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아원부지노(我願不知老)': '나의 바램은 늙어감을 모르는 것이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하루 종일 오라는 소식은 없고, "남은 연휴에도 친목 모임을 자제하고, 안전한 집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해주세요. 사람 간 만, 접촉이 줄어들면 바이러스 이동을 막을 수 있습니다'라는 안전 안내 문자만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는 딸과 수통골에 가서 점심을 먹고 산책을 했고, 저녁에는 좋아하는 친구들과 송이버섯에 여러 종류의 전과 함께 '주님'을 모시는 호사를 누렸다. 감사한 일이다. "일년 열 두 달 삼백육십오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 말을 체험한 날이다.

추석의 순수한 우리 말은 '한가위'이다.  '한가위'는 아주 오래 전부터 조상 대대로 지켜 온 우리의 큰 명절로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고,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내는 날이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다고 해서 이런 말이 나온 것이다. 어제 저녁은 정말 그런 날이었다. 최근에 알게 된 윤사장이 송이 버섯과 막걸리 그리고 소고기, 그리고 우리들에게 늘 기쁨을 주는 김 선생님은 처음 보는 '상상력'의 산물들인 전과 디저트 초콜릿 그리고 과일 등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왔다. 나는 흥에 취해 노래도 하고, 와인까지 막 마셨다. 나눈다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다. 특히 명절에 소수가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리 두기'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배철현 교수는 거리두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이다. 나는 이 말을 '물리적 거리 두기'로 바꾸었으면 한다. 두 번째는 '다른' 자신의 삶을 응시해 군더더기가 없는 삶으로 전환하는 '생활 속 거리 두기'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이 '수동적인' 거리두기는 개인의 자발적이며 능동적인 '생활 속 거리두기' 실천을 통해서만 성공한다.

배철현 교수가 말하는 개인의 '생활 속 거리 두기'란 자신의 언행을 깊이 관찰하는 '자기 응시'가 필수다. 인간은 어제의 습관대로 오늘 행동하기 마련이다. '생활 속 거리 두기'란 그런 어제의 삶을 지속하고 연명하려던 자신을 연민의 눈으로 보는 행위다. 그런 과거의 자신의 생각, 말, 그리고 행동을 천천히 복기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고 감동적이지 않은 언행을 버리겠다고 다짐하는 결심이다.

지금 우리에게 '거리'라는 말은 강요 받기때문에 부정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적당한 거리는 우리 삶을 더 여유롭게 해주고, 질서를 잡아준다. 프랑스어로 거리는 '디스땅스(distance)'라 한다. 배철현 교수는 거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거리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만물을 개체로 존재하게 만드는 유일한 장치다. 만일 만물이 '거리두기'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개체가 아니다. 우주 안에서 그런 거리를 용납하지 않은 상태가 '혼돈(chaos)'이며 혼돈이 지배하는 장소가 '블랙홀'이다." 블랙홀 안에서 만물은 거리두기를 파괴한 채, 무형의 한 덩어리로 존재한다. 따라서 개인으로서의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타자와의 거리두기가 필수적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거리두기를 무시하고 상대방의 공간을 무례하게 침입한다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 질'이며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다.

