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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리더의 4 가지 덕목: 카리스마, 자비, 안목 그리고 원칙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2월 28일)

내년에는 천재적 삶을 살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천재(天才)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구별된 일을 발견하고, 그 과업을 위해 순교할 만한 각오를 지닌 사람이다. 그런  삶은 자신의 공동체 뿐만 아니라 시, 공간을 초월하여 여전히 삶의 문법을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역사는 이들을 통해 도약하고 진보한다. 시대는 그런 천재를 언제나 기다린다.

천재는 말이 아니라, 말과 일치된 행동으로 구별된 독창적인 삶을 추구한다. 내년에도 말보다 실천에 더 무게를 둔다. 신은 언행일치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준다는 걸 나는 안다. 그게  ‘카리스마'이다. 카리스마는 이상한 표정이나 움직임, 혹은 자아 전시적인 치장이 아니라,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오늘 나는 모처럼 기회를 잡아 2박 3일 제주도를 왔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너무 일러 <인문 일기>를 저녁에 쓴다. 사진은 비행기 안에서 찍은 거다 구8름 위를 달려 왔다. 비행기 안에서 나는 이런 생각들을 했다.

배철현 교수는 자신의 책, <<배철현의 위대한 리더>>에서 "자신에게 리더인 사람이 리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리더의 4 가지 덕목으로 카리스마, 자비, 안목 그리고 원칙을 리더가 갖추어야 할 4가지 덕목으로 선정하였다. 나는 위대한 리더를, 내가 꿈꾸는, '위대한 개인'으로 바꾸어 보았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위대한 개인'이 '위대한 사회'를 만든다고 믿고, 인문운동 활동을 하고 있다. 한 장 한 장의 단단한 벽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웅장한 건물이 설 수 없듯이, '위대한 개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위대한 사회'가 존재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단단한 벽돌과 같은 '위대한 개인'은 매순간 자신을 독수리의 눈으로 관조하고, 자신이 미래에 이루어야 할 임무를 찾아,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혼과 열을 다해 최선의 경주를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매일 아침 인생의 초보자가 되고, 오늘은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는 사람이다. 제주도에서의 3일 동안 한 해를 되돌아 보고, 2022년을 설계할 계획이다.

말 그대로 하면, 리더는 앞서 나가는 사람이다. 선도(先導)하는 사람이다. 그러려면 우선 스스로에게 리더여야 한다. 왜냐하면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 리더의 하루는 '주저(躊躇)'의 연속이다. 확신과 환호가 아니다. 그는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은 길을 개척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저는 '신중(愼重)'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이런 '위대한 개인'은, 마치 독수리처럼, 더 높은 곳으로 치솟아 올라 현실을 파악하고, "어두운 숲속"(단테 <<신곡>>) 너머에 있는 '천국'을 찾아낸다. 누구도 자신의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는 "어두운 숲"이, 모두를 위한 지름길이란 사실을 안다.

우리의 일상은 항상 딜레마(Dilemma, 일반적으로 두 개의 판단 사이에 끼어 어느 쪽도 결정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는 것) 앞에 놓인다. 이 앞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길을 옳은 길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대중과 "위대한 개인"의 차이가 드러난다. 대중은 자신의 의견을 빠르게 주장하지만, 리더는 모든 이들의 서로 다른 요구를 경청한다. 그리고 안타까워 한다. 그래서 리더는 연민(憐憫)한다. 연민하기 때문에 주저하는 거다.

주저는 대충 보는 것과 다르다. 주저하는 것은 일상의 문제 앞에서 한참 서서 보는 행위를 말한다. 대충보기와는 다르다. 대충보기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갖고, 자신에게 익숙한 대로 보는 행위이다. 그래 구별된 공간에서 구별된 시간을 가지고 자신을 점검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게 이번 제주도 여행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심지어 다른 사람의 의견은 틀리고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착각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생각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남들에게 강요한다. '대충보기'의 반대인 '한참보기'는 고독과 침묵을 오랫동안 훈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리더는 오해 받는 사람이 된다. 왜냐하면 그의 전략이 일부 이익집단을 위한 좋은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시적이나 당장이 아니라, 항구적이고 지속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리더들은 동시대인들에게 미움과 질시의 대상이 된다. 그래 리더는 외롭고 고통에 시달린다. 위대한 개인들은 오해의 대상들이었다.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예수, 루터,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그리고 뉴턴 등이 그랬다.

그러나 리더는 오해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리더는 스스로에게 감동적인 삶인 '탁월함'을 매일 수련하기 때문이다. 그 수련이 그에게 진실함과 선이라는 카리스마를 선물해 주기 때문이다. 리더는 남의 일에 참견하며 들이대지 않는다. 자신에게 온전하게 몰입되어 항상 침묵을 수련하고 누구의 칭찬이나 인정을 바라지 않는다.

