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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내가 살고 세상은 내가 스스로 변혁할 때, 비로소 변하기 시작한다.

세상의 변혁은 외부의 권위가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무식한 것이다. 자기 변혁은 자기가 누군인지 알려는 수고의 부산물이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올바른 말과 행동이 나올 수 없고, 자기 변혁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면밀한 관찰에서 시작한다. 나는 내가 오늘 마주치는 정보들과 사람들을,내가 경험하여 획득한 나의 시선이라는 색안경으로 볼 수밖에 없지만, 편견을 가진 내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인식하는 것이 자유로운 인생의 시작이라고 나는 믿는다. 신념과 이념처럼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는 일이 없다고 믿는다. 자기 인식을 통해 얻은 자유는 나에게 자연을 편견 없이 탐색할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한다. 자유로워야 조급해 하지 않고, 초조해 하지 않고, 여유를 갖게 된다.

배철현 교수는 우리의 온전한 행복을 방해하는 무식, 나태, 그리고 비겁을 물리칠 도구가 '조동사'라고 했다.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 내가 될 수 있는 그 인간이 '될 수' 있고, 그래서 그 인간이 '되어야만 한다'. 이 문장에서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되어야만한다'는 당위성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이다. 깨우친 인간은 그 가능성과 당위성을 가지고 지금-여기에서 언행을 통해 차근차근 정진한다. 이 순간의 실천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율곡 이이는 '구원(성인聖人이 됨)'을 산의 등산과 비유하였다. "산을 만나는 세 가지 층위가 있다. 산이 있다더라는 소문을 들은 사람, 산을 제 눈으로 올려 다 본 사람, 그리고 직접 산을 밟고 올라가 땀을 훔치며, 눈에 가득한 전망을 누리는 사람이 그것이다." 1단계가 독서이고, 2단계가 이해, 3단계가 체화(體化)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문(問)/사(思)/수(修)'라 했다.

이어지는 글은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으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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