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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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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나무/안도현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박달재 다녀온 이야기를 할 새가 없었다. 연초부터 미루고 미루다 지지난 주 일요일에 다녀왔다. 가면서, 라는 노래를 불르투스(Bluetooth)로 연결해 차 안에 울리게 했다.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에 금봉이야 이 노래에 나오는 "물항라 저고리'는 '물들인 항라로 지은 저고리"라고 한다. 항라는 반투명에 가까운 얇은 옷감이어서 비에 젖은 물항라 저고리는 한사코 우는 금봉이를 더욱 애처롭게 만든다. 그리고 왕거미가 집을 ..
오늘은 프랑스 샴페인 중 <JOSEPH DESRUETS(조셉 데뤼에)>를 소개한다. 오늘은 구정 설 명절 연휴의 세 번째 날이고 토요일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나는 와인 이야기와 함께 와인 한 병을 가지고 읽기를 시도한다. 오늘은 프랑스 샴페인 중 를 소개한다. 이 샴페인은 1888년부터 가업을 이어온 포도 농가, 데뤼에(Desruets) 가문의 와인이다. 현재 이 샴페인 하우스의 주인이 5번째 후계자로 한국계 프랑스인이다. 두 형제로 토마 데뤼에와 마티아스 데뤼에이다. 이들의 한국 이름은 김영현과 긴은석이다. 이 두형제는 한국적인 뿌리와 프랑스 문화를 담은 샴페인 와 함께 한국에 왔다. 현재 토마가 경리단 길에서 와인 바를 하며 이 샴페인을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에서 함께 심사위원을 하면서 이다. 작년에는 명함을 주고 받으며, 인사를 했고, 심사 중의 어느 한..
건전지/복효근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제레미 리프킨은 2001년 한국에 소개된 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런 예측을 했었다. 2020년 무렵의 세계 경제는 '소유'가 '접속'으로 대체되고, 시장은 네트워크에 자리를 내어주며, 판매자-구매자가 아닌 공급자-사용자가 시장의 주역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그는 보았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시장이란 판매자-구매자로 구성되고, 재화의 소유권을 교환하는 거래가 시장 경제의 기본 질서였다. 그런데, 그의 예측이 맞게 돌아간다. 그의 책이 우리에게는 로 번역되었지만, 원제는 였다. 접속의 시대, 우리는 이것을 '초연결의 시대'라고 말한다. 여기서 새로운 경제 개념이 나온다. '공유경제'. 초연결, 아니 접속이란 공유경제 질서를 관통하..
‘제 때 안 풀린 인생’들이 많다. 6년 전 오늘 글이다.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이데올로기란 ‘나이에 맞는 정상적인 삶과 성취가 있다는, 생애주기 개념이다”라고 임의진은 말한다. 나도 그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제 때 안 풀린 인생’들이 많다. 억울한 감옥살이, 지혜 없이 방황했던 시간,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망친 겨우, 의미 없는 인간관계에 집착했던 시간, 한 창 일할 때 찾아 온 질병 등등 그래 보아야, ‘뒤쳐진 인생’이란 결국 타인에게 뒤쳐졌다는 이야기인데, 다른 이들도 똑같이 뒤쳐졌으므로 덜 괴로워해도 된다. 더구나 우리 시대의 자본은 나에 맞는 지위가 아니라, 어린 나이에 지위를 초과 달성한 이들을 원한다. 어차피 웬만한 사람들은 다 ‘루저’이다. 뒤쳐지지 않으려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길을 잃지 않으려고 마스터플랜을 쥐고 태어..
'참나'를 찾는 여행 장자는 이 세계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아지랑이나 먼지, 이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생물들이 서로 입김(숨결)을 내뿜는 현상이다. 이렇게 본다면 하늘이 새파란 것은 진짜 원래부터 그 색깔인가? 아니면 멀리 떨어져서 끝이 없기 때문일까? 9만리 높은 하늘을 나는 붕새 또한 위에서 내려다보면 파랗게 보일 것이다. ( 1:3) 인간의 삶은 따로 있지 않다. 우리의 삶도 유동적 우주에 섞여가는 한 형태이다. 우리의 삶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이상 삶 자체가 바로 우주적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과 자연은 분리되지 않는다. 야마(野馬)로 표현되는 아지랑이와 진애(塵埃)로 표현되는 먼지는 정해진 방향 없이 서로 서로 숨결처럼 계속 움직인다. 이를 우주의 기운이라 할 수 있을까? 정해진 방향이나 목적도 없이 그저 움..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실현은 최선을 다해 노력한 사람에게만 허락된다. 공지영 작가의 책 제1부의 제목 "우리는 수많은 갈림길에서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가 여러 가지 지혜를 준다. 헤어진 사람을 그리워하고, 다시 만날 사람을 기대해 본다. 내 관계 철학은 '가는 사람 안 잡고, 오는 사람 안 막는다'는 것이다. 공 작가도 이렇게 말한다. "삶은 긴 순례 같은 것이겠다. 출발선은 어쩌면 같지만, 우리는 수많은 갈림길에거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 가는 사람을 축복해주고 오는 사람을 반기면 되겠지." 그리고 책 몇 장을 넘기다가,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났다. "인생이 좋은가, 나쁜가의 문제는 결정의 시점을 어디서 잘라 바라볼까의 문제일 뿐이다. (…) 어느 시점에서 돌아보느냐에 따라 삶의 색깔이 바뀌는 것이다." 큰 위안이 되는 문장이다. 내 삶을 되 돌아보니. 나 또한 좋았던 때..
인문운동가의 인문산책 3년 전 오늘 아침 글입니다. 한가한 연휴 3일째인 날, 중앙일보 양성희 논설위원의 를 읽고, 부모이기 이전에, 우리는 '위대한 개인'이 되기 위해 왜 독립과 자유가 필요한지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교육과 입시 문제에 관해서는 선과 악의 문제보다 ‘현실과 욕망’이란 프레임 속에 갇혀있다. 주변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에서 이수임보다 한서진을 더 좋아했다. 실제로 우리들에게 자녀 입시 문제는 극에서처럼 상위 1% 피라미드 꼭대기를 대물려주는 차원은 아니다. 그보다 자녀의 삶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들어주겠다는 마음이 크다. 입시 전선에 뛰어드는 부모들의 출사표도 비슷하다. “아이들 미래에 큰 욕심 없다. 그저 제 앞가림할 정도만 되면 좋겠다.” 물론 여기서 ‘제 앞가림’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나도 ..
사진 하나, 생각하나 무엇을 보고 있을까? 본다는 것은 간단한 것이 아니다. 본다의 수동태 보인다도 있다. 그림의 그는 나를 보고 있다. 오늘은 사람의 부조리에 대해 '보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산다는 것, 그것은 부조리를 살게 하는 것이다. 부조리를 살게 한다는 것은 먼저 부조리를 바라보는 것이다" (알베르 까뮈) 여기서 부조리란 "세계 그 안에서의 삶이 가진 이해할 수 없음"이다. 부조리, 즉 삶과 세계의 무의미성 앞에서 자살은 문제의 소멸일 뿐, 해결이 아니다. 까뮈는 그 문제 해결은 반항이라고 했다. 여기서 반항은 "사막에서 벗어나지 않은채 그 속에서 버티는 것'이다. 어떻게? 삶과 세계의 무의미성, 곧 부조리 앞에서, -희망을 갖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 -구원을 호소함 없이 사는 것 -자살로써 회피하거나 기권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