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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화두는 '소멸'이다. 원노트 내 계정에 소멸이란 단어를 넣었더니 수십 개의 노트가 열린다. 김남조 시인의 <좋은 것>이 눈에 들어 왔다.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비통한 이별이나/빼앗긴 보배스러움/사별한 참사람도/그 존재한 사실 소멸할 수 없다// (…) 따스한 잠자리/고즈넉한 탁상등/읽다가 접어 둔 책과/옛 시절의 달밤
막 고백하려는 사랑의 말까지/좋은 건/결코 사라지지 않는다//사람 세상에 솟아난/모든 진심인 건/혼령이 깃들이게 그러하다."
그러나 소멸시켜야 할 것도 있다, 그건 성심(成心, 정해진 마음, 확고한 마음)이다. '약 오르면 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심리적으로 동요하면 이길 수 없다'는 말이다. 동요(動搖)는 '상황이 자기 뜻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다. 복잡 미묘한 상황을 제대로 다루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신의 행위를 지배하는 기준이나 신념 등과 같이 '확고한 마음'이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에게는 분명하고 명료해지는 데, 그것이 분명할수록 판단은 날렵하고 예리하며 전체적으로 성급해 진다. 그리고 조급해 한다. 그런 조급증은 정해진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여유롭게, 천천히 상황을 판단하려면, '성심'을 버리고, 아니 마음을 비우고 들어야 한다. 성심을 소멸시켜야 한다.
어떤 일을 할 때, 우리는 적을 하나 줄이고, 친구를 하나 늘리면서 일을 해 나가면 성공한다. 예를 들어,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면, 친구를 하나 잃고, 적을 하나 더 만든다. 선악의 판단이 명료해지면, 도덕적 우월감을 갖게 된다. '확고한 마음'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확고한 마음'은 팽창력보다 수축력이 강한 탓이다. 좋은 삶의 지혜를 오늘 아침에 얻었다. 확고한 마음과 도덕적 우월감은 자신이 조작한 것이다. 그 조작물에 자신이 지배된다면, 자신이 자신으로 존재하는 처지라고 할 수 없다. '자유인'이 아니다. 진정으로 자신이 주인공으로 사는 자유인이라면, 조작된 내 마음을 들여 다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삶은 노예적(?) 삶이다.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쉽게 자기 밖의 무슨 물건이나 자기 밖의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을 정당화하곤 한다. 제복에, 완장에, 자동차로, 비싼 옷으로 자기를 대신하려고 한다.
이런 자유인은 자신의 잘못으로 자신이 온전하게 감당한다. 노예들은 오히려 다른 사람도 그랬는데 하면서 항변한다. 남보다 좀 더 나은 것이 핵심은 아니다. 내가 나에게 자랑스러운 가가 진짜 핵심이다. 최진석 교수의 주장을 다음과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삼는 데서부터 진실은 힘을 얻는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하는 한, 진실은 흔들린다.
(2) 확고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질문에 취약하고 대신 다른 사람들이 만든 지식이나 이론을 배달하는 대답에 익숙하다. 왜?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궁금증이나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3) 확고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미래적이기 어렵다. 대답(기준에 맞으면 참이고 맞지 않으면 거짓)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그 사회의 논쟁 대부분이 과거 논쟁과 진위 논쟁으로 채워진다. 이미 있는 문제를 다루는 데서 빠져 있으면서 세계 변화에 맞는 새롭고 적실한 문제를 창충하는 일에 취약해진다.
어제 국정감사 자리에 있었던 검찰총장이라는 사람에게서 그걸 나는 보았다. 인간으로 성숙해 가려는 수양은 모두 다 '확고한 마음'을 줄이거나 소멸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념무상', '무아', '관조', '무소유'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세상을 보고 싶거나 봐야 하는 대로 보지 않고, 보이는 대로 볼 수 있게 된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것이다. 또 그만큼 세계를 수용하는 능력이 커지는 것이다. 세계를 수용하는 능력이 힘의 크기를 결정 한다. 그래야 악 오르다 지는 일을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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