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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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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교육을 생각한다. (2) 유발 하라리의 최근 책에서 얻은 생각이다. 우리는 지금 전례 없는 변혁과 뿌리채 흔들리는 불확실성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이때 필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어쩌면 어떤 사람은 지금보다 훨씬 오래 살 것이고, 인간의 몸 자체도 생명공학과 직접적인 뇌-컴퓨터 인터 페이스 덕분에 유례없는 혁명적 변화를 겪을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아이들이 배우는 것의 대부분은 2050년이면 별 소용이 없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지식 습득 위주의 교육에 열중이다. 물론 근대 학교가 도입되면서 모든 아이들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고, 지리와 역사, 생물의 기본 사실을 교육하였고, 산업화 시대에 필요한 노동자를 기르는 것이 교육 목표였다. 그러나 21세기 현재, 우리 주변은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로 넘쳐난다. 무서운 것은..
인생은 정해진 생각과 행동의 반복 그 이상이다. 고대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전쟁에 참전해 승리를 거둔 뒤, 트로이에 남아 살지 않았다. 그는 트로이 전쟁 참전 10년 만에 고향 아타카에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전쟁 승리를 통해 획득하는 '명성'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뿌리로 돌아가는 ‘회귀(回歸), 또는 '귀향(歸鄕)'의 임무이다.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만 10년이 걸렸다. 트로이 전쟁 승리만큼 실행하기 힘든 것이 자신의 뿌리로 돌아가는 일이다. 호메로스는 '귀향'을 고대 그리스어로 '노스토스'(nostos)라고 불렀다. 노스토스는 인생이란 여정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인 '향수'를 의미하는 '노스탤지어'(nostalgia)가 이 단어에서 유래했다. 배교수의 글에서 배웠다. 그리고 배철현..
고통(pain)과 괴로움(suffering)은 다르다. 고통은 어떤 경험이다. 주로 압력이나, 열, 긴장 같은 다양한 감각들로 구성된다. 이 경험은 이따금 필요하고 심지어 유용할 때도 있다. 괴로움은 어떤 경험들, 특히 고통에 의해 촉발되는 정신적 반작용이다. 예컨대 괴로움은 고통보다는 즐거운 느낌에서 오는 경우가 더 많다. 괴로움의 본질은 실체의 거부이다. 다시 말하면 실체의 부정이 모든 괴로움의 뿌리이다, 예컨대, 고통을 경험 할 때는 그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라고, 쾌락을 경험할 때는 그 쾌락이 강해지고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렇게 되진 않는다는 데서 괴로움이 시작된다. 괴로워 하지 않으려면,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훈련해야 한다. 계속해서 고통에서 달아나고, 더 많은 쾌락을 쫓아 달려가는 대신, 보다 균형 잡힌 정신을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양심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후 200년을 '축의 시대'라고 한다. 가족 단위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했던 시기를 말한다. 그 시기에 사람들은 모든 분야에서 변화를 맞이한다. 이 때 등장한 공자와 석가모니, 소크라테스와 예수가 4대 성인이다. 이 성인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한 것이 '황금률'이다. '욕심 내려 놓고, 남을 배려하자." 그래야 함께 어룰려 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도 '또 다른 축의 시대'이다. 여기기서 필요한 것이 '도덕적으로 살자!'이다. 양심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1) 자신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이 6바라밀에 맞는지 자신에 계속 물어 봐야 한다. 보시 바라밀, 지계 바라밀, 인욕 바라밀, 정진 바라밀,..
'사무량심(四無量心)' 인간이란 동물과는 다른 특별한 심성(心性)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이 심성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교육이란 이 심성을 자극하는 노력이다. '탁월함'이란 이 심성을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발휘하는 용기이다. 그 심성이 연민(憐憫)이다. 연민을 의미하는 그리스 단어는 파토스이다. 그 말의 뜻은 고통(苦痛)이다. 영어로는 그걸 패션(passion)이라 한다. 이 패션은 자신이 하고 싶은 욕망을 채우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애간장을 태우는 고통이다. 패션은 타인의 고통을 보고 자신의 일처럼 고통스러워 할 뿐만 아니라, 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려는 거룩한 행위이다. 대승불교는 수련을 통해 도달해야 하는 4 가지의 덕을 말하는 데, 그게 '자비희사(慈悲喜捨)'라는 '사무량심(四無量心..
"만선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물 깁는 시간이 필요하다." 3년 전 오늘 공유했던 글입니다. 추석에 차례를 지내러 갔더니 조카의 아들과 딸들이 소위 "중 2병"에 걸려 힘들어 했다. 다들 성장통이라는 것을 알겠지만, 인문운동가로 별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냥 이런 말을 하고 싶었는데, 못했다. "만선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물 깁는 시간이 필요하다." 언젠가 최진석 교수의 칼럼에서 프랑스의 젊은 마크롱 대통령의 일화를 읽은 적이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샤를 드골의 대독 항전 연설 78주년 기념식 행사장에 모여 있던 청소년들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10대 남학생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면서 "잘 지내요? 마뉘?"라며 마크롱의 이름(에마뉘엘)을 제멋대로 줄여 불렀다. 이 남학생은 노동해방을 노래한 혁명가요 '랭테르나시오날'(C'est..
인문운동가의 영화 보기 3년 전 오늘 글입니다. "정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넌 이길수 있을 때만 싸우느냐?(영화 "안시성") 성주 조인성 지도자는 따뜻했다. 모든 것을 딸이 원하는 것에 나는 제1순위를 둔다. 그래 우린 예정에 없던 영화 보기를 어젯밤 늦게 했다. 우리가 택한 영화는 역사물 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 한 첫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싸우는 것만 봤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집에 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영화 속에서 이제까지 보지 못한 부분이 기억되었다. 안시성의 성주 조인성에게서 어떤 다름을 눈치챘다. 성주 조인성의 모습에서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의 솔선수범과 자기희생 정신 그리고 낮은 곳으로 임하려는 자세를 보았다. 그러니까 직접 병사들과 함께 싸우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위대한 개인 되기 (2) 질문의 힘이 인문학이다. 예수는 40일간의 묵상을 통해 자신만의 유일한 임무를 받는다. 그것을 우리는 천명(天命)이라고 한다. - 로마 식민지 시대에 사회 통념을 전복 -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담론(discours)은 권력자들이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조작한 지식이나 진리를 정당화하고자 만든 상식이다. 메셀 푸코의 는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밝힌다. 오늘날의 종교인들은 점점 각 종교나 교리보다는 윤리적인 지침이나 영적인 훈련에 더 관심이 있다. (하비 콕스, ) 종교가 오랫동안 소중하게 생각해온 조직이나 교리보다, 삶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행복을 느낀다. 현대인들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