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9월 30일)
노자 <<도덕경>> 제39장을 읽는다. 사람들이 이 장에 붙이는 제목들은 다양하다. "보석이 아닌 돌이 되어라", "예부터 '하나'를 얻는 것들이", "귀한 자식일수록 천하게 키운다", 높은 것은 낮은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등이다.
이 장의 키워드는 "하나(一)"이다. "하나(一)"는 숫자 가운데 가장 단순하고 작은 숫자다. 양적으로 보면 가장 적고 보 잘 것 없다. 하지만 모든 숫자의 시작이고, 근본이다. 하나가 없으면 수학이라는 복잡한 학문 체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제39장에서 노자는 도와 덕의 원리를 숫자 하나에 빗대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가장 간단하고 보 잘 것 없는 숫자이지만 그로부터 오만 가지 숫자가 파생되듯이, 도(道) 또한 가장 단순하고 보 잘 것 없는 것에서 시작해서 가장 크고 귀한 덕을 이룬다.
제10장의 "포일(抱一)". 제22장의 <<일(一)>>은 "태일생수(太一生水)"의 "태일(太一)"과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왕필은 "일"은 "수지시(數之始, 수의 시작), "물지극(物之極)"이라 했다. 노자 철학에서 "일"은 "도"와 같은 맥락에서 쓰이지만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일"은 '유'와 '무'의 세계를 연결하는 생성의 작용이 있다. '무'의 작용을 지니면서 '무'는 아니고, 또 '유'의 작용을 지니면서 또 '유'는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이며 우주 창조력의 상징이다. "태일생수"의 "태일"과 아주 유사하다. 제42장에서는 "道生一(도생일) 一生二(일생이) 二生三(이생삼) 三生萬物(삼생만물): 도가 하나를 낳고,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는다."고 했다. '하나'는 '도'에서 나온 것이다. 오강남은 '하나'를 비존재(non-being)로서의 도에 대응하는 존재(being)의 측면으로서의 도, 비존재와 존재가 맞닿는 경계의 자리로서의 도라 할 수 있다고 했다. 현존하는 모든 것이 이 '하나'를 통해 이루어졌고, 그런 뜻에서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그로 말미암지 않고는 이루어진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신유학의 용어를 빌리면, '하나'란 '무극(無極)'에 대응하는 '태극(太極)'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다음 문장에서 인상적인 것은 '압운(押韻)'이다. "청(淸)-녕(寧)-령(靈)-영(盈)-생(生)-정(貞)"과 "렬(裂)-발(發)-헐(歇)-갈(竭)-멸(滅)-궐(蹶)"에서 운을 찾을 수 있다.
昔之得一者(석지득일자) 天得一以淸(천득일이청) : 예부터 하나를 얻은 것들이 있다. 하늘은 하나를 얻어 맑아지고
地得一以寧(지득일이녕) 神得一以靈(신득일이령): 땅은 하나를 얻어 편안해지고, 신은 하나를 얻어 영험해지고
谷得一以盈(곡득일이영) 萬物得一以生(만물득일이생): 골짜기는 하나를 얻어 가득 차게 되고, 만물은 하나를 얻어 생장하게 되고
侯王得一以爲天下貞(후왕득일이위천하정) 其致之(기치지): 제후와 왕은 하나를 얻어 천하를 바르게 하니 이 모두가 하나로 인해 가능해진 것이다.
