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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대학>>의 定心(정심)

결국 정심도 생각이 감정(情)을 적절하게 운용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생각이 올바르고 성실해야 그 감정도 절도 있게 나간다.

감정의 거센 파도가 몰아치더라도 그 생각만은 조절능력을 잃지 말아야 하며, 결코 눈앞의 일시적 쾌락을 위해 자신을 기만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실제 일을 행사(行事)함에도 각각 바른 처리가 가능해진다.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하여야 자신이 닦인다. 이게 정심(定心)이다. 거꾸로 자신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

인간의 마음(心)은 크게 성(性)과 정(情)으로 구분된다. 성(性)이란 마음(心) 속 깊은 곳에 살아있는(生) 씨알을 말하는 것이며, 정(情)이란 마음(心)속의 본성(壇, 구덩이 속의 알맹이)이 겉으로 드러나서 발동하는(生, 풀이 땅을 뚫고 나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마음을 발동 전(性)과 발동 후(情)에 두루 바르게(正)하는 것이 바로 정심(定心)이다.

정심을 <<중용>>이 잘 말한다.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희모애락미지발 위지중
發而皆中節 謂之和 발이개중절 위지화
기뻐하고, 노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감정(感情)이 발동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이르고, (감정이) 발동하되 모두 절도(節度)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

정심(定心)이란 대인, 대물 관계에 있어서 그 희로애락의 감정이 ‘바르게(正)’ 발동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감정이 바르다는 것’은 감정이 절도에 맞아서 상황에 맞게 바르게 발동된다는 것이다.

감정의 발동은 크게 네 가지 경우이다.
- 감정이 상황에 맞지 않게 발동
- 발동해야 하는데 안하는 경우
- 발동될 때 아주 과하거나
- 부족하게 발동 되는 경우
사람이 감정이 없다면, 이미 목석(木石)이다. 사람으로서 감정이 없을 수 없다.
조선말의 대유학자 면우 곽종석의 이론
인간의 감정을 10가지로 나누어 오행의 상생(상생), 상극(상극)과 연결 지어 설명한다.

감정을 적절하게 쓰는 것이란 때(時)와 장소(地)와 상대(人)에 맞게 아주 조심해서 쓴다는 말이다. 그리고 감정을 자신의 소소한 개인적 일에 쓰기보다는 공정한 대아(大我)적 일에 써야 한다. 내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감정을 쓰기보다는 보다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감정을 써야 공정함을 유지할 수 있다.

내 마음이 하나의 감정에 골몰하여 집착함이 있다면, 내 자신의 몸가짐, 즉 보고(視), 듣고(聽), 말하고(言), 행동함(行)이 정당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성내고 분노는 ‘목’기운에 관여되니, 마음에 분노가 과하면 간장(肝)이 상한다.
두려워하는 바는 ‘수’기운에 관여되니 마음에 두려움이 고하면 신장(腎)이 상한다.
좋아하고 즐기는 바는 ‘화’기운에 관여되니 마음에 좋아하고 즐김이 과하면 심장(心)이 상한다.
근심 걱정하는 바는 ‘금’기운에 관여되니 마음에 근심 걱정이 과하면 폐장(肺)이 상한다.

마음의 치우침이 몸의 장부에 안 좋은 영향을 주어 그 ‘바름(正)’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오장 중에서 ‘토’기운에 해당하는 위장(胃)이 담당한 정신적 기능은 바로 생각(意)이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 하면 위가 상한다.

성의(誠意) 공부를 통하여 생각을 성실하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심’에 만전을 기하여, 오행의 기운에 치우침이 없도록 항시 자신을 바른 상태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정심도 생각(意)이 감정(情)을 적절하게 운용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생각이 올바르고 성실해야 그 감정도 절도 있게 나간다. 감정의 거센 파도가 몰아치더라도 항상 그 생각만은 조절능력을 잃지 말아야 하며, 결코 눈앞의 일시적 쾌락을 위해 자신을 기만(自欺)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심신(心身)이 항상 맞물려 돌아간다. 심신의 관계에 있어서는 항상 마음(心)이 몸(身)의 주재자(主宰者)가 된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