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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습정양졸(習靜養拙): 고요함을 익히고 고졸함을 기른다.

2586.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월 2일)

올해도 다음의 5 가지 사자성어(四子成語)를 일상의 지표로 삼고 힘차게 출발하고 싶다. 오늘 아침은 "습정양졸" 정신에 대해 사유하고, 일상에서 실천할 다짐을 한다.
▪ 습정양졸(習靜養拙)
▪ 화이불창(和而不唱)
▪ 승물유심(乘物遊心)
▪ 외천활리(畏天活理)
▪ 명철보신(明哲保身)


'습정양졸(習靜養拙)'은 "고요함을 익히고 고졸함을 기른다"는 말이다. 여기서 '정(靜)'과 '졸(拙)'은 한 통속이다. 졸은 '고졸하다'라고 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멋이 있다"는 말이다. 도자기 가게에 가면, 기계에서 찍어 나온 듯 흠잡을 데가 없이 반듯반듯하고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구도를 가진 도자기는 상식적이라 눈길이 안 간다. 뭔가 균형도 잡히지 않은 것 같고, 어딘가 거칠고 투박한 것 같으면서도 구수하고 은근하고 정답고 살아 숨쉬는 듯한 것이 마음에 끌리고 편하게 느껴진다. 그게 내가 '키우고 싶은 '양졸(養拙)' 이다.

그리고 정(靜)을 위해, 경계해야 할 것은  '빈곤의 심리'이다. 이런 마음가짐은 '이 세상 좋은 것은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남이 가져가면 그만큼 내 몫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심리'이다. 그 반대가 '풍요의 심리'이다. '세상에 좋은 것은 많고, 풍요로워서 남이 성공하고 인정받아도 내 몫은 남아 있다'고 보는 심리이다. 이런 '빈곤의 심리'는 배타주의를 낳고, '풍요의 심리'는 포용을 할 줄 알게 된다. 신학자 하비 콕스는 "현대인의 우상은 출세"라 했다. 출세는 돈과 명예와 권력으로 치환됨을 알기에 사람들은 출세에 집착한다. 출세를 위해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보니 고요함을 잃게 된다. 고요함을 습관들이고, 고졸함을 기른다는 '습정양졸'의 정신이 필요하다.

'습정양졸'은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이승훈(李承薰·1756~1801)에게 보낸 답장에 나오는 말이다. “요즘 고요함을 익히고 졸렬함을 기르니(習靜養拙), 세간의 천만 가지 즐겁고 득의한 일이 모두 내 몸에 ‘안심하기(安心下氣)’ 네 글자가 있는 것만 못한 줄을 알겠습니다. 마음이 진실로 편안하고, 기운이 차분히 내려가자, 눈앞에 부딪히는 일들이 내 분수에 속한 일이 아님이 없더군요. 분하고 시기하며 강퍅하고 흉포하던 감정도 점점 사그라듭니다. 눈은 이 때문에 밝아지고, 눈썹이 펴지며, 입술에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피가 잘 돌고 사지도 편안하지요. 이른바 여의치 않은 일이 있더라도 모두 기뻐서 즐거워할 만합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신과 세계관이 다른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들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더 훌륭하게 실천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리라고 충고한다.  자신과 가치관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말라는 같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 나의 평정심이 무너지고 가치관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네카도, <평정심에 관하여> 재7단락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엇보다도, 당신은 사람을 선택하는데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이 당신의 소중한 사람을 부여할 만큼 가치가 있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것입니다." 사람 만나기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나의 부동심(不動心), 즉 정신의 평정(平靜, 아타락시아) 때문이다. 그래 나는 '습정양졸(習靜養拙"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고 실천하려 한다.

좀 구체적인 일상의 올해 목표는, '입으로는 말을 줄이고, 위장에는 밥을 줄이고, 마음에는 욕심을 줄이는 것'이다. 욕심이란 성취하면 할수록 더 큰 욕심으로 확장되기 마련이다. 본래 욕심이란 놈은 만족이 없기 때문에 욕심이란 단어로 굳어진 것이다. 작은 것에도 만족할 아는 소욕지족(所欲知足)의 지혜가 행복의 기술이다. 더 바랄 것 없다는 천상 세계인 도솔 지족천은 무엇이건 바라는 것을 다 갖춘 곳이 아니라, 반대로 모든 욕심을 비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런 가운데, 다음의 다섯 가지를 일상에 실천할 생각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데살로니가 전서 5장)"

여기에 두 개를 더 보태 5 가지를 매일 실천하는 삶을 살겠다. "웃음-기도-감사-다정-깨어 있음"이다. 

