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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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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영화: <그을린 사랑>과 <덩케르크> 기술 발전은 ‘시간의 비선형’을 특정 영화의 서사가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로 만들었다. 인터넷과 넷플릭스가 없던 시절, 시청자는 방송국이 정한 시간에 드라마 1편을 TV로만 본방 사수하는 수동적 존재였다. 지금은 누구나 N개의 스크린을 통해 수십 개의 드라마를 몰아 보고 건너뛰며 본다. 가게 문을 여는 특정 시간에만 쇼핑을 할 수 있던 경험은 아마존의 등장으로 사라졌다. 뉴스 소비, 관계 맺기 등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선형적 세상에서 시간은 유한하다. 시작과 끝이 있고 인과관계도 명확하다. 하지만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비선형 세상에선 시간이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특정 사건은 순차적으로 발생하지 않고 동시적으로 반복된다. 또 모든 것이 예측 불가능하다. 이런 세상일수록 주..
“세상에 놀라지 말고 할 수 있는 일만 하자.” 난 솔직히 고(故) 김종철 교수님을 잘 모른다. 그저 신문에서 그분의 글을 가끔씩 재미있게 읽고, 큰 통찰을 얻곤 하던 기억 뿐이다. 정희진 선생은 고 김교수님에게서 인생을 배웠다고 말한다. 나도 또한 흔들리는 장마철 아침에 눈이 크게 뜨였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뭘 먹고 살아야 하나? 이것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 속에서, 나는 내 삶 또한 언제나 임시방편이었고, 잘못과 민폐를 반복했었다. 지금이야 좀 안정되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애써 그러지 않은 척 할 뿐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정희진 선생이 깨달은 것처럼, 머리에 불이 번쩍 일어났다. 정선생의 말이다. "김종철 선생님의 삶과 죽음을 보면서, 나는 “세상에 놀라지 말고 할 수 있는 일만 하자”고 다짐했다." "세상에 놀라지 말고, 할 수 일만 하..
장마/안수동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커다란 자연(自然)의 입장에서 보면, 인생에는 의미가 없다. 우리들의 삶도 지구상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자연 순환의 미미한 사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의미는, ‘사회적 존재와 자연의 일부’ 라는 인간의 두 가지 조건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 에 따라 달라진다. 분명한 한 가지는 이름을 남기고 싶은 욕망, 이것이 '만악(萬惡)'의 근원인 "대문자 역사(The History)"(정희진)라는 사실이다. 가급적이 면,사는 동안 자연을 덜 망치고, 조용히 세상으로 잊혀지는 삶이 내가 생각하는 유일한 의미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이렇게 글을 시작하던 정희진 선생의 글은 편집장이셨던 김종철 교..
'지성의 연마' 외편 제12편인 "천지(天地)"에 "성인은 새끼 새처럼 먹는다(鷇食, 구식)"는 말이 있다. 새끼 새는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저 하는 일은 먹이 구하러 간 어미 새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 뿐이다. 어미 새가 돌아오면 어미 새의 입 속에 뭐가 들었는지 상관하지 않고 입을 쩍 벌린 채 기다린다. 맛없다고 뱉아내는 일은 없다. 그저 입 안에 넣어주는 먹이가 감사할 따름이다. 에피쿠로스의 말처럼, "풍요로움은 우리가 소유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향유하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그럼 이제부터는 어제에 이어, 에로스의 충동과 로고스의 비전을 결합하여, 소유와 집착에서 로고스의 네트워크로 건너가 고전과 접속하여 세상을 바꾸는 힘을 찾고 싶다. 여기서 에로스라는 말은 그냥 연애, 성 그런 것이 아니라, 생명..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 오늘 아침으로 꼰대 이야기는 마친다. 마침 몇일 전에, 유인권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님의 글을 읽었다. 제목이 "꼰대가 되지 않는 법"이었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확실하게 깨닫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갈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진다는 점이다. 공부한다는 것은 마치 더 이상 모르는 게 없을 것 같았던 우물 안을 나와서 새롭고 신기한 별천지를 끝없이 주유하는 것과 같다. 궁금한 것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던 것이 배움의 시작이었다면, 갈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다가 무언가를 비로소 하나라도 깨닫는 순간, ‘아, 이때까지 이걸 내가 몰랐었구나’ 하는 걸 역설적으로 배우게 된다. 결국 배움은 나의 아둔함을 나날이 깨달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도대체 우리의 아둔함은 어디가 끝일까? 무언가를 배우려 하지 않고, 살..
"에로스와 로고스의 향연" 내가 세상을 알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 경제는 계속 위기라고 들었고, 세상은 어둡고 올해가 가장 위기라고 했었다. 그래 그걸 믿고 올해만 넘기면 괜찮을 줄 알고, 계속 참았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하다. 언제부터 우리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노동으로부터 벗어난 삶을 살 수 있을까? 아직도 화폐와 노동이 우리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그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출구를 찾아 본다. 고미숙은, 노동과 화폐로부터 탈출 하려면, 자연, 생명 그리고 우리의 몸 같은 근원적인 문제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 호이나키는 에서 오늘날 권력과 부와 상상력과 지성과 문화생활을 조직하고 독점하려는 기관들은 다음과 같은 세 종류의 분리 혹은 고립을 만들어 낸다고 지적했다. 사람을 그 육체, 즉 몸과 장소와 시(詩)로부터..
꼰대 이야기 오늘 아침도 어제에 이어 꼰대 이야기를 더 이어가 본다. ‘꼰대’는 사전적인 의미로 ‘선생님’이나 ‘늙은이’를 가리키는 속어이고, ‘꼰대질’은 보통 자기 세대의 가치관으로 시대가 지났음을 인정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용인될 만한 아랫세대의 문화나 행동에 ‘태클’을 거는 짓이다. 그러나 요즈음 사람들은 이 뜻만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최근에 자주 쓰이는 '꼰대'라는 말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예컨대, 꼰대는 기본적으로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주로 늘어놓으며 대화의 결론을 자기 마음대로 내놓는다. 꼰대는 “내가 왕년에 말이야.”로 시작하는 ‘추억 팔이’를 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고 포장하는데 능숙하다. 꼰대는 사회적 지위나 나이를 주로 강조한다. 그리고 꼰대질..
'참나'를 찾는 여행 배철현 교수의 과 함께 '위대한 개인'이 되는 프로젝트 (5) "위대한 개인이 위대한 사회를 만든다." 인내는 열정과 몰입이 안겨주는 선물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그 아픔은 그 일자체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당신의 생각에서 옵니다. 당신은 당장 그것을 무효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인내 다른 이들이 도달할 수 없는 소중한 경지에 들어설 수 있는 비결은 어려움과 성가심을 덤덤하게 수용하도록 만드는 사랑이고, 그 사랑을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이 인내이다. 사랑과 인내는 하나이다. 사랑하니까 인내하고, 인내하다 보면 그 사랑이 더 깊어진다. 인내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최고의 덕목이다. 인내로 자신의 한계를 확장시킴으로써 처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