리더는 선(善)하다. 선한 행동과 말은 선한 생각에서 나온다. 기원전 6세기에 등장했다고 추정되는 이란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란의 전통적인 사상을 집대성하야 마즈다이즘(mawdaism, 조로아스터교)이란 종교를 창시하였다. 이 마즈다이즘의 핵심교리가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이다. <보헤미언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의 아버지가 한 말이다.  선은 의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선은 그 사람이 오랫동안 자신의 생각, 말, 행동을 갈고 닦아 단순한 삶을 추구할 때, 그의 몸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향기이다. 그게 리더의 카리스마이다. 왜냐하면 리더는 자신이 선을 항상 추구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을 때면, 문정희 시인의 시를 만난다. "어디를 흔들어야 푸른 음악일까?" 자문한다. 내일 아침이면 그 답을 찾을 것이다.

어디를 흔들어야 푸른 음악일까/문정희

큰 것을 도둑맞은 것 같다
거친 숨 몰아쉬며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이 다녀간 것일까

아무것도 없다
공허뿐이라고
그냥 가 보는 거라고 말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구구구 모이 몇 알 주워 먹느라
할퀴며
깃털 뽑히며
두 날개 뭉개졌는데
벌써 떠나야 한다고 한다

어디를 흔들어야 푸른 음악일까
가랑잎도 아닌데
자꾸 떨어져 내리다가
내일은 어디일까
정말 어디를 흔들어야
다시 푸른 음악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스 윤리학>>에서 신체적인 건강이 정신적인 건강을 위한 필수라고 말했다. 우선 운동을 열심히 하자. 특히 많이 걷자. 그리고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유베날리스)도 "Mens sana in corpire sane"라는 유명한 라틴어를 남겼다. '건강한 신체는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다. 이들과는 달리, 마르쿠스 아우렐레우스는 <<명상록>>에서 정신력이 육체의 힘을 결정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리투스의 '습관이 운명입니다'라는 말처럼, 생각이 습관을 낳고, 습관이 반복되면 환경이 되고, 환경이 굳어지면 운명이 된다는 거다. 인간은 그 사람이 자주하는 그것이며, 자주하는 그것은 그 사람의 생각에서 출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현재의 우리는 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의 결과이다. 즉 탁월함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라고 말했다. 2022년에도 <인문 일기>를 쓰며 생각을 많이 할 테다.

자유는 스스로 말미암는 것이지만, 1차적으로는 신체적 억압이 제거된 상태일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이유(자유)가 되어 하는 언행은 거침이 없다. 자유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데서 출발한다. 삶에서의 많은 문제들은 자신의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데서 나온다. 자기 인식이 우선이다. 자기 인식은 자신을 알려는 마음가짐이고 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자신을 항상 응시하려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사제나 목사에게 달려가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다. 제주에서의 이틀 동안 뼈저리게 해야 할 질문이다.

우리는 실제 삶에서 쉽게 자유를 포기하고, 어떤 외부 권위에 의존하려 한다. 외부 권위는 명령하고 억압하고 부자연스럽고 억지일 때가 많다. 우리 사회는 우연히 부여잡은 권위를 가지고 휘두르며 다른 이에게 명령하며 복종하라고 윽박지른다. 그러나 세상의 변혁은 한 번도 이념, 정책, 교리, 리더의 카리스마를 통해 성취된 적은 없다.

자유를 위해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두어, 자신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에 대한 관찰을 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과 관계에서, 그들이 반응하는 자신을 응시하여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스스로 수정하려는 수고를 하는 일이다.

내가 살고 세상은 내가 스스로 변혁할 때, 비로소 변하기 시작한다고 믿는다. 세상의 변혁은 외부의 권위가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무식한 것이다. 자기 변혁은 자기가 누군인지 알려는 수고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올바른 말과 행동이 나올 수 없고, 자기 변혁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면밀한 관찰에서 시작한다. 나는 내가 오늘 마주치는 정보들과 사람들을, 내가 경험하여 획득한 나의 시선이라는 색안경으로 볼 수밖에 없지만, 편견을 가진 내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인식하는 것이 자유로운 인생의 시작이라고 나는 믿는다. 신념과 이념처럼,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는 것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자기 인식을 통해 얻은 자유는 나에게 자연을 편견 없이 탐색할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한다. 자유로워야 조급해 하지 않고, 초조해 하지 않고, 여유를 갖게 된다. '새로운'이 아니라, '새로워질' 새해인 2022년에는 조급증과 초조함을 버리고 더 여유롭고, 더 자유롭고 싶다. 자비, 안목 그리고 원칙 이야기는 내년에 다시 한번 기회를 잡아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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