모두를 사랑하라, 즉 늘 따뜻한 가슴, 따뜻한 에너지를 키운다. 만나는 사람에게 가급적 늘 다정할 생각이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만나지 않을 생각이다. 다정함이란 마음을 주는 거다. 다시 말하면, 마음 써 주는 거다. 내가 불편할지라도. "다정함은 우리를 서로 연결해 주는 유대의 끈을 인식하고, 상대와의 유사성 및 동일성을 깨닫게 해준다. 이 세상이 살아 움지이고 있고, 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더불어 협력하고, 상호 의존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 (올가 로카르추크) 다정함의 재발견이다. 

늘 깨어 있으라, 즉 늘 공부하자는 거다. 올해도 다음 사자성어로 영혼을 살찌울 생각이다. 첫 째는 "수도선부(水到船浮)"이다.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뜬다'는 말로, '위기가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내실을 닦으며 기회를 기다리겠다'는 뜻이다. 인문 운동가는 자신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자신이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위한 배경이자 과정일 뿐이다. 강물이 바다를 향해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처럼, 그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기 때문이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두 번째는 "마부정제(馬不停蹄)"이다. '달리는 말은 말굽을 멈추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 나는 내년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배우는 사람은 '사고의 굽'이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자주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잘 모른다. 그래 임무를 깨워줄 학교를 만드는 거다. 내 아침 글쓰기도 일종의 학교이다. 인생이란 학교의 특징은 '무작위(無作爲)'이다. 내가 예상한대로, 일이 풀리지 않곤 한다. 그렇다고 내 마음까지 무작위일 필요는 없다. 자신이 정한 ‘더 나은 자신’을 위한 목표를 위해 매일 훈련하며 정진하는 사람에게, 일상의 난제들은 오히려 그들을 더 고결하고 숭고하게 만드는 스승들이 된다. “누가 지혜로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일상의 난제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배울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무료로 가르쳐 준다. 그들의 가르침은, 나의 생각을 넓혀주고 부드럽게 만든다. 나의 말과 행동을 정교하게 다듬어 사람과 사물에 친절하게 응대하게 유도한다. 인생이란 학교(學校)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조금씩 더 이해하게 만들어준다. 이해(理解)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시선, 심지어 원수의 시선으로 그 난제에 대한 나의 반응을 관찰하는 냉정(冷靜)이다. 나는 난제들을 해결(解決)할 수 없지만 해소(解消)할 수 있다.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웃으며 즐겁게 살자는 거다. 긍정적으로 마음을 챙기자는 거다. '바라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 라야 흡족해 하는 것이 만족이라면, 자족은 어떠한 형편이든지 긍정하는 삶의 태도이다.' 내가 늘 외우는 문장이다. 그러니까 행복의 비결은 자족(自足)이다. 요즈음 우리 대부분이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은 끼니를 걱정하는 절대 가난 때문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으로 무엇이나 남처럼 가지려 하는 마음 때문에 생겨난다. 흔히 말하듯 '필요'보다 '욕심'에서 생기는 가난이다. 이럴 때 분수를 알고 자족할 줄 알면 빈곤감이 없어지고 자기에게 있는 것만으로도 부자처럼 느끼며 살 수 있다. 


우리들의 감정 중에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 '기쁨'이다. 기쁨과 즐거움이 차이가 있는가? 사전을 찾아 본다. 기쁨은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즐거운 마음이나 느낌'이라면, 즐거움은 '마음에 거슬림이 없이 흐뭇하고 기쁜 느낌이나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비슷한 것 같은데, 즐거움은 '어떤 상태'라면, 기쁨은 '어떤 행위의 결과'인 것 같다. 그러니까 없다가 얻게 되었을 때 오는 것은 기쁨이고, 늘 있는 것은 즐거움인 것 같다. 그러니까 기쁨이 즐거움보다 더 강한 감정인 것 같다. 늘 있는 사람은, 없다가 그것을 얻게 되었 때 느끼는 감정을 모를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40대는 외모의 평준화가, 50대는 지식의 평준화가, 60대는 재산의 평준화가, 70대는 영성, 정신 세계의 평준화가, 80대는 건강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정말일까? 정말이라면, 왜 그럴까? 많이 가진 자의 즐거움이 적게 가진 자의 기쁨에 못 미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많이 아는 자의 만족이, 못 배운 사람의 감사에 못 미친다. 만족은 '물의 고임'이라면, 감사는 '물의 흐름'일 것이다. 이렇게 '+'와 '-'하면, 마지막 계산은 비슷하고, 모두 닮아 가기 때문 같다. 그러니 살다 보면 별 인생 없다. 현재를 즐기는 것이 남을 뿐이다.

