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10월 3일)
어제는 주일과 오늘 국경일 사이에 낀 말로, 대체 휴일이었다. 프랑스는 일요일과 공휴일이 화요일인 경우, 다리를 놓아 월요일도 쉰다. 이를 "faire le pont"이라 한다. 'le pont(르 뽕)'은 '다리'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일요일과 오늘 국경일에 다리를 놓고, 휴일을 만든다는 말이다. 그래 딸과 수녀 누나를 만나 고향에서 점심을 함께 먹고, 친구네 밤 과수원에 가 밥 줍기를 했다. 아침 사진이 그 밤들이다. 내 딸은 밤을 까는 기술이 거의 '달인' 수준이다. 나는 딸이 잘 까놓은 알밤을 몇 개나 손쉽게 먹는다. 그 때마다 딸이 하는 말, "아빠. 잘 드시는데, 그래도 저의 밤 까는 수고로움을 기억하며 드세요."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수고를 잊고, 많은 것들을 잘도 취한다. 내가 살아 있는 이 순간도 나 혼자의 힘이라고 보다는 부모님의 살을 깎는 수고로움, 그리고 수많은 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땀의 노력으로 살아가는 것인데, 그 수고로움에 감사하지 못한다. 오늘 아침에 성찰한다. 가급적 다른 사람의 수고에 대가를 치루거나, 아니면 내가 직접 수고로움을 행하며 내 삶을 살리라. 아니면 단순하게 살며, 바라는 것을 최소화리라.
고향을 한자로 이렇게 쓴다. 故鄕. 古鄕, 이게 아니다. 고향은 단지 단순히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오랜 시간 전의 동네가 아니다. 故자는 '연고'이고, '근거'이고, '원래'이고, '본래'를 의미한다. '까닭'이자 '연유'다. 그러니까 고향은 '나의 까닭'이다. 거기서는 내가 '일반 명사'로 이탈하지 않고, '고유 명사'로 살았던 곳이다. 반면, '나'들이 '타자'들의 거대한 공간에서 또 다른 '타자'로 동화되어 가는 곳은 타향(他鄕)이다. 고향에 산다는 것은 '나'로 사는 일이다. 내가 '나'로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일원으로 존재해 버리면, 그것은 모두 타향살이다. '나'를 삶의 주인으로 두지 못하고, 그 주인 자리를 화장기로 꾸며 놓은 뻣뻣한 가면에 양보하고 사는 사람은 고향을 잃고 방랑하는 사람이다. 고향은 바로 내가 나로 드러나는 곳이다. 네 주인 자리를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람, 모두 고향을 떠나지 않거나 고향으로 되돌아 온 사람이다. 그 고향 친구의 산에 밥 줍기를 한 것이다.
밤/오탁번
할아버지 산소 가는 길
밤나무 밑에는
알밤도 송이밤도
소도록이 떨어져 있다
밤송이를 까면
밤 하나하나에도
다 앉음앉음이 있어
쭉정밤 회오리밤 쌍동밤
생애의 모습 저마다 또렷하다
한가위 보름달을
손전등 삼아
하느님도
내 생애의 껍질을 까고 있다
찌꺼기는 오장육부에 퇴비로 두둑이 묻히는
스티브 잡스는 "스테이 헝그리(Stay hungry!)"라고 했다. '배고프게 살라'는 뜻이다. 내게는 그런 배고픔이 필요하다. 서산대사는 '춥고 배고플 때 도심(道心)이 생긴다'고 말했다. 출가할 때 내가 가졌던 굶주림, 그걸 다시 찾아야 했다." 그가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수행을 하는 이유란다. 그러니까, 그의 말에 따르면, 낯설고 외로운 곳에 있어야 하루 하루가 도전하는 삶이 된다는 것이다. 익숙한 곳에서 번잡하게 살다 보면, 시스템에 안주하며 매일 똑같은 삶을 살며, 시간에 함몰된다. 아니면, 굶주려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가 한 말이 생각난다. "가난한 사람이란 적게 가진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람이다." 더 많이 먹고 싶어 하고, 더 많이 마시고 싶어 하고, 더 좋은 차 가지고 싶어 하고, 그 바람이 끝이 없다. 그 바람보다 오히려 굶으라는 말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현각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굶주림, 그건 영적 외로움이라 본다." 그러니까 부족할 때, 배고프고 외로울 때, 우리 안에서 이런 질문들이 솟아오른다는 것이다. 편하고 안락하면, 질문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왜?'라는 물음표가 생기지 않는다는 거다. 다음과 같은 물음들이 자연스럽게 솟아 오른다는 말이다.
▪ '나는 누구인가?',
▪ '왜 사는가?',
▪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질문이 '참나(true self)'를 찾는 길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윤정구 교수의 글에서 다음 그림을 만났다. 나는 생각을 도표로 잘 정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진성리더십 욕구 7단계 모형도 '배고픔의 과정'을 묘사한 것이라 했다. 매슬로우(Maslow)가 했던 가정은 생존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아래 단계가 완성되면 그 안에서 오두막을 짖고 만족해가며 탈출하지 않고 배고픔을 잊고 살겠지만 성장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다음 단계의 배고픔을 찾아서 여정을 떠난다는 거다. 생존과 성장의 삶을 넘어 지속가능한 번성의 삶이 가능한 것은 이들 "진성리더"들이 자신의 삶을 이끄는 진실한 배고픔에 대한 질문 때문이라는 거다. 이런 진실한 삶에 대한 배고픔은 세상을 바꾼 모든 리더들의 공통된 배고픔이라는 거다. 스티프 잡스의 다음 말이 "Stay Hungry! Stay Foolish!"이 더 깊이 와 닿는다.
좀 더 길지만, 원문을 읽으시려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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