 이별이나/빼앗긴 보배스러움/사별한 참사람도/그 존재한 사실 소멸할 수 없다// (…) 따스한 잠자리/고즈넉한 탁상등/읽다가 접어 둔 책과/옛 시절의 달밤 막 고백하려는 사랑의 말까지/좋은 건/결코 사라지지 않는다//사람 세상에 솟아난/모든 진심인 건/혼령이 깃들이게 그러하다." 그러나 소멸시켜야 할 것도 있다, 그건 성심(成心, 정해진 마음, 확고한 마음)이다. '약 오르면 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심리적으로 동요하면 이길 수 없다'는 말이다. 동요(動搖)는 '상황이 자기 뜻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다. 복잡 미묘한 상..
<<대학>>의 定心(정심) 결국 정심도 생각이 감정(情)을 적절하게 운용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생각이 올바르고 성실해야 그 감정도 절도 있게 나간다. 감정의 거센 파도가 몰아치더라도 그 생각만은 조절능력을 잃지 말아야 하며, 결코 눈앞의 일시적 쾌락을 위해 자신을 기만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실제 일을 행사(行事)함에도 각각 바른 처리가 가능해진다.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하여야 자신이 닦인다. 이게 정심(定心)이다. 거꾸로 자신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 인간의 마음(心)은 크게 성(性)과 정(情)으로 구분된다. 성(性)이란 마음(心) 속 깊은 곳에 살아있는(生) 씨알을 말하는 것이며, 정(情)이란 마음(心)속의 본성(壇, 구덩이 속의 알맹이)이 겉으로 드러나서 발동하는(生, 풀이 땅을 뚫고 나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