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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바라보고, 나누고, 융합하라."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는 인공지능의 주인이 되는 능력, 즉 공감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주부터 나는 몇 일간에 걸쳐서 인공지능의 주인이 되는 나를 만드는 법을 이진성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8가지를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그 여섯 번째, "바라보고, 나누고, 융합하라"는 주장을 오늘 또 한다. 참고로 이진성 작가가 말하는 그 방법은 다음과 같이 8 가지이다.
1. 디지털을 차단하라
2. 나만의 '평생유치원'을 설립하라
3. 노잉(knowing)을 버려라. 비잉(being)하고 두잉(doing) 하라
4. 생각의 전환, '디자인 씽킹(designe thinking)' 하라.
5. 인간 고유의 능력을 일깨우는 무기, 철학 하라
6. 바라보고, 나누고, 융합하라
7. 문화인류학적 여행을 경험하라
8. '나'에서 '너'로, '우리'를 보라

7번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6번 "바라보고, 나누고, 융합하라"에서 융합 이야기를 세 번째로 더 하고 있다. 지난 글들은 12월 18일과 12월 23일자 아침 글쓰기이다. 오늘은 그 세번째로 좀 어렵지만, <정희진의 융합> 칼럼들을 읽어가며, 융합 이야기를 마칠 것이다.

우선 "융합은 차이를 재해석하고, 재배치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부터 한다. 우주는 차이들로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엄격히 말해 만물 중에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분명히 할 것은 우리가 말하는 차이는 사회가 선택한 차이일 뿐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차이는 모두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몇일 전부터 살펴보고 있는 <정희진의 융합>이라는 칼럼에서, 정 선생은 "차이는 분업이나 차별의 필요에 의해 발명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떤 차이는 다양성으로 인식되지만, 어떤 차이는 차별의 '이유'가 된다"고 말했다. 조심해야 한다. 차이가 차별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 인간이 만든 차이를 두고, '차이는 인정하지만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넌센스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은 사회적 구성물인 차이를 본질적인 속성으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차이는 해소, 인정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정희진 선생으로부터 배운 중요한 인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융합은 차이의 발생을 추적하고 분석하는 사유, 즉 차이를 재해석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연스러운 차이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이는 모든 사유의 키워드이자 융합의 핵심이다. 융합을 포함해, 모든 개념은 차이를 어떻게 배치하는가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융합은 생각하는 힘, 다른 방식으로 고민하는 태도이다. 융합이 서로 다른 것을 결합하는 것은 아니다. 융합은 협력이나 대화가 아니다. 충돌이다.

우리는  차이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처리해야 한다. 그렇다고 서로 다른 것을 융합이라는 이름으로 결합하는 것으로는 어렵다. 융합은 사회가 요구하는 크로싱, 앎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요한 태도는 아는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와 다른 입장에 대한 탐구 력이다. 그래서 융합 작업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갖가지 위계이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차이의 교차로에 놓여 있다. 그러니까 융합은 차이를 재배치하고,  그것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와는 다른 방식의 사유가 필요하다. 삶은 지속적인 '뉴-노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뉴-노멀'은 특정 시기에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갱신되어야 하는 생명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인생무상. 삶에는 정상, 노멀한 상태가 없는 법이다.  너무 어렵지만, 분명하게 하는 것이 인문 운동이다.

"차이와 차별은 다르다." "다름과 틀림은, 단지 차이일 뿐이다." "동의 하진 않지만, '다르다'는 건 인정한다."
나를 일상에서 감사와 행복으로 이끄는 세 개의 문장이다.

우리 사회는 너무 뺄셈이 이루어진다. 배제하고, 차별한다. 서로 존중하고,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았으면 한다. 한 기자는 일본인들이 이런 말을 한다고 전하고 있다.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자꾸만 분열했다. 이는 한국 정치의 특징이기도 하다. 상대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분파가 만들어지고 서로 치열하게 싸운다." 글을 잘 쓰다 가도 이런 식으로 빠지는 '기레기'들의 글이 문제이다. "한국의 가장 큰 적폐는 정치 보복의 악순환"이라는 말을 자기 말도 아니고, 그냥 일본의 지인이 말했다는 것이다. 그냥 사회통합하자고 한다. 이게 기득권 유지에만 급급해 하는 이들의 논지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적폐청산과 사회통합 중 무엇이 중요한가? 답은 간단하다. 오,폐수는 먼저 정화조나 하수처리장을 거친 뒤 에야 강물과 '통합'할 수 있다. 청산 없는 통합은 오염일 뿐이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는 '주절거림'이다. 그래 문자기호를 안 쓴다. 우리도 마침표를 안 찍고 머뭇거리다, 다른 문장을 말하곤 한다. 그래도 뉘앙스(Nuance, 미묘한 차이)를 알아보는 것이 인문정신이다. 예민함이 필요하다. 아침 사진은 어제 오후 동네 공원에 올라 녹지 않은 눈을 만난 것이다. 지는 해를 그림자가 차이를 보인다.

차이를 말하다/천양희

그날 당신은 다르다와 틀리다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지요 당신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다르다는 것은 인정한다고도 말했지요 그 말 듣는 날이 얼마였는데 어떤 일이든 절대적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다니요 정도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또 몇 번이나 자기를 낮추는 것과 낮게 사는 것은 다른 것이라 생각했을까요 고독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당신은 독락당(獨樂堂)에 우뚝 세워놓습니다 오늘은 독수정(獨守亭)이 고독을 지킵니다 처음으로 즐기는 것이 지키는 것과 정도 차이라고 당신은 말합니다 내 의견에 한 의견을 슬쩍 올려놓고 보아요 그래도 다른 것은 다른 것이고 내 생각 깊은 자리 한 생각 잠시 머뭇거려도 그 자리 다른 것은 다른 것이지요 저 자연스러움과 자유스러움의 차이 그 차이로 차별 없이 당신과 나는 당신과 나를 견뎠겠지요 다르다와 틀리다 사이에서 한나절을 또 견디겠지요.

이어지는 융합 이야기는 나의 블로그로 옮긴다.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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