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도 나희덕 시인의 시를 읽는다. 시인은 속리산에 오르면서 한 깨달음을 한다. "속리산은 순하디 순한 길"을 열어 보이며, "산다는 일은/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화자에게 준다.
나는 어제 밤에, "속리산" 같은 와인들을 마셨다. 나랑 오랫동안 와인 공부를 해 오던 모임에서 여름을 끝내고 가을을 맞이하는 특별 "61 번개 모임"이었다. 나의 와인 30년 역사 중에 가장 총액이 비싼 '와인 마시기'였다. 마신 순서대로 말하면, 먼저 뽈 로저 샴페인, 샤또 오-브리옹, 샤또 꼬스 라보리, 샤또 로잔 가시 그리고 부르고뉴 지역 와인 주브레이 샹베르땡 그리고 마지막으로 샤또 린치 -무싸스 6병을 마셨다. 우리 뱅샾에서 정상적으로 값을 내려면, 적어도 250만원을 내야 한다. 값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와인을 통해, 자기 색깔을 내며, 내 삶에서 내가 주인공으로 사는 일을 깨달은 저녁이었다.
어제 마신 와인 하나하나에 대해 스토리텔링을 해보겠다.
- 뽈 로저 샹빠뉴 레제르브 브뤼트 NV : 우리는 흔히 이 와인을 '처칠 와인'이라 한다. 그가 즐겨 마셨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폴 로저'라 하는데, 프랑스어의 'P'는 'ㅃ' 소리를 내야 한다. 사람들은 샹빠뉴(Champagne)라 쓰고 '샴페인'이라고 읽는다. 어제 마신 샴페인은 2011년 영국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웨딩 샴페인이었다.
- 샤또 오-브리옹 2011: 1855년 파리 엑스포에 소개된 61개의 보르도 와인(매독 지방 60, 뻬삭-레오냥 지역1개)을 우리는 '그랑 크뤼(Grand Cru)'라 부른다. 이 61개를 다시 자체적으로 5개 등급으로 나뉜다. 그 중 1등급 와인이 5개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독수리 오 형제'라 한다. 이 샤또 오-브리옹이 1등급이고, 매독 지방이 아닌 곳에서 나온 유일한 와인이다. 이 와인에 얽힌 에피소드를 한 가지 소개한다. 나폴레옹이 전쟁에 패한 후, 오스트리아 빈에서 프랑스의 배상 문제에 관한 회의가 1주일간 진행했다. 이때 각국 외교관의 식탁에는 이 와인 제공됐다. 이 와인 맛에 반한 외교관들은 프랑스에 대해 너그러워졌고, 결국 "샤또 오 브리옹이 프랑스를 구했다"는 애기가 전해진다. 국내에서는 2000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선물로 가져오면서 '평화를 기원하는 와인'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이 와인을 마신 후, 다소 실망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이다. 그래 와인을 남겨놓고, 다른 잔으로 프랑스 보르도 매독 지방의 쎙 떼스테프 와인 샤또 꼬스 라보리를 열었다. 그렇게 비교 시음을 했더니, 샤또 오 브리옹의 진가가 드러났다. 완벽한 밸런스, 절제된 바디 등 달리 1등급이 아니었던 것이 아니었다.
- 샤또 꼬스 라보리 2014: 프랑스 보르도 메독 지방은 다시 6개의 AOC 와인이 있다. 그 중 이 와인은 바다와 가장 가까운 동네인 쎙떼스테프 와인이다. 그래 좀 촌스럽고, 거칠다. 물론 매독 다른 지역에 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 샤또 로잔-가씨 2016: 이 와인은 매독 지역의 마고 와인이다. 내가 좋아하는 샤또 이름이고, 라벨이 예쁘다. 와인 여왕 마고가 연상되듯이 우아하고 화려하다.
- 주브레이 샹베르땡: 예정에 없던 와인인데, 흥이 나, 내가 내놓았다. 물론 모임 총무가 지난 대전국제와인 페스티벌에서 선물한 것이다. 좋은 와인은 혼자 마시기 보다 함께 마실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마침 이번 기회에 보르도 와인과 부르고뉴 와인을 비교 시음할 수 있는 최고 기회였기 때문에, 나로서는 더 기뻤다. 이 와인은 삐노 누아르라는 포도품종 하나로 만드는 것이고, '샹송'이라는 양조장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 지역 와인을 '버건디 와인'이라 한다. 그래 이 와인 색을 우리는 '버건디 칼러'라 한다. 와인 색은 연해도, 바디는 풀-바디이다.
- 샤또 린치-무싸스 2103: 이 와인은 매독 지방에서 가장 좋다고 하는 뽀이약 와인이다. 매독 지방의 와인 중에 가장 힘이 센 와인이다.
벌써 10시가 되어, 우린 마무리 하고, 오랫동안 기억될 저녁이라 마음에 품고 헤어졌다. 살면서, 많은 추억거리를 만들어 놓아야 노년이 행복하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감각의 지평이 줄어든다. 그러니 늙을수록 인공적으로 조미료를 많아 넣은 음식과 음료보다, 자연에 가까운 것들을 먹고 마시며 감각의 지평을 확장 시켜야 한다. 어제 마신 와인들은 속리산처럼,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속리산에서/나희덕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 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 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 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 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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