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젠 하루 종일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내렸다. 제주도를 다녀온 후 여독(旅毒)이 풀리지 않았는데, 서울 강의를 다녀와야 했다. 오늘 아침은 해가 떴다. 조금씩 물기를 빨아들이겠지. 내 여독도 데리고 갔으면 한다. 다행히 10월 3일 개천절이라 쉬는 날이다. 여독이란 '여행으로 말미암아 생긴 몸의 피로'이다.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오감각을 다 사용하지 않는다. 습관에 따라, 익숙한 것만 보고, 듣는 것만 듣는다. 그런데 여행을 하면, 안 보던 것을 보아야 하고, 듣지 않던 말을 들어야 한다. 거기서 '독'이 쌓이는 것이다. 빨리 일상으로 돌아와야 여독이 풀린다. 오늘 지나면 괜찮아질 것 같다. 벌써 오늘 아침은 덜 불편하다. 좀 더 젊었을 때는 여독을 몰랐는데, 나이를 먹은 것 같다.
이젠 여행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여행사에 맡겨, 내 의지와 관계 없이 돌아가는 '패키지 여행'은 그만 해야 겠다. 식당도 내 의지와 관계없이 들어가면, 수 십 명씩 "끌려온 개"처럼 나란히 앉아 음식이 아니라, "사료"를 먹는 것이다. 물론 맛이 없거나 음식이 부실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먹힘을 당하는 음식 서비스 방식 문제를 탓하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여행이니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겠다.
여행이니 여독이니 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란 말이 나온다. 어린 영웅 테세우스가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여행 길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악당이 다마스테스이다. 그는 여행객을 구슬려 자신의 집에 하룻밤 묵게 했다. 그는 여행객이 깨어 있을 때는 갖은 친절을 베풀었다. 하지만 여독에 지친 여행객이 깊이 잠이 들면 조심스럽게 그의 이불을 걷고 침대와 그의 키를 비교했다. 여행객이 살아남으려면 그 키가 침대 길이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아야 했다. 그는 만약 여행객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사지를 강제로 늘려 죽였고, 길면 잘라 죽였다. 여행객의 키가 침대 길이와 일치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다마스테스의 손에 죽은 여행개들은 대부분 키가 침대보다 작았다. 그래서 그는 ‘잡아 늘이는 자’라는 뜻의 프로크루스테스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다마스테스가 여행객들에게 했던 방식대로 그를 침대에 뉘여 잡아 늘여 죽였다. 여기서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란 말이 나오는데,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교조주의적인 생각’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여행에서 얻은 것은 '비웠다'는 것이다. 융통성 있게 살 생각이다. 이젠 교조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그래 나를 채우려 하지 말고, 비울 생각이다. 비우고 덜어내 텅 빈 고요함에 이르면, 늘 물 흐르듯 일상이 자연스러워진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 포장하지 않으며, 순리에 따를 뿐 자기 주관이나 욕심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그의 모든 행위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항상 자유롭고 여유롭다. 샘이 자꾸 비워야 맑고 깨끗한 물이 샘 솟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만약 비우지 않고, 가득 채우고 있으면 그 샘은 썩어간다.
가을이 오려면, 여름이 지쳐야 한다. 그리고 웅덩이를 다 채워야 한다. 나도 지쳤다.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고 싶다. 그래야 가을이 "제가 가진 모는 것을 다해 가을이" 되는 것처럼, 나도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내가 될 것 같다.
가을의 문턱에서/김보일
무엇에 지칠 만큼 지쳐보고서 입맛을 바꾸어야지.
무엇을 한 번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이거저거 집적대는 것은
자연이 젓가락을 움직이는 방식은 아닌 것 같다.
초록이 지쳐 단풍든다는 말이 자연의 이치를 여실하게 드러내 주는 말은 아닐지.
영과후진盈科後進, 물은 웅덩이를 다 채우고 흘러간다던가.
지칠 만큼 여름이었고, 벌레들은 제 목청을 다해 울었으니
이제 가을도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해 가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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