天無以(一)淸(천무이청) 將恐裂(장공렬): 하늘은 그것을 맑게 하는 것이 없으면, 장차 무섭게 갈라지고
地無以寧(지무이녕) 將恐發(장공발): 땅은 그것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없으면, 장차 무섭게 흔들리고(드러내고, 갈라지고)
神無以靈(신무이령) 將恐歇(장공헐) : 신은 그것을 영험하게 하는 것이 없으면, 장차 무섭게 막히고(소진하고, 없어지고)
谷無以盈(곡무이영) 將恐竭(장공갈) : 골짜기는 그것을 가득 차게 하는 것이 없으면, 장차 무섭게 고갈되고
萬物無以生(만물무이생) 將恐滅(장공멸): 만물은 그것을 생장시키는 것이 없으면, 장차 무섭게 소멸하고
侯王無以貴高(후왕무이귀고) 將恐蹶(장공궐): 제후와 왕은 그들을 귀하게 높이는 것이 없으면, 장차 무섭게 거꾸러질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一)'는 '도'라 말할 수 있다. 만물을 낳고 기르는 그 하나, 자신의 공을 드러내지 않는 그 하나, 간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지켜봐 주는 그 '하나'를 도로 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 하나를 통해 생명력을 얻고 평온을 찾는다. 하늘이 맑은 것도, 땅이 평정한 것도, 신이 신령한 것도, 골짜기가 가득한 것도, 여러 가지 사물이 생성 변화하는 것도, 심지어 지도자가 훌륭하게 되는 것도 위에서 말한 '하나' 덕택이라는 거다. 이 근본적안 바탕인 '하나'에 뿌리박고 있지 않으면 하늘도 그 밝은 빛을 잃고 갈라질 것이고, 땅도 흔들릴 것이고, 그 밖의 모든 것이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말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하나(一)를 얻는다는 것'은 스스로 존재하는 도가 자신을 드러내는 원리, 규칙, 방법을 일컫는다. 도가 현실세계에서 덕으로 구현되면, 천하는 맑아지고(淸), 땅은 편안해지고(寧), 신은 영험함을 얻고(靈), 계곡은 빔으로 가득 차고(盈), 만물은 생장하고(生), 통치자는 이로써 세상을 바로 잡는다(貞). 이 말은 땅을 비롯한 모든 것이 '하나'를 바탕으로 한 삶을 살 때 제 구실을 다하듯, 인간, 특히 리더도 '하나'를 근본 원리로 삼고 살아야 가장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거다. '하나'를 근본으로 하는 삶은 무엇인가? '하나'는 모든 것을 꼴 지어 주지만 스스로 어떤 꼴을 취해서 자기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수적으로도 그것은 모든 숫자의 시작이며 바탕이지만, 동시에 모든 숫자 중 가장 작은 숫자이다. 이런 뜻에서 '하나'는 자기 낮춤의 최고 상징이다.
벌써 오늘이 9월의 마지막 날이다. 세월이 빠르다.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 세월을 두고, 우리는 "백구과극(白駒過隙)"이라 한다. 장자가 한 말이다. 장자는 우리의 삶을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이 사는 시간이라는 것은 마치 흰 망아지가 벽의 갈라진 틈새를 내달리며 지나치는 순간 정도다. 홀연할 따름이다!"(<<장자>> 외편 <지북유>)고 했다. 이를 간단히 우리는 "백구과극"이라 한다. 우리의 삶이 "마치 흰 망아지가 벽의 틈새를 지나치는 순간"이라는 백구과극이 실감나는 아침이다.
오늘의 화두 "하나"는 비움의 미학이다. 넘치는 것보다는 조금 모자란 것, 지나치게 날카로운 것보다는 돌처럼 둥글둥글하고 원만한 것에 '도(道)'가 있다는 것이 노자의 생각이다. 재산도 마찬 가지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재물을 쌓아 두는 것보다는 적당하게 벌어서 알뜰살뜰 살아가는 것이 행복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사회적 명성도 그것에 너무 집착하면 몸에 해롭다고 본다. 적당하게 공을 세웠으면 겸손하게 몸을 뒤로 물리라고 말한다. 그래야 신상에 허물을 남기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 그런 예를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더 많은 권력, 더 많은 재물, 더 많은 명성을 쌓으려 다가 오히려 가진 것을 잃고 이름을 더럽히는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 연예인들을 우리는 너무 많이, 너무 자주 보고 있지 않은가? 오늘 아침 시처럼, 나 "하나"부터 '도(道)'로 "꽃"을 피우자.
나 하나 꽃 피어/조동화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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