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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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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이번에 걸은 임도 길은 숲을 걷는 것이었다. 숲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짙어져가는 중이었다. 우리는 짙고 옅은 녹색의 숲이 차려놓은 잔치를 즐길 수 있었다 아래쪽은 진녹색, 중간은 초록, 위쪽은 아직 연두이었다. 봄이 꼭대기로 쫓아가며 농담의 붓질을 해댄다. 드문드문 섞인 솔숲이 암록일 만큼 신록이 눈부시다. 잠깐 잠깐 만난 대청호수의 물빛까지 청록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의 숲은 흰 꽃으로 일렁이었다. 그 흐름의 결은 야구장 관중석 사람들이 응원하는 움직임 같았다. 바람에 뒤집힌 굴참나무, 떡갈나무, 사시나무 잎들이 자기 속옷을 들추듯이 회백색 잎 뒷면이 드러나 하얗게 빛났다. 숲이 아름다운 것은 숲을 이루는 꽃과 나무가 형형색색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임도 입구부터 들꽃에 눈이 가 걸음을 뗄 수..
학문(學問)이란 한자의 의미는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물음(問)을 배우는 것, 즉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살다 보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답답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다. 눈과 귀를 닫고, 오직 내 갈 길만 가겠다는 행동을 심리학에서는 '주의력 착각'이라고 한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착각이다. 착각(錯覺)이란 어떤 사물이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자각하거나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유튜브에서 "투명 고릴라 실험"을 본 적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순간, 다른 진실을 보지 못한다. '기억력 착각'도 있다. 세월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력은 무뎌진다. 그래서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거나, 기억 자체를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자신감 착각'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인문 산책 술을 만나는 것은 익숙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낯설지만 신나는 삶으로의 여행이다. 이 여행은 편안하고 안전한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익숙한 일상으로부터 낯설고 불편한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다. 보통 여행은 불편하고 힘들다. 그러나 거기서 어떤 즐거운 '엑스터시(ecstasy)'를 만난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와인의 세계에 들어가면, 나는 바로 엑스터시를 경험하곤 한다. 엑스터시란 현재 안주하고 있는 상태로부터 자신을 강제로 이탈시키는 행위이다. 입신하는 무당에게서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마약'의 이름으로도 쓰인다. 좀 먹물적으로 말해 볼까. 엑스터시란 '자신의 과거나 사회가 부여한 수동적인 상태(state)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가려는 투쟁'에서 얻게된다. 불교에서는 ..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의 삶은 엉망진창이다. 지난 번 읽은 이야기를 할 기회를 잃었다. 그래 오늘 아침 좀 정리를 해본다. 의 주인공 아Q는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본적이 어디인지 성씨도 알려지지 않고 이름도 알 길이 없다. 그런 아Q는 동시에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도 잘 모른다. 아Q를 보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의 삶은 엉망진창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자신을 향해서 걷는 일을 할 때의 의식 활동이 바로 생각이다. 자신을 모르는 자는 생각이 없거나 생각을 할 줄 모른다. 그리고 생각은 자기를 벗어나려는 충동인 호기심이 동작하는 한 형태이므로 반드시 앞을 향한다. 그러나 아Q처럼, 생각이 없으면 지난 일을 파먹는 데 골몰한다. 생각이 없으면 대답에 빠지고, 생각을 하면 질문을 시작한다. 그리고 생각을 멈추면, 확..
피에몬테(Piedmonte) 지역 와인 오늘은 토요일로 와인 이야기를 하는 날이다. 오늘도 이탈리아 와인 이야기를 한다. 지난 주까지는 토스카나 지역 와인을 여행했는데, 이젠 피에몬테(Piedmonte) 지역으로 옮긴다. 사진을 보시고 어디인가 알아 두시기 바란다. 피에몬테에서 피에가 '발'이라는 뜻이고, 몬테가 '산'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 피에몬테는 "산맥의 발치' 또는 그냥 '산 기슭'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니 이 지역은 알프스 산맥의 발(foot of the moutain)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곳은 실제로 알프스 산맥이 거의 완벽하게 에워싸고 있어서 특별한 기후대를 형성한다. 여름에는 매우 덥고, 겨울에는 매우 춥다. 가을엔 안개가 많이 낀다. 그러면서 길게 이어지는 가을은 네비올로(Nebbiolo)포도가 늦게까지 충분히 무르익도록..
우리가 죽을 때 후회하는 것들 우리에겐 나중은 없다. "우리 나중에 한번 보세", "나중에 한 잔 살게", 이루어진 일이 있는가? 오늘날 우리는 더 높은 빌딩과 더 넓은 고속도로를 가지고 있지만, 성질은 더 급해지고 시야는 더 좁아졌다. 돈은 더 쓰지만 즐거움은 줄었고, 집은 커졌지만, 식구는 줄어들었다. 일은 더 대충 넘겨도 시간은 늘 모자라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줄어들었다. 약은 더 먹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가진 것은 몇 배가되었지만, 가치는 줄어들었다. 하늘에 있는 달도 정복했지만, 이웃집에 가서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다. 수입은 늘었지만 사기는 떨어졌고, 자유는 늘었지만 활기는 줄어들었고, 음식은 많지만 영양가는 적다. 호사스런 결혼식이 많지만 더 비싼 대가를 치르는 이혼도 늘었다. 집은 훌륭해 졌지만 더 ..
"진실은 저절로 밝혀지지 않는다.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다." 5년전 오늘 아침 공유했던 글입니다. 4월의 영화 : "진실은 저절로 밝혀지지 않는다.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다." 원제목은 denial(부정)이다. 거짓이 승리하는 것을, 진실이 침묵하는 것을 는 말은 중의적이다. 하나는 영화의 내용 그대로 아우슈비츠에 대한 부정이고, 또 하나는 진실 왜곡에 맞서기 위해 길고 긴 법정 공방에서 흥분을 배척하는 부정이다. "네 양심을 다른 삶에게 맡긴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네요." 진실을 향한 싸움은 때론 전략적이어야 한다. 홀로코스트(쇼아, 유대인대학살)를 부정하는 역사학자와 이를 규탄하는 역사학자 사이의 대결을 극화한 것이다. 법은 자신의 말을 진실인 것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문제는 거짓은 자신을 변명할 필요가 없고, 진실이 자신을 변호해야 하는 영국 법원의..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인간에게 ‘하루’는 숱한 날들 중의 일부분인 반면, 하루살이에게 ‘하루’는 삶의 전체이다. 인간이 일생을 통해 경험하는 모든 것을 하루살이는 단 하루에 경험하는 것이다. 인간의 시간에서 ‘하루’는 현재에 불과하지만, 화엄의 시간에서 ‘하루’는 과거-현재-미래가 내속하고 회통하는 찰나(刹那)의 시간이다. 스님은 하루살이의 죽음에서 그 찰나의 시간을 보고, 거기에 비추어 자신을 성찰한다. 인간은 "천년"의 긴 시간을 살면서도 하루도 살지 못했다는 느낌을 갖지만, 하루살이는 ‘하루’라는 찰나에서 천년 이상의 시간을 살기에 ‘성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루살이의 몫이 되는 것이다 붓다는 탐욕과 증오에 따른 번뇌에 휘말리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자아(에고)를 초월하여 살았다. 그는 계속 이 세상에서 살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