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8월 30일)
어제에 이어, 장자가 말하는 인간의 참 모습, 진인(眞人) 이야기를 계속한다. 진인의 경지는 우리 인간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이 목표이다. 장자에 따르면, 진인은 자연의 덕과 합치된 지혜로운 사람으로 그 무엇에도 제약 받지 않고 만물과 하나 되어 자유로운 삶을 사는 존재로 영적인 인간이다. 다시 말하면, 무위(무위)를 실천함으로써 세속적 굴레를 벗어버린 인간이다. 어제 그러한 진인의 모습을 다 보지 못했다. 오늘 더 이어간다.
그전에 어제 이야기를 요약하여 본다. 진인은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지 않아서 사소한 것을 대하더라도 거절하지 않고, 공적을 쌓아도 자랑하지 않으며,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은 꾸미지 않는다. 이것은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진인의 삶이다. 보통 사람은 현실 세계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외물(外物)에 집착하고 구애 받는다. 이에 반해 진인은 모든 분별을 벗어났기에 어떠한 얽매임도 없이 정신적인 자유를 누린다. 예를 들어, 진인이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 것은 그가 실제로 초인적인 능력이 있어서 가 아니다. 진인의 정신이 외물에 얽매이지 않아 걸림이 없는 경지에 있음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렇듯 진인은 외물의 구애됨에 벗어나 정신적 행복을 누리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게 되는 이상적 존재이다. 곡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격이 최상의 경지에 이른 존재인 것이다. 그런 사람은 다음과 같다. 사물에 지배당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산다.
(1) 부지열생, 부지오사(不知說(悅)生, 不知惡死): 생을 기뻐할 줄도 모르고, 죽음을 싫어할 줄도 모른다. 상식 세계의 속인들이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을 비판한다.
(2) 기출불흔, 기입불거(其出不訢, 其入不距): 태어남을 기뻐하지 아니하며, 죽음을 거부하지 아니한다. 여기서 '흔'은 '기쁘다;로 읽고, '거'는 '거역하다'는 뜻으로 읽는다.
(3) 소연이왕, 소연이래이이의(翛然而往, 翛然而來已矣): 홀가분하게 [세상을] 떠나며, 홀가분하게 [세상에] 태어날 따름이다. 삶과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여기서 '소연'은 홀가분한 모습이다.
(4) 불망기소시, 불구기소종(不忘其所始, 不求其所終): 자신의 생이 시작된 곳을 잊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끝나는 곳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생명의 근원, 곧 도를 삼가 지키고, 죽을 때를 미리 알려고 억지로 추구하지 않는다.
(5) 수이희지. 망이복지(受而喜之, 忘而復之): 생명을 받아서는 그대로 기뻐하고, 생명을 잃게 되어서는 대자연으로 돌 아간다. 생명을 받으면 기뻐하고, 생명을 잃게 되면 대자연으로 돌아간다.
(6) 시지위불이심연도, 불이인조천(是之謂不以心捐道, 不以人助天): 이것을 일컬어 심지(心知)로 도(道)를 손상시키지 않고, 인위적 행위로 무리하게 자연의 운행을 조장(助長)하지도 않는다.
잠시 위의 문장들 중에서 '소연'이라는 말에 잠시 멈추어 본다. '소연'을 나는 '홀가분하게'로 풀이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홀연히' 또는 "의연하게'로 말하기도 한다. '홀연(忽然)'은 '뜻하지 아니하게 갑자기'로, '의연(毅然)'은 '의지가 굳세어서 끄덕 없이"로 풀이된다. '홀가분하게'은 거추장스럽지 아니하고 가볍고 편안하게'로 정의된다. 다 비슷하지만 약간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
나는 지난 주말에 아주 두꺼운 책 두 권을 샀다. 도올 김용옥이 지은 <<동경대전>> 1과 2(통나무)를 읽기 시작했다. <<동경대전>>은 수운 최제우가 한문으로 쓴 동학의 경전이다. 그 책을 도올 김용옥이 역주한 거다. 도올이 생각하는 동학은 흔히 초기 천주교로 일컬어지는 서학의 대립 개념이 아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을 '해동'으로 불렀듯이 그가 생각하는 동학의 동(동)은 태초부터 우리 민족사를 관통하는 한민족의 정체성으로, 이를 바탕으로 둔 학문이 동학이란 말이다. 그 두 권의 무거운 책을 사가지고 오면서, "책이 무거운 이유"를 알았다.
