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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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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심에 이르는 길 오늘 아침 다시 허심에 이르는 길을 소환한다. (1) 장자는 ‘피차’(彼此)라는 말 대신에 ‘피시’(彼是)라는 말을 사용했다. ‘시’(是)는 ‘이것'이라는 뜻과 함께 ‘옳다'는 의미도 있다. 즉 피시 속에는 이미 ‘나의 쪽'이 옳다는 판단이 들어 있다. 이는 ‘자아’ 문제와 뿌리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우리 인식의 기본적인 틀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컨대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거다. 그러나 이런 의식 자체는 비난 받을 일도 비난할 일도 아니다. 모두가 거의 그러니까. 따라서 ‘누구나 자신이 옳다'는 사실을 전제하면, 시비가 훨씬 더 줄고 평화로워질 가능성이 높다. 피차는 이쪽(차,此=이것)과 저쪽(피,彼=저것)인데, 이것과 저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각이나 입장에 따라 다르..
자신의 생각이 밖으로 부터 온 '생각 당한 생각'인줄 잘 모르고 산다. 나는 하루에 한 번은, 그 날 하루 동안 언론에 올린 글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네이버의 이라는 곳을 방문한다. 어젠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서울대 정치외교학과의 김영민 교수 칼럼을 만났다, 그가 [김영민의 생각의 공화국]이라는 연재를 새로 시작하는 첫 번째 칼럼이었다. 우리는 생각의 힘을 잃었다. 자신의 생각이 밖으로 부터 온 '생각 당헌 생각'인줄 잘 모르고 산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본다. "역병[코로나-19]을 예측하지 못했던 지식인들이 매스컴에 나와 역병 이후의 미래를 예측하기 시작한다. 마치 ‘노멀’이 존재했던 양 이제 ‘뉴노멀’을 말하기 시작한다. 정치인은 구원을 약속하고, 정치의 팬덤화는 가속화되고, 지난 100년 동안 지속된 한국 공론장의 굿판적 성격은 변함이 없다. 생각의 폐허를 ..
신은 공짜인 매력을 줄 사람을 찾고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제3자의 눈으로 가만히 응시하지 않거나 응시할 수 없을 때, 자신도 모르게 내면에 쌓이는 적폐가 있다. 그게 바로 오만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편견이 여러 의견 중에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해답이라고 여기는 착각이다. 위대한 개인은 그런 자신을 깨우치는 공부를 통해서만 오만이라는 미로에서 탈출할 수 있다. 이런 착각을 피하는 길이 자신의 제3자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다. 나 자신도 오만한지 나를 되돌아 본다. 나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에겐 한 가지 치명적인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이것 때문에 비극적 파국을 맞이한다. 비극공연을 관람하는 모든 관객들은 아는데, 정작 주인공인 자신만 모른다. 그것이 오만이다. '위대한 개인'은, 남들이 보기에 소..
다시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를 이어간다. 남성인 우리가 우리 자신의 여성적인 측면을 알 수 있다면, 여성들은 자신의 남성적인 측면을 알 수 있다면, 우리 자신에 관한 한, 신들이 아는 수준, 혹은 신들이 말하는 수준 이상의 수준으로 알기까지 이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결혼을 통해서만 사람들은 그런 수준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결혼이라는 것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이성(異性)의 측면과의 만남이다.”(, p 368). 테이레시아스가 인간의 미래를 훤히 꿰뚫어볼 수 있는 것은 양성인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테이레시아스가 육안을 잃고 장님이 되는 대신 심안, 마음의 눈을 얻어 앞일을 헤아리게 된 사연의 또 다른 버전이 있다. 테이레시아스가 숲 속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아테나 여신의 알몸을 훔쳐보았다는 것이..
거의 모든 다툼은 옳은 말들끼리 벌이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정대협'이니 '정의연", 정신대이나 위안부이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하며, 각자 자기 진영에 매몰되어 서로 막말들을 한다. 각자 자기 이야기가 옳다고 외친다. 세상의 모든 말들은 각자에게 다 옳은 말이다. 사실 틀린 말과 옳은 말 사이의 다툼은 간단하다. 틀린 말은 지고, 옳은 말은 이겨야 한다는 당위를 동반하기 때문에 옳은 말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세상의 거의 모든 다툼은 옳은 말들끼리 벌이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래 세상은 해결되는 일 없이 언제나 혼란스럽다. 살다 보니까, 옳은 말과 옳은 말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툼은 논쟁이나 토론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우리는 대화로 서로를 설득하여 양쪽이 조금씩 양보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이는 관념에서나 가능하지 실제 세계에서는 벌..
삶의 이야기는 성공 이야기가 아니라 성장 이야기이다. 성장이란 지금보다 더 나아지는 것이다. 그 길은 우리의 의무나 책임을 넘어 존재의 한 형식이어야 한다. 그 길은 개인이나 사회가 모두 더 독립적이도 자유롭고 풍요로워지는 일이다. 문제는 그 길이 어렵고 힘들다는 점이다. 반대로 멈춰 서서 주저 앉는 길은 쉽다. 그냥 믿고 있었던 익숙한 것에 멈춰 서서 거기에 맞춰 반응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더 나아가는 길에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더 나아가려면 감각이 아닌 지적으로 '인식'하려고 시간을 들이는 수고를 하며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체념한다. 난 원래 그렇다고. 그러니 더 나아가고 싶지 않고, 그렇게 살다가 그냥 죽고 싶다고. 그래 우리 사회는 감각적 '의견'이 난무하고, 내 생각이 아니라 일부 언론이 생각하게 하는 것에 생각 당..
좋은 매너는 디테일에 있다. 그리고 경쟁력이다. 매너 없는 상사는 ‘조직의 적’ 한 중견그룹 A 씨는 부하직원들로부터 “어쩌면 저렇게 사람 마음을 다독일 줄 모르냐”는 뒷소리를 듣곤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 씨는 뒷심이 없다”거나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다”거나 “밥값을 못하면 내보내겠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직원은 “성격이 거칠거나 목소리가 큰 것도 아닌데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을 다스리기 힘들다. ‘사실’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 내지 실력에 대해 단정적 판단을 내리고 거침없이 내뱉는 것이,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런 A 씨인 만큼, 그는 또한 부하직원들의 고언을 귀담아듣지 않음은 물론이다. 기본적으로 선하고 똑똑한 이도 ‘역지사지’를 할 줄 모르면 매너 없는 사람이 되고 ..
전략적 묵상은 매일 아침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것이고, 운동, 산책, 독서와 같은 나만의 오락은 마음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즐기는 것. 다음은 배철현의 지난 을 읽고 갈무리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의기소침해 있던 나에게 큰 위로를 준 글이었다. 세네카는 인생 말년에 폭군 네로 황제 밑에서 10년 동안 고문으로 일한 후, 은퇴하여 인생을 회고하는 편지를 쓴다. 그게 시실리 지방장관인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124통의 편지이다. 그는 이 편지에서 인생의 역경을 맞이하여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우리가 살다 보면, 고통과 역경은 불가피하다. 인생이 고해이기 때문이다. 병 들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배신당하고, 가족이 화목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파산하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 심지어는 극단적인 선택과 마주하는 상황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들은 인생에서 예외가 아니라 다반사다. 불가피한 역경에 대한 불평이나 낙담은 상황을 더 악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