그래 나는 거리 두기로 만들어 지는 '빈 틈'을 좋아한다. 틈이 있어야 햇살도 파고 든다. 빈틈없는 사람은 박식하고 논리 정연해도 정이 가질 않는다. 틈이 있어야 다른 사람이 들어갈 여지가 있고,  이미 들어온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빈 틈이란,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의 창구이다. 굳이 틈을 가리려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열어 놓을 필요가 있다. 그 빈 틈으로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이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빈 틈은 '허점'이 아니라, 여유이다. 몸과 마음에 돋아 난 가시를 버리는 행위가 '생활 속 거리 두기'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 가장 핫(hot)한 인물은 나훈아이다. 그의 나이가 벌써 74세라서 놀랐다. 자기 나이 먹는 것은 모르고, 그가 젊다고 생각했다. 나는 원래 TV를 보지 않는다. 추석 명절 전날 멋진 콘서트를 한 모양이다. SNS로 몇 개의 사진을 보았는데, 그가 70대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노래도 잘하지만, 건강을 어떻게 유지하는지 궁금하다. 난 사람이다. 언젠가 친구의 SNS 담벼락에서 보고 적어 둔 말이다. '아원부지노(我願不知老)' '나의 바램은 늙어감을 모르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이 말을 소개하면서 친구는 "무언가 골똘하면 먹는 것도 잊고, 깨치면 즐거워 근심을 잊고, 늙어감을 모르게 된다"고 썼다.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원태연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그렇게 따뜻하고 눈물이
나올 만큼 나를
아껴줬던 사람입니다.
우리 서로 인연이
아니 라서 이렇게 된 거지,
눈 씻고 찾아봐도
내 겐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따뜻한 눈으로
나를 봐줬던 사람입니다.
어쩜 그렇게
눈빛이 따스했는지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살아도
이 사람은 이해해주겠구나
생각 들게 해주던,
자기 몸 아픈 것보다
내 몸 더 챙겼던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사랑해 주었던
한 사람입니다.
내가 감기로 고생할 때
내 기침 소리에
그 사람 하도 가슴 아파해
기침 한 번 마음껏 못하게
해주던 그런 사람입니다.
지금 그 사람
나름대로 얼마나
가슴 삭히며
살고 있겠습니까?
자기가 알 텐데.
내가 지금 어떻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을 텐데.
언젠가 그 사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멀리 있어야 한다고,
멀리 있어야 아름답다고.
웃고 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모릅니다.
내가 왜 웃을 수 없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과 하도 웃어서
너무너무 행복해서
몇 년치 웃음을
그때 다 웃어버려서
지금 미소가
안 만들어진다는 걸.
웃고 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모릅니다.
인연이 아닐 뿐이지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그 사람 끝까지
나를 생각해주었던
사람입니다.
마지막까지
눈물 안 보여주려고
고개 숙이며
얘기하던 사람입니다.
탁자에 그렇게 많은
눈물 떨구면서도
고개 한 번 안 들고
억지로라도 또박또박
얘기해 주던 사람입니다.
울먹이며 얘기해서
무슨 얘긴지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 사람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알 수 있게 해주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그렇게 따뜻하고
눈물이 나올 만큼
나를 아껴주었던
사람입니다.
우리 서로 인연이 아니 라서
이렇게 된 거지,
눈 씻고 찾아봐도
내게는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인연이 아닐 뿐이지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정말 내게는
그런 사람 없습니다.

요즈음 내가 늘 다니는 탄동천 산책길에는 오늘 아침 사진처럼 예쁜 노란 꽃이 지천이다. 돼지감자 꽃이다. 돼지감자는 감자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못 생겼다. 그런데 꽃과 잎은 감자와 같이 생기지 않았는데, '뚱딴지'같이 감자 같은 뿌리가 달렸다고 '뚱딴지'라 한다. 그래 우리는 일상에서 생김새나 성품이 완고하고 우둔하며 무뚝뚝한 사람 또는 엉뚱한 사람을 일컬어 ‘뚱딴지 같다’고 비하하는 말로 쓴다. 요즘은 주로 엉뚱한 행동이나 말을 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시 다음을 이어간다.

뚱딴지는 터무니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엉터리'와 의미가 일맥상통한다. 또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다'는 속담과도 의미가 비슷하다. ‘엉터리'는 '사물의 기초'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그래서 ‘엉터리 없다’고 하면, '어떤 일의 기초나 근거가 없다', 곧 '이치에 맞지 않다'는 뜻이 된다. 이 말을 응용하여 허황된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엉터리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엉터리없는 사람'을 그냥 ‘엉터리'라고 하는 것도 표준말로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잘못 알려진 말이 널리 쓰이게 되니까 할 수 없이 표준으로 삼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말이 나왔으니 좀 더 말해본다. ‘엉터리'와 비슷한 말 가운데 '‘터무니'가 있다. '터무니'는 '터를 잡은 자취'를 뜻하는 말로서, “수십 년 만에 고향에 갔더니 우리 가족이 살던 터무니가 사라졌다"고 쓸 수 있다. 이 말은 또, 정당한 근거나 이유를 나타내는 말로도 널리 쓰여 왔다. “변명을 하더라도 터무니가 있어야  통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정당한 근거나 이유가 없을 때, 우리는 ‘터무니없다'고 말한다. 다만 ‘엉터리 있다’는 말이 없는 것처럼, '터무니 있다'는 말은 쓰지 않는다.

이어지는 글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디지털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원태연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