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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는 믿는 대로 살게 된다.

2399.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6월 28일)
어제에 이어, 오늘은 "우리는 믿는 대로 살게 된다. 세상에 대한 뿌리 깊은 믿음을 바꾸면 삶도 따라서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내가 나라고 믿는 사람'이다. 물고기를 관찰해 보면, 우리의 믿음을 알게 된다. 수조를 하나 구해 투명한 유리를 수조 중간에 넣어 두 개의 수족관을 만든다. 이제 바라쿠다 한 마리와 숭어 한 마리를 구해 양쪽에 한 마리 씩 넣는다. 바라쿠다는 숭어를 먹는다. 그러자 바라쿠다가 쏜살같이 숭어를 향해 튀어 나가다가 '쾅'하고 전속력으로 유리 벽을 박는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서 또 한 번 '쾅'하고 부딪친다. 몇 일이 지나자, 바라쿠라는 코가 매우 시큰거린다. 드디어 바라쿠다는 숭어를 쫓는 일이 고통이라는 걸 깨닫고 숭어 사냥을 멈춘다. 이제 유리를 치웠는데도, 바라쿠다는 숭어가 바로 제 눈 앞에서 헤엄치고 있는데도 기꺼이 굶어 죽는다. 한계를 깨달은 바라쿠다는 거기서 헤어 나오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우리는 투명 유리에 달려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맞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 줄 선생님, 부모님, 친구들에게 달려간다. 가장 최악은 우리가 자신의 믿음 속에 빠질 때이다. 믿음에 근거하여 경계선을 긋고, 그걸 지키겠다며 자신의 영역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도 스스로 유리 새장을 만들고 그걸 현실이라고 인정해 버린다는 거다. 하지만 그건 단지 믿음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세상을 각자 조금씩 다르게 믿으면서 모두 자신이 믿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행복보다는 자신의 믿음을 택한다. 우리에겐 저마다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다. 그 스토리를 가지고 우리는 스스로를 규정짓고, 스토리에 맞는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스토리에 맞추어 옷과 자동차를 사고, 친구들을 선택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스토리'에 맞춰 살다 가는 처량해질 수 있다는 거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스토리'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아무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자나 틀에 박힌 존재가 아니다. 일련의 경험을 연속해서 해 나가는 인간이다. 스토리에 질질 끌려 다니는 걸 멈추고 나면, 더 이상 정해진 역할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된다.
 
"나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니까 사람들은 날 그만큼 대접해줘야 해"라며, 자신이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중요하게 보이기를 바라다 보니 괴로워진다. 자신의 행복이 다른 이의 손에 달려 있게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인물'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면, 우리는 더 편해질 수 있다. 우리는 말할 때, '나는 절대'나 '나는 언제나'를 붙여 스스로를 상자 속에 가두어 놓지만, 이 또한 결국 우리가 말하는 스토리에 불과하다. 어떤 믿음은 버려야 한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지워 버리는 거다. 믿음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고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해야 한다' 단어가 들어간 믿음들을 경계해야 한다. "해야 한다'는 말의 목록은 합리적인 기대의 집합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해야 한다'와 관계 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믿음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실은 그런 믿음과 상관 없이 흘러간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해도, 우리들의 삶이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즐거울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기대하지 않는 거다. 그리하여 마음이 더 평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일을 다르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단지 용기를 가지고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생각해 보면 된다.
 
다음과 같이 하자는 거다. 화나는 일이 생긴다면, 우리가 화가 나는 건 우리 믿음 때문이다. 어떤 생각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지라도 그건 생각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생각을 바꾸는 거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직업을 탓할 때, 대개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 '일은 지루하다' 또는 일은 재밌다'고 믿는다면, 상황이 다르게 전개된다.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믿음이다.
 
이웃이나 신문이 무슨 소리를 하건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따르다 보면 성공할 수 있다. 같은 회사에 다니고 같은 월급을 받는 8명의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는 자산을 만들고 잘 사는 반면, 다른 가람들은 고작 샌드위치를 사 먹을 때도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한다. 차이점은 그들이 바는 돈이 아니라 돈에 관한 믿음에 있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다. 인생에서 뭔가를 쟁취하고 지켜 내려면 그게 편안하게 느껴져야 한다. 예를 들어 돈을 벌고 지키기 위해서는 돈과 친해져야 한다. 내가 많이 가지면 다른 사람들이 가질 게 없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거다. 부자가 되면 다른 사람들을 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도와줄 수 있다.
 
"삶은 웃긴 녀석이다. 최고를 고집하면 최고를 갖게 된다." 서머싯 몸이 한 말이다. 세상이 날 대접하길 바란다면 스스로를 잘 대접하는 거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다. 조금 호사를 누려도 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잘 지내는 일이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는 일과 무슨 상관이 있죠?' 모든 일에 상관이 있다. 풍족은 풍족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풍족함은 반드시 돈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생활 방식의 문제이다.
 
우리가 보는 방식이 문제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불행 보이는 사건들을 행운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말하는 거다.
  • 삶이 주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 더 평온 해진다.
  • 인생이란 버스에 탔으니 밀고 가지 않아도 된다.
 
반대로 삶을 재난이라고 믿는 한 계속해서 재난이 펼쳐진다. 세상 일은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전개된다. 상황에 대한 믿음을 바꾸는 순간 달라진 생각이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기회를 불러올 것이다. 우리들의 삶에 등장하는 모든 '시련'은 시련 이라기보다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바꾸도록 만들어진 상황이다.
 
삶은 즐거워야 마땅하다. 새들은 매일 아침 노래하며 깨어난다. 아기들은 아무 이유 없이 깔깔댄다. 우리가 사는 이 우주는 재미난 곳이다. 만일 인생이 즐겁지 않다는 생각을 물려받았다면 그건 버려도 되는 믿음에 불과하다. 오직 재미를 위해 시간 내어 무언가를 해 보는 거다. 인생을 즐기는 일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물고기에게 배우"는 거다.
 
 
물고기에게 배우다/맹문재
 
개울가에서 아픈 몸 데리고 있다가
무심히 보는 물속
살아온 울타리에 익숙한지
물고기들은 돌덩이에 부딪히는 불상사 한번 없이
제 길을 간다
멈춰 서서 구경도 하고
눈치 보지 않고 입 벌려 배를 채우기도 하고
유유히 간다
길은 어디에도 없는데
쉬지 않고 길을 내고
낸 길은 또 미련을 두지 않고 지운다
즐기면서 길을 내고 낸 길을 버리는 물고기들에게
나는 배운다
약한 자의 발자국을 믿는다면서
슬픈 그림자를 자꾸 눕히지 않는가
물고기들이 무수히 지나갔지만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저 무한한 광장에
나는 들어선다
 
 
"길은 어디에도 없는데/쉬지 않고 길을 내고/낸 길은 또 미련을 두지 않고 지운다." 물고기들은 스스로를 뽐내지 않고, 남의 길을 가로막지 않는다. 즐기면서 길을 만들고 지나온 흔적을 유유히 지우는 겸손의 미덕을 보여준다. 자신만 옳다고 우기고, 말로는 약한 자의 편에 서겠다고 외치면서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이들의 독선과 오만을 돌아보게 하는 가르침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