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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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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를 찾는 여행 인간에게는 초월의 욕구가 있다. 초월을 사전은 두 개로 설명한다. 하나는 "어떤 한계나 표준을 뛰어넘는 것"으로, 또 하나는 철학적인 용어로 "인식·경험의 범위 밖에 존재함", "가능적 경험의 영역 밖에 있음", "의식 내용의 범위에 속하지 않는 일"로 풀이한다. 최진석교수*에 의하면, 초월은 지금의 나를 넘어서는 것, 지금의 나보다 더 나아지는 것, 더 확장되는 것, 더 넓어지는 것, 더 높아지는 것이다. 우린 가장 높고 크게 확장되어 있는 존재로 "신神"을 모셔놓고, 부단히 그 곳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이걸 초월의 욕구라고 한다. 근데, 외재적 초월도 가능하고, 내재적 초월도 가능하다. 그러나 자기 통제력의 두께로 초월을 가늠한다. 그러니까 초월의 정도는 자기 통제력의 두께라는 말이다. 얼마나 초월..
물 컵 단상 4년 전 아침 글입니다. 보통 식당의 물컵은 순수한 강철이 아니다. 니켈과 크롬이 포함된 합금이다. 우린 그걸 '스댕' 컵이라고 한다. 나는 그것을 싫어한다. 이 컵을 쓰는 식당은 주인이 먼저이다. 손님이 나중이다. 나의 감정은 언제나 합금이다. 이 물 컵처럼. 순수한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나는 살아야 했고, 어떤 감정이 엄습하면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전혀 다른 감정을 쥐어짜낸 뒤 엄습하는 감정을 방어했다. 그래 나도 합금이다. 물 컵처럼. 그런 과정에서 감정들은 뒤엉켜 하나가 되어 동시에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되었고, 이렇게 합급처럼 태어난 감정들을 뭐라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었으나 아마도 그것을 가리키는 가장 적절한 말은 '스댕'일 것이며, 이런 방식으로 나는 서서히 '스..
바로 알고, 바로 보고. 바로 선택 하여야 한다. 1886.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1월 28일) 어제 나는 에 이런 글을 썼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언제나 분쟁소지가 있는 다양성의 활동공간이다. A라는 주민과 B라는 주민의 이해관계가 다를 때. 혹은 도시 전체의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때, 사적인 문제와 공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 그 중재자가 지도자, 즉 리더이며, 그런 문제를 판결하는 장치가 법이고, 그 법을 만드는 곳이 입법부이고, 그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사법부이다. 그래 오늘은 시도, 사진도 공유하지 않고, 어제 만난 서천권 변호사의 트위터를 가져왔다. 나는 댓글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대부분의 댓글은 자기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수준에서의 감각적인 반응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댓글로 논쟁하..
글쓰기 실전 강의 지성(知性)이란 책이나 글을 읽고, 말하고 쓰는 일에서 나온다. 글이나 책을 만나 읽고 타자와 접속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나를 창조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은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강의하는 글쓰기 실전 강의를 책과 유튜브로 듣고 정리한 후, 공유한다. 고미숙은 글쓰기의 시작은 발원(發願)과 집중(執中)이라 했다. 글을 쓰려면 내공(內攻)이 필요하다. 내공은 욕망과 능력의 함수이다.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욕망이라면, 그것을 지속하는 힘이 능력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내공은 중국 권 법의 용어로 내가(內家)의 공부(功夫)를 줄인 말이다. 이는 곧 내적으로 쌓은 힘을 뜻한다. 사실 산다는 것은 온갖 고난을 겪는 거다. 피할 수 없을 바에 야 부딪혀서 겪어 버리는 게 낫다. 그래 인생을 잘 살아가려면..
유데모니아(eudaimonia, 에우다이모니아) OECD에서 정의하는 행복이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면서 자신의 경험에 대한 정서적인 반응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다양한 평가를 포함하는 건강한 정신 상태"라 말한다. 그리고 행복에 대한 측정은 인지적 평가인 '삶에 대한 만족도', 정서적인 측면인 긍정적, 부정적 정서감, 마지막으로 미래적인 관점에서 삶의 목적이나 의미, 가치를 측정하는 유데모니아 항목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이 말은 100% 다 맞는 말은 아니다. 행복이란 맛있는 거 먹고, 일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것과 관련된 것들을 많이 생각하지만 이와 같은 소소한 행복도 삶에서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 있을 때만 약속한 행복을 겨다 준다. 우리가 흔히 소확행(사소한 것에 확실한 행..
반가사유상을 보면서, 사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불상은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올려 놓고 앉아 있다. 그래서 '반가(半跏)'라는 이름을 얻은 것 같다. 반가라는 말은 반가부좌(半跏趺坐)에서 나온 말로 부처의 좌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이다. 불상의 왼쪽 발은 족좌위에 놓여 있다. 그리고 오른쪽 다리의 발바닥, 특히 엄지발가락 밑에 상당히 두툼하게 부풀어올라있다. 붓다는 참선을 통해 해탈 속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탐닉한 것이 아니라, 세상 속의 인간들과 함께 먼지가 나고 고통이 가득한 세계 안에서 발이 붓도록 돌아다니셨기 때문같다. 불상의 왼손은 그런 발을 어루만지듯이 가볍게 올려놓은 복숭아뼈를 살포시 감싸고 있다. 그리고 불상은 오른쪽 팔꿈치를 무릎에 올려놓고 오른 손의 검지와 중지를 뺨을 살짝대며 심오한 생각에 잠겨 사유思惟라는 이름..
“악의 평범성, 무사유의 죄”(한나 아렌트) 3 -시리즈 끝 힘이 모든 인간적 가치를 억압했던 시대를 우리는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남루하고 매우 서글픈 일이었지요. 요즈음 다시 그 시절로 회귀하는 정치권력을 보면서, 사유의 의무와 의지를 위해 이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이 시리즈로는 끝입니다. 사유하지 않고 살다가 독재 유신 체제의 중심부에 들어가, 사회 지도층으로 성장하다가 지금 이 시대에 다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공통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만의 고유한 생각과 판단’을 유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독재자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혼자서 판단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근면하고 성실하게 이행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때, ‘자기만의 고유한 생각과 판단’이 있는 사람이라면, 독재자의 생각이 전체 공동체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
“악의 평범성, 무사유의 죄”(한나 아렌트) 2 악당이 악당 짓을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악당이니까요. 문제는 악당이 악당 짓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지지 세력이 문제입니다. 바보들 때문에 바보가 아닌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일부 노인들이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멋진 한 노인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효암학원 이사장인 채현국 이사장의 인터뷰였습니다. 그 기사를 보면, 우리 사회의 노인들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점에서 부실하다고 지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부 노인들을 믿지 말라고 하신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나도 그분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시대적 상황 때문에 교육이 부실하다는 것입니다. 식민지와 전쟁으로 인해 생존의 문제가 더 컸기 때문에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