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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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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역설이 주는 새로운 디지털의 길"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의 칼럼을 읽고 정리한 내용을 오늘 아침 공유한다. 인류의 삶은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 있을 때마다 변화를 겪었다. 이 코로나-19 역시 하나의 변곡점이 되어, 그동안 우리가 관습적으로 이어왔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어떻게? ▪ 사회적 거리두기로 촉발된 자발적 격리는 4차 산업의 확산과 가속에 불을 댕길 것이다. 랜선을 통한 타인과의 소통은 이미 진행 중에 있었다. 오감의 자극이 덜한 타인과의 소통은 그만큼 기계적이고 의례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코로나-19가 벌려 놓은 사회적 거리 사이로 이미 온라인 수업, 원격진료, 패밀리 케어, 스마트 워크, 온라인 유통이 아무런 저항 없이 진입했다. ▪ 코로나-19로 지금 진행되고 것은 큰 정부가 화려하게 복귀했고, 공급위기가 ..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서양 문화, 아니 인류의 문화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두 문명이 상호 대립과 보완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된다. 헬레니즘은 비록 유한하고 불완전하고 허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과 성찰을 통하여 현실의 복락을 탐미했다. 다음은 그런 헬레니즘이 구한 것들이다. - 인간의 이성을 짓누르는 무겁고 어두운 중세 기독교적 질서 속에서 암울함에 빠져 있던 예술가 보티첼리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던지며 르네상스 운동의 깃발을 들려 주었다. - 절제된 아름다움과 완성미를 추구했던 싸늘한 고전주의에게 폭풍처럼 밀려드는 청춘의 격정과 충동의 따뜻한 낭만주의(로망티즘)의 길을 열어준다. - 근대 기독교와 시민 사회 윤리의 편협함과 고루함에 질식할 것 같았던 생(生)의 철학자 니체에게 산소 같은 바람을 불어준..
우리는 너무 많이 떼 져서 다닌다. 우리가 지향하는 건강한 사회는 상처 입은 모든 이가 함께 존중 받는 곳이어야 한다. 고아나 독거노인처럼 소외된 이들도 완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엄한 위치에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경쟁이 일상이 된 오늘날, 가족과 둘러앉은 밥상마저 쓸쓸함을 채워 주기보다 서러움을 불러 올 때가 많다. 도시에서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떨쳐 내기가 참 어렵다. 그렇다고 다 버리고 산 속으로 갈 수도 없다. 인간은 원래가 소통하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이전에 먼저 자기 자신과의 행복을 완성해야 한다. 그래 우리는 자신과 고독한 시간을 가질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외부에서 추구할 때,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맨다. 그리고 진정한 관계가 아니라, 단지 주고받는 관계로 변할 뿐..
매력 자신을 제3자의 눈으로 가만히 응시할 수 없을 때, 나도 모르게 내면에 쌓이는 적폐가 바로 자만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편견이 여러 의견 중에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해답이라고 여기는 착각을 한다. 우리는 자신을 깨우치는 공부를 통해서만 자만이라는 미로에서 탈출할 수 있다. 이런 착각을 피하는 길이 자신의 제3자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다.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에겐 한 가지 치명적인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이것 때문에 비극적 파국을 맞이한다. 비극공연을 관람하는 모든 관객들은 아는데, 정작 주인공인 자신만 모른다. 그것이 자만이다. '위대한 개인'은, 남들이 보기에 소위 스펙이 좋은 인간이 아니라, 흠모하는 자신을 소유한 인간이며, 그런 인간을 위해 매일 매일 지금-여기서 연습하는, ..
소통과 소외는 서로 그 반대이다. 주말농장의 풀 뽑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풀을 낫으로 베기만 하지 잡초의 뿌리를 뽑지 않기로 했다. 농약은 당연히 뿌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잡초의 뿌리는 땅에 숨구멍을 만들어 기르는 직물의 숨통을 열어주어 작물의 성장을 돕기 때문이다. 사람살이 에서도 숨통이 중요하고 그 숨통을 서로 열어주어야 한다. 그게 무엇일까? 소통이라 생각한다. '욱'하거나 발끈하지 않아야 소통이 된다. 자기 생각과 다른 이를 만나면, 팩트만, 본질만 이야기 하고, 많이 들으면서 계속 했던 말만 반복하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판단하지 않고, 내 생각만 이야기 하는 것이다. 가급적 느낌은 말하지 않는다. 내 호인 "목계(木鷄), 나무 닭"처럼, 촤고의 싸움 닭은 뽐내지 않는다. 목계는 어깨의 힘을 빼고, 마음의 평화와 균형을 이루..
인문운동가의 인문 정신 1. 후마니타스, 즉 인문학은 사람의 학문이다. 사람이 뭡니까? 사람은 homo sapiens이고, homo faber, homo ludens이고 동시에 homo loquens, homo sexcus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이며, 뭔가를 끊임없이 만드는 사람이며, 쉼 없이 놀이하는 사람이며, 동시에 말하는 사람이면서 몸으로 교감하는 사람입니다. 인문학은 이 모든 문제를 다 다룹니다. 이 모든 것이 균형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끊임없이 형성되는 존재이지 결코 완성되어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Be가 아니라 Being인 것입니다. 인문학은 이런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항상 고민하게 만드는 학문입니다. 따라서 인문학의 힘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힘입니다. 2. 인문정신이란 ‘..
카벙클(carbuncle) 어제는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문정희 시인의 칼럼을 읽었다. 그 내용을 좀 공유한다. "바다거북에게 있다는 카벙클(carbuncle)이라는 이빨이 떠올랐다. 카벙클로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온 거북이만이 살아서 큰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알은 그만 모래 속에서 썩어 버리고 만다. 인간에게 카벙클은 언어가 아닐까. 언어로 자신을 깨고 밖으로 나와야 진정한 생명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나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 언어를 랑그와 빠롤로 구별하여 받아들여야 한다. 카벙클 이야기 좀 해 본다. 바다의 파도가 가장 높은 날, 그리고 여름 중 가장 뜨거운 날, 어미 거북이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거칠고 드높은 파도를 가르며 23000km를 헤엄쳐 자신이 태어난 해안으로 돌아온다. 5주에..
유언-아들, 딸에게/류근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상상력 없는 정치, 얇고 진부한 문화, 빈곤한 지성은 언어의 빈곤에서 나온 것이다. 인문학적인 힘이 없이는 진정한 미래를 열 수 없다." "그저 인간 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고 박원순 고소인) "나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나혜석) 언어학자 소쉬르(Saussure)는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언어를 랑그(langue)와 빠롤(parole)로 구별한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매우 어려웠다. 흥미로운 것은 결벽증으로 소쉬르는 책을 한 권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일반언어학 강의』는 제자들이 그의 강의를 듣고 쓴 노트들을 가지고 제자들이 엮은 책이라 한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오늘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