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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시월은 맺음의 시간인 동시에 버림의 시간이다.

2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0월 1일)

벌써 10월이다.  10월은 '십월'이 아니라, '시월'이어서 좋다. 그래서 가을의 여유와 넉넉함이 더 느껴진다. 또 그런 달이 또 있다. '6월'을 '유월'이라 한다. 그리고 시월은 맺음의 시간인 동시에 버림의 시간이다. 버림은 상실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향한 희망이다. 오늘 아침도 어제 못다한 <<도덕경>> 제39장의 정밀 독해를 이어간다. 제39장의 후반부이다.

故貴以賤爲本(고귀이천위본) 高以下爲基(고이하위기): 그러므로 귀한 것은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토대로 삼는다.
是以後王自謂孤寡不穀(시이후왕자위고과불곡) : 이런 까닭으로 제후나 왕은 스스로를 고아, 과부, 쭉정이 곡식이라고 부른다.
此非以賤爲本邪非乎(차비이천위본사비호) : 이것이 바로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 아니겠는가?
故致數輿無輿(고치삭예무예) : 지극한 명예에는 명예가 없다.
不欲琭琭如玉(불욕록록여옥) 珞珞如石(락락여석) : 덕 있는 사람은 귀한 옥처럼 처신하지 않고, 아무데나 굴러다니는 천한 돌처럼 처신한다. (구슬처럼 영롱한 소리를 내려 하지 말고, 돌처럼 담담한 소리를 내라.)

박재희 교수는 그 '하나'를 겸손이라 말한다. 나를 낮추고 비우는 겸손의 '도'가 그 '하나'라는 거다. 귀(貴)함은 나를 내려(賤)놓았을 때 다가오고, 높음(高)은 나를 낮춰(下)을 때 이루어진다. 천함 없는 귀함은 없고, 낮춤 없는 높음은 없다. 천함은 귀함으로 돌아가고(반), 낮음은 높음으로 되돌아간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위대해지는 그 '하나'는 바로 귀한 자의 천함과 높은 자의 낮춤이다. '하나'를 닮아 이런 겸손한 자세를 갖출 때, '하나'를 바탕으로 한늘과 땅이 본연의 의연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처럼, 인간도 인간으로서의 의연한 모습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높은 자들은 자신을 "고(孤)", "부족(寡)", 못남(不穀)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자신을 낮추고 내렸을 때 높음과 귀함이 다가온다.

임금이 자신을 부를 때 쓰는 표현인 "고(孤)", "과(寡)", "불곡(不穀)"이라는 단어는 '고아'와 '과부', '쭉정이 곡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고"는 '고독하다'는 의미로, "과"는 "과덕(寡德)하다'로, "불곡"은 '만물을 생양(生養)'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읽는다. 어쨌든 임금은 가장 낮고 미천한 존재로 스스로를 격하시킴으로써 가장 높고 귀한 존재가 된다. 가장 낮은 것이 가장 높은 것이고, 가장 천한 것이 가장 귀한 것이다.

어제 우리가 읽었던 것처럼, 하늘이 높다고 으스대면 찢어질 것이고, 땅이 넓다고 으스대면 폭발할 것이다. 귀신이 대단하다고 설치면 신령을 잃을 것이고, 골짜기가 깊다고 자만하면 텅 비어 생명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만물이 자신의 존재를 강조하면 생명력을 잃을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가 교만하면 권력을 잃고 몰락할 것이다. 노자는 이런 역설(反)로 세상의 권력자에게 권력의 행사를 제어하고, 낮춤과 비움으로 세상을 대하라고 한 것이다.

덕 있는 사람은 귀한 옥처럼 처신하지 않고, 아무데나 굴러다니는 돌처럼 처신한다. 너무 귀하게 받들면 귀함을 모르게 된다. 그래서 "치삭예무예(致數輿無輿)", 지극한 명예에는 명예가 없다고 했다. 여기서 "여(輿)"는 ‘수레 예’로 많이 쓰이지만 여기서는 ‘명예 예’로 쓰였다. 수레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타고 다니는 화려한 수레로서 고귀한 신분을 나타낸다. 수레를 자주 타는 것은 수레를 아니 탐만 못하다. 이 말은 자주 명예를 얻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오히려 명예가 사라진다는 거다.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귀한 자식일수록 천하게 키우고, 개 중에서는 똥개가 최고다. 마지막 문장, "불욕녹록여옥(不欲琭琭如玉) 락락여석(珞珞如石)"은 "녹록하여 옥같이 빛나기를 삼가고, 낙락하여 돌같이 투박하고 견실하여라"는 말이다.

'녹록하지 않다'는 '인생이 녹록하지 않아서 힘이 든다'로 쓰인다. '녹록(碌碌)하다'에서 쓰이는 한문이 다르다. '평범하고 보 잘 것 없다'다는 말이다. 여기서 "녹록(琭琭)"은 구슬처럼 아름다운 모양을 말한다. "락락(珞珞)"은 '돌처럼 덤덤한 모양'이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투박한 돌멩이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오랫동안 자기 자리에 있을 수 있다. 노자는 반짝이는 보석이 아닌 투박한 돌멩이로 살아야 한다고 하는 거다. 리더의 이런 처신을 '소박(素樸)'이라 한다. 소박함을 실천하고, 사욕을 버리고, 지식과 욕망의 찌꺼기를 내려놓으면 더욱 강해지고, 지속할 수 있다. 박재희 교수에서 얻은 생각들이다.

매년 10월이 오면 기억하는 시를 오늘 아침에 공유한다. 가을이 오면, "우리는/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오늘도/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10월/오세영

무언가 잃어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 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번의 만남인 것을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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