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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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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은 '나는 잘났다'면서 자신을 지키는 마음이고, '자존감'은 '나는 소중하다'하면서 자신을 존중 하는 마음이다. 소설 속에서 소년 마놀린은 '믿음이 깊지 않은' 제 아버지보다도, 서로 믿는 사이인 노인 산티아고에게 존재의 많은 부분을 열어주었다. 여기서 "존재의 많은 부분을 열어 주었다"는 말에 마음이 잠시 멈추었다. 나는 무엇으로 내 존재의 충만함을 고양하는가? 그걸 찾은 것이 아침에 를 쓰는 것이다. 읽지만 않고, 이런 식으로 쓰는 데서 나오는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설 속에서 소년 마놀린은 바다로 나가는 어부 노인에게 "두 마리의 신선한 작은 참치 또는 날개 다랑어를 주었는데, 그것들은 가장 깊은 곳의 낚싯줄 두 개에 추처럼 매달았다. 680Kg의 거대한 청새치는 바로 이 소년이 준 미끼를 물었다. 이런 식으로 믿음, 아니 신뢰는 항상 빛나는 결과를 안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다른 사람을 그리고 세상을 ..
질문하다. 나는 생각해 보지도 못했고, 잘 모르고 있던 가치들을 발굴해 내어 새로운 세상을 확장해가고 있는가? 다른 이들은 세계를 앞장서 확장해가며 다른 사람의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는데, 나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나에게 익숙한 일을 반복적으로 되풀이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초연결 시대로 인해, 사회적 욕구 실현의 허들(연결)이 매우 낮아진 환경에 살고 있다. 욕구 실현에 사용될 에너지가 덜 드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니 새로운 가치를 찾았다면, 일단 시도해 보는 것이다. 실천만이 일상을 유지하려는 보수적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현재가 미래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인생의 모든 차이를 빚어냅니다. 그 믿음 속에 그냥 무작정 한번 해보기를 시도하고 그 시도가 생각지도 않았던 작은..
생각이 비뚤어지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쉽게 말하고 행동한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원래 태어날 때 사람은 생각이 없다. 살아가면서 사회 체제나 구조 등에 의해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 그냥 가만히 있으면, 내 생각이 진짜 내가 한 생각인가, 그 생각이 진리에 가까운가를 잘 모른다. 그래서 데카르트가 말하는 '생각하다'는 내 생각을 '의심하다' 아니 '회의하다'로 읽어야 한다. 고집스럽게 갖고 있는 내 생각을 부정해보아야 한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자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고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주관성이 개입할 수 없는 객관적인 진리 속에서 정답을 찾는 자연과학적 사유와는 달리 인문학적 사유는 정답이 없는 주관성이 개입된다. 예컨대, 사형제 폐지에 대한 생각의 경우 정답이 ..
협치는 사실상 ‘어떻게’의 영역에서 작동할 수 있다. 몇 일전에 나는 강준만 교수의 칼럼을 흥미롭게 읽고 여러 가지 통찰을 얻었다. 그의 다음과 같은 지적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과 ‘왜'는 가치와 비전의 영역이므로 협치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협치는 사실상 ‘어떻게’의 영역에서 작동할 수 있다. 그런데 부동산이나 일자리 등과 같은 민생 문제는 대부분 ‘어떻게’와 관련된 것이다." 정치는 '어떻게'를 논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이나 우리가 하는 어떤 일 앞에서는 '왜'를 먼저, 그리고 '어떻게'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그 일('무엇')이 훨씬 즐겁기 때문이다. 그 이유와 방법을 아니까 말이다. ‘무엇’, ‘어떻게’ ‘왜’, 가운데 어떤 게 가장 중요한가를 놓고 많은 이들이 여러 말을 남겼다. 물론 정답은 없다. 사이먼 사이넥의 라는 책은 꿈꾸고..
코로나-19에 대해 이야기 하는 제러미 리프킨을 다시 만난다. (2) 지난 6월 6일 아침에 이어, 오늘 아침 포스트 코로나-19에 대해 이야기 하는 제러미 리프킨을 다시 만난다. (2) 지난 번 글에서 제러미 리프킨이 말하는 3차 산업혁명(우리에게는 4차 산업혁명)은 글로컬(glocal)을 위한 인프라라고 주장하였다. 글로컬화(지역 중심 세계화), 생물지역(bio-regional) 거버넌스 (인간만이 아니라 지역 생태계 전체를 책임지는 통치)이다. 3차 산업혁명 인프라는 분산되고 개방적이며 투명하고 수천 만명에게 확장되는 인프라이다. 여기서는 500개의 주요 글로벌 기업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주역으로 활동한다. 커뮤니케이션 혁명이 인터넷으로 이루어졌다. 45억 인구가 인터넷에 참여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같은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이용해 뉴스와 지식, 엔터테인먼트를 공..
타자성과 유혹: 유혹의 성공은 ‘타자성’을 찾는데서 온다. 철학자 강신주는 라는 책에서 ‘조삼모사(朝三暮四)’의 뜻을 상대의 즐거움을 찾기 위한 거듭된 시도로 설명했다. 주인은 자신의 제안에 화를 내는 원숭이를 통해 타자성을 경험한다. 자신과 같지 않음,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당혹감은 판단 중지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주인은 새로운 제안을 하고 이번에는 원숭이들의 기쁨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저자가 해석하는 조삼모사는 상대를 속이고 조롱하는 과정이 아니라, 상대를 기쁘게 하기 위해 기꺼이 나서는 여정에 가깝다. 유혹의 과정도 다르지 않다. 유혹에 전제가 되어야 할 것 역시, 타자성의 발견이다. 상대가 나와 다름을 깨닫는 것. 그리고 적극적으로 상대의 욕망을 탐험하고 고민하여 그가 내게 자발적으로 다가오도록 하는 행위가 바로 유혹이다..
내가 살고 세상은 내가 스스로 변혁할 때, 비로소 변하기 시작한다. 세상의 변혁은 외부의 권위가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무식한 것이다. 자기 변혁은 자기가 누군인지 알려는 수고의 부산물이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올바른 말과 행동이 나올 수 없고, 자기 변혁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면밀한 관찰에서 시작한다. 나는 내가 오늘 마주치는 정보들과 사람들을,내가 경험하여 획득한 나의 시선이라는 색안경으로 볼 수밖에 없지만, 편견을 가진 내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인식하는 것이 자유로운 인생의 시작이라고 나는 믿는다. 신념과 이념처럼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는 일이 없다고 믿는다. 자기 인식을 통해 얻은 자유는 나에게 자연을 편견 없이 탐색할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한다. 자유로워야 조급해 하지 않고, 초..
<인문학의 시대적 가치-왜 '인문학'인가?> 오늘도 토요일에 있었던 인문학 강의, 에 못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본다. 객관적인 진리 속에서 정답을 찾는 자연과학적 사유와는 달리, 인문학적 사유는 주관성이 개입되어 정답이 없다. 대신 각자의 견해를 다 존중해 준다. 그러나 그 견해가 풍요로운지, 나름대로 정교한 논리와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 따진다. 풍요롭고, 다양하며 정교한 논리가 있어야 내 삶을 주체적으로 독립적으로 주인공으로 살 수 있다. 그래 인문학적 사유가 중요하다. 그게 기본이다. 그런 인문학을 딱 잡아 말하면, 인문학은 우리들에게 '건너가기'를 부추긴다. 늘 행복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자주 변해야 한다. 내 방식으로 말하면, '건너가기'를 위해 늘 도전해야 한다. 지적인 상승과 확장은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모르는 곳으로 넘어가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