책이 무거운 이유/맹문재
어느 시인은 책이 무거운 이유가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책이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시험을 위해 알았을 뿐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에 밑줄을 그었다
나는 그 뒤 책을 읽을 때마다
나무를 떠올리는 버릇이 생겼다
나무만을 너무 생각하느라
자살한 노동자의 유서에 스며 있는 슬픔이나
비전향자의 편지에 쌓인 세월을 잊을지 모른다고
때로는 겁났지만
나무를 뽑아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한그루의 나무를 기준으로 삼아
몸무게를 달고
생활계획표를 짜고
유망 직종을 찾아보았다
그럴수록 나무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채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었다
내게 지금 책이 무거운 이유는
눈물조차 보이지 않고 묵묵히 뿌리 박고 서 있는
그 나무 때문이다
도올은 "서구가 추구해온 근대라는 이념을 추종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의 주장에 눈이 크게 떠졌다. 그가 나열한 서구의 근대가 낳은 것들을 살펴본다.
- 터무니 없는 진보의 신념
- 인간의 교만
- 서양의 우월성
- 환경의 파괴
- 불평등의 구조적 확대
- 자유의 방종
- 과학의 자본주의에로의 예속
- 체계(system)의 인간세 지배
- 민주의 허상
이런 서구적 패턴을 우리가 반복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참다운 평등과 조화는 오로지 황제적인 신이 사라지고, 모든 인간이 하느님이 될 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하느님이다(인내천, 人乃天), '사람을 하느님으로 공경하라(사인여천, 事人如天)이 동학의 기본이다.
한동안 수운 최제우를 공부할 생각이다. 이는 운명이다. 왜냐하면,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수운교"가 잘 버티고 있다. 힘들 때, 나는 거길 간다. 아마도 대전에서 가장 기운이 좋은 곳 같다. 거기만 다녀오면 머리가 맑다. 안타까운 것은 군부대가 그 앞 길을 차지하고 있다.
갑자기 장자를 이야기 하다가 샛길로 빠진 것은 '소연'이라는 말 때문이다. 그 말의 뜻을 찾다가 만난 것이 "불연기연(不然其然)"이라는 말이다. "동학의 하느님 속에서는 초월과 내재, 유일신과 범신, 인격과 비인격, 존재와 생성, 우연과 필연, 불연(不然)과 기연(其緣)의 모든 언어적 간극이 다 해소되어 버린다."(도옥 김용옥)
동학의 기본원리가 '불연기연(不然其然)'이다. '그렇지 않기도 하고, 그렇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러하지 아니하다'로 해석된다. 이는 생명의 무궁한 변화와 진화를 파악하는 생명의 논리이다. 저 너머에 신이 있는 게 아니, 이 현실 속에서 모든 게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는 동양 최초의 진화사상이다. 세상에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관심 있는 것과 관심 없는 것 등이 있는데, 우리들은 아는 것과 관심 있는 데만 열중하고 말을 한다. 세상 만물의 이치를 깨달으려면 단순히 믿음만으로만 하면 인 되고 천지의 도를 이해하고 깨달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운 최제우의 철학을 "연 철학(然哲學)"이라 한다. '연'은 '그렇다'는 긍정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니까 '불연기연'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의 뜻이 된다. 이는 부정을 통한 대 긍정의 의미로 해석된다. 세상사가 처음에는 전부 부정적으로 보였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생각해 보니까 이해 못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대 긍정을 이야기할 것으로 풀어 수 있다. 이게 '연 철학'이다.
이 연철학과 연결되는 것이 경주 최 부잣집 가훈과 연결된다. 최 부잣집은 자식들에게 교육 시킬 때 '육연(六然)"을 강조했다 한다. 이 '6연'이란 '6가지를 그래야 한다'는 가훈이다. "조용헌 살롱"에서 얻은 생각이다.
(1) 자처초연(自處超然): 혼자 있을 때는 초연하라.
(2) 대인애연(對人靄然): 사람을 대할 때는 평화로운 마음으로 만나라.
(3) 무사징연(無事澄然): 일이 없을 때는 맑고 고요 하라.
(4) 유사감연(有事敢然): 일이 있을 때는 과감 하라
(5) 득의담연(得意淡然): 뜻을 얻었을 때에도 담담 하라.
(6) 실의태연(失意泰然): 실패했을 때에도 태연 하라.
이를 보면, 만석꾼, 오늘날 부자를 유지한다는 것은 재테크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인격적인 수양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장자>>가 말하는 참된 인간의 모습, 즉 진인 이야기를 하다가 샛길로 나왔다. 이어지는 진인 이야기는 내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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