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681)
"당신 옆에 낯선자가 바로 신이다." 여기서 신은 누구인가? 사진 하나, 생각 하나 4년 전 오늘 글이다 인문학은 질문이다. 그래서 두 책을 읽는다. 과 신앙은 분명한 해답이 아니라, 스스로 당연하게 여기던 세계관의 끊임없는 파괴이며, 새로운 세계로의 과감한 여행이고 동시에 그 과정에 대한 한없는 의심이다. 인문학의 핵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종교를 '신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종교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이다.다시 말하면, 종교는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니까 '무엇을 믿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예수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 예수는 자신을 따라 다니던 유대인들에게 삶에 대한 성찰과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당신 옆..
눈부신 빛 뒤편에 서 본 적이 있는가? 작년 여름에는 "강한 나라는 어뗗게 만들어지는가"란 소제목을 달고 있는 양정무 교수의 의 제3장 '로마 미술'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거기서 로마 귀족들이 사는 개인 주택 '도무스'를 알게 되었다. 개인이라는 개념은 원래 그리스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개인이라는 말의 프랑스어는 indiviuel이다. 이 말은 '분리될 수 없는'이란 형용사가 명사가 된 것이다. 인간 중심주의라는 휴머니즘, 이를 인본주의라고도 한다. 그 인본주의에서 개인에 대한 자유주의의 믿음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중요한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1. 나는 분리할 수 없는 존재이다. 즉 나는 부분이나 하부 시스템들로 분리할 수 없는 단일한 본질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내적 중심은 여러 겹의 껍데기로 둘러싸여 있다. 하지..
"기술이 인간의 이해력을 앞서는 시대에 우리의 두뇌를 미래로 데려다 줄 9가지 대응 원칙" 박수소리 시대정신 인본주의에서 개인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의 믿음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중요한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1. 나는 분리할 수 없는 존재이다. 즉 나는 부분이나 하부 시스템들로 분리할 수 없는 단일한 본질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내적 중심은 여러 겹의 껍데기로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내가 그런 껍데기들을 벗겨내고자 한다면, 내 안의 깊숙한 곳에서 단 하나의 분명한 내적 목소리를 발견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 진정한 나이다. 2. 진정한 나는 완전히 자유롭다. 3. 앞의 두 전제로부터, 다른 누구보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잘 안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왜냐하면 내 내면에 있는 자유의지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고, 진정한 자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도 나뿐이기 때문이다. ..
"나는 본 것을 그리지 않는다. 상상한 것을 그린다." '참나'를 찾는 여행 3년 전 오늘 공우했던 글이다. 2018년 내 생애 최고의 무더위를 고전 를 읽으며 보낸다. 이 고전이 나에게 우주를 새롭게 이해하게 한다. 모든 것은 우주 전체의 조화로운 원리와 상관 관계에 따라 순리대로 되어갈 뿐이다. 원리를 바꿀 수 없지만, 관계에 의해 그 원리의 조화가 달라진다고 본다. 내가 오늘 만나는 사람, 자연 그리고 물건과의 관계를 세심하게 만들어야 겠다. 그러면서 나의 상상력의 파워를 늘려야 겠다. 아이폰을 들고, "나의 이 작품은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접합점에서 탄생했다."고 말했던 스티브 잡스의 장면은 금세기 최고의 순간이었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없었다면, 이 스마트폰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과학기술은 방향성이 없다. 가치가 배제돼 있다. 그것을 어떻..
묵상(contemplation)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제3의 눈이다. 배철현 교수의 과 함께 '위대한 개인'되기 프로젝트 (9) "위대한 개인이 위대한 사회를 만든다."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소크라테스) '거룩함'이란 일상에서 탈출해 낯선 오감으로 세상을 감지하는 연습이다. 동일한 사물이나 사람을 깊이 응시하고 자신이 사라지는 상태로 진입하는 단계를 우리는 '관조'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조를 그리스어로 '테오리아(theoria)', 즉 '인간의 최선'이라고 했다. 이 'theoria'로부터 '이론'을 뜻하는 영어 단어 'theory'가 파생했다. 이론이란 고착된 편견이나 굳어진 도그마가 아니다. 반복과 인내는 천재의 어머니이다. 관찰이 예술을 만든다. 반복과 인내로 이루어지는 관찰을 '관조'라고 한다. 그러니까 위에서 말한 대로 '관조'..
침묵은 자신에게 몰입할 때 들리는 내면의 소리이다. 배침묵은 자신에게 몰입할 때 들리는 내면의 소리이다.철현 교수의 과 함께 "위대한 개인"되기 프로젝트 (6) "위대한 개인이 위대한 사회를 만든다." "기도란 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의 본성을 바꾸는 일이다." (쇠렌 키르케고르) 스마트(smart)라는 말이 지금은 "빠르고 똑똑하고 자발적인"이라는 말로 쓰이나, 원래는 "괴로움을 주는/고통을 수반하는" 뜻이었다. "편리하긴 하지만 나답지 못하게 방해하니 스마트폰은 괴로움을 주는 미운 오리쌔끼"이다. 스마트 시대에 '깨어 있는 나"로 산다는 것은 '스마트폰'을 끄고 내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나"가 보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미션을 알아가는 것이다. 거리에 서면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그러나 ..
매너를 습관처럼 몸에 익혀 ‘꼰대’를 벗어나는 길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오늘 아침도 어제에 이어 꼰대 이야기를 더 이어가 본다. ‘꼰대’는 사전적인 의미로 ‘선생님’이나 ‘늙은이’를 가리키는 속어이고, ‘꼰대질’은 보통 자기 세대의 가치관으로 시대가 지났음을 인정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용인될 만한 아랫세대의 문화나 행동에 ‘태클’을 거는 짓이다. 그러나 요즈음 사람들은 이 뜻만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최근에 자주 쓰이는 '꼰대'라는 말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예컨대, 꼰대는 기본적으로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주로 늘어놓으며 대화의 결론을 자기 마음대로 내놓는다. 꼰대는 “내가 왕년에 말이야.”로 시작하는 ‘추억 팔이’를 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고 포장하는데 능숙하다. 꼰대는 사회적 지위나 나이를 주로 강조한다. 그리고 꼰대질..
'매너를 모르면 꼰대 된다.' 오늘 아침도 를 이어가려 한다. 오늘 주제는 '매너를 모르면 꼰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매너는 에티켓과 다르다. 그리고 ‘꼰대’는 꼴이 사나워 볼 수 없는 꼴불견을 말한다. 매너와 에티켓은, 엄밀하게 말하면 그 뜻이 다르다. 에티켓이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사회적인 불문율로써 하나의 규범'라면, 매너는 실제 생활 현장 속에서 그 '에티켓을 바르고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다음의 예를 보면, 우리는 금방 이해 할 수 있다. 우리가 화장실에 들어갈 때 ‘노크를 하여야 한다'는 것은 규범으로서 에티켓이고, ‘노크를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하는 방법은 매너에 속한다. 따라서 에티켓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없다. 에티켓에 맞는 행동이라 해도 매너가 좋지 않으면 그 사람의 행동은 예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