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은 ‘시간의 비선형’을 특정 영화의 서사가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로 만들었다. 인터넷과 넷플릭스가 없던 시절, 시청자는 방송국이 정한 시간에 드라마 1편을 TV로만 본방 사수하는 수동적 존재였다. 지금은 누구나 N개의 스크린을 통해 수십 개의 드라마를 몰아 보고 건너뛰며 본다.
가게 문을 여는 특정 시간에만 쇼핑을 할 수 있던 경험은 아마존의 등장으로 사라졌다. 뉴스 소비, 관계 맺기 등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선형적 세상에서 시간은 유한하다. 시작과 끝이 있고 인과관계도 명확하다. 하지만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비선형 세상에선 시간이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특정 사건은 순차적으로 발생하지 않고 동시적으로 반복된다. 또 모든 것이 예측 불가능하다.
이런 세상일수록 주체적 삶을 영위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너무나 급격하고 거대한 변화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벌어지고 있어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이를 만끽하려는 자세, 인생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를 견디겠다는 강한 긍정이 있어야만 ‘시간’이 아닌 ‘순간’이 모여 ‘영원’을 형성하는 시대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동아일보, 하정민, "비선형의 삶")
양적인 시간인 '크로노스적 시간'이 아니라, 질적인 시간인 '카이로스적 시간'으로 '때',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어제 오후는 <컨택트(arrival)>로 만난 드니 빌뇌브 감독 작품인 <그을린 사랑(Incendie)>을 보고 감동했다. 그을려도 사랑은 사랑이다. 그을리고 불타도 사랑은 사랑이다.
오는 8월 9일에 있을 "길위의 인문학" 둔산도서관 프로그램인 그리스비극함께 읽기에서 <오이디푸스 왕>을 다 읽었으니 이 영화를 함께 볼 예정이다.
그리고 비오는 오늘 오후에는 크리스토퍼 놀런의 <덩케르크>를 혼자 보았다. 덩케르크는 "해변에서의 1주일, 바다에서의 1일, 하늘에서의 1시간'이란 3개 시간대에서 벌어진 사건을 마치 같은 시간대에 벌어진 것처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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