그리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 즉 영적 성숙, 영혼을 살찌우자는 거다. 그 살찌움으로 '허심'의 세계를 구축하는 거다.  지식은 계속 기술을 확대해서 인간 마음에 소유에 대한 증폭, 곧 욕망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많을 것을 갖고 싶고 누리고 싶어 지는 거다. 이 마음을 해체하는 게 지혜인데, 이 지혜가 개입하지 않으면 무조건 욕망을 향해 나아간다. 그래서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가 더 자유로워질 수 없는 거다. 한편 지성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많은 시행착오와  토론, 논쟁, 교육 등을 주도하는데, 이 지성이 지혜와 연결되지 않을 때, 그것은 엘리트와 대중의 차이가 강화되는 쪽으로, 그래서 엘리트가 대중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식으로 나가게 된다.

여기서 기도(祈禱)는 나 자신을 위한 최선을 찾는 행위이고, 습관적으로 해오던 생각과 말,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말하는 기도는 흔히 절대자인 신에게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요구하는 행위로 알려져 있다. 기도를 기복(祈福)으로 생각한다. 그런 의미의 기도는 자신의 욕망을 강화하기 위해 신의 이름을 이용하는 자기만족일 뿐이다. 기도의 '기(祈)'자를 풀이하면, '빌 기'자이지만, 날카로운 도끼(斤)를 자기 앞에 겨누는(示) 수련을 뜻한다. 도(禱)는 목숨(壽)을 자기 앞에 내놓고 구(求)하는 행위이다. 기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굳은 결심이다. 기도는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려내는 결단의 순간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즉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감사는 희노애락애오욕(七情)과 차원이 다른 윤리적 정서이다. 희노애락애오욕이 원석이나 원유라면 윤리적 감정은 원석이 가공된 다이아몬드이거나 휘발유이다. 감사를 생성시키는 원인은 우리 모두는 빚진  자라는 각성이다. 우리는 잘 보면 모두가 빚진 자이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몸을 빌려 태어났고,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헌신에 빚을 졌다. 그런데 대부분은 자신이 스스로 잘난 사람이기 때문에 빚이 없는 듯이 행세한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자연에게도 큰 빚을 지고 산다. 지금까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산소와 공기와 물도 대부분 공짜로 써왔고 아름다운 경치를 통해 상한 마음을 힐링한 것도 자연에 대한 빚이다. 그리고 이웃과 친구들에게도 진 빚이 크다. 지금 이만큼의 성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동료나 선배들이 음양으로 도와주고 응원해준 덕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잘 나가고 세상을 호령하며 사는 사람은 누구보다 더 큰 빚을 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오히려 세상이 모두 자신 덕택에 사는 것처럼 생각하며 감사할 줄 모른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빚진 자라는 사실을 각성하는 일이다. 이 사실을 인지하면 세상은 감사의 세상으로 바뀐다.

올해도 나는 새롭게 주어진 365개의 하얀 도화지에 부지런히 점을 찍으며 어떤 상황에 서든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러면서, 나는 또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존재적 경험과 배움의 기회를 갖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잊고, 다시 말하면 노골적으로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일상을 지배하면서 장기적으로 '좋은 삶'을 살아가면 된다.  오늘 아침 시처럼 말이다. 아침 사진은 어제 새로워진 해를 금병산 노루봉에서 만난 거다.


1월/오세영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 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神)의 캔버스,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 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 게다.
아직 트이지 않은
신(神)의 발성법(發聲法).
가지 끝에서 풀잎 끝에서
내 영혼의 현(絃) 끝에서
바람은 설레고,

1월이 말씀이라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육성일 게다.
유년의 꿈길에서
문득 들려오는 그녀의 질책,

아가, 일어나거라,
벌써 해가 떴단다.
아, 1월은
침묵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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