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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침묵은 자신에게 몰입할 때 들리는 내면의 소리이다.


배침묵은 자신에게 몰입할 때 들리는 내면의 소리이다.철현 교수의 <심연>과 함께 "위대한 개인"되기 프로젝트 (6)
"위대한 개인이 위대한 사회를 만든다."

"기도란 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의 본성을 바꾸는 일이다." (쇠렌 키르케고르)

스마트(smart)라는 말이 지금은 "빠르고 똑똑하고 자발적인"이라는 말로 쓰이나, 원래는 "괴로움을 주는/고통을 수반하는" 뜻이었다. "편리하긴 하지만 나답지 못하게 방해하니 스마트폰은 괴로움을 주는 미운 오리쌔끼"이다. 스마트 시대에 '깨어 있는 나"로 산다는 것은 '스마트폰'을 끄고 내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나"가 보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미션을 알아가는 것이다.

거리에 서면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그러나 "잘 듣는다는 것" 혹은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 것"에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예언자를 히브리어로 "나비(nabi)"라고 한다. '나비'는 깊은 묵상과 기도를 통해 신의 음성을 듣고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그들은 신의 소리, 들리지 않는 소리, 침묵의 소리를 들었다.

선진 사회가 되려면,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보화를 발견해야 한다. 여기서 보화는 타인의 기준이나 욕망을 쫓아가는 집단적 배금주의가 아니라, 자신만의 '무언가'이다. 그리고ㄱ '회개'가 요구된다. '회개'란 말 그대로 하면, '잘못을 뉘우치고 고침'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회개를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틀과 규율을 어겨서 그것을 후회하고 다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화개란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신의 미세한 소리에 반응하는 영적인 운동이다.

회개하다는 라틴어로 '아기테 파에니텐티암(agite paenitentiam)'이며, 이는 '고해성사 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신약성서에는 '회개하라'를 '메타노에이테(metanoeite)'로 번역되어 있다. 이 말의 축자적 의미는 '마음을 바꾸라!'이다. 더 심오한 의미는 '당신 안에 숨겨진 신의 목소리를 듣고 순종하라!'는 뜻의 고대 히브리어 '슈브(shub)'이다.

예언자 엘리야는 '내면의 소리'를 듣었다. 그 소리는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할 때 비로소 들리기 시작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섬세한 침묵의 소리"였다. 신이란 외부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소리, 온 마음을 집중할 때 비로소 들을 수 있는 침묵의 소리이다. 이는 자신을 극한까지 밀고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이다.

'침묵의 소리'는 침묵과 소리가 합쳐진 형용 모순이다. 게다가 섬세한 침묵의 소리는 몰입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골방"이 필요하다. 우리가 각자의 심연으로 들어가 그 침묵의 소리를 듣고 싶다면, 각자 그 곳에서 신을 발견할 "골방"이 필요하다.

페북 친구 배일동의 사진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