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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6월에 쓰는 편지/허후남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 오후부터 새벽까지 줄기차게 비가 내린다. 이 비로 코로나-19도 다 쓸려갔으면 좋겠다. 이번 주까지 강도 높은 생활 속 거리두기를 하자고 아침 마다 문자가 온다. 비까지 내리니 세상이 한산하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코로나-19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일상을 지내고 있다. 이태원 클럽발 확산이 물류센터에서 다시 방문판매로 이어지는 등 코로나19가 수도권에서 산발적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지방으로도 확산되는 양상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막고 대처해야 한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했기에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확진자가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어쩌면 생각하지도 못한 게 아니라 생각 자체를 안하고 먼저 나서 예방하겠다는 의지조차 없었던 탓일지 모른다.

오늘 아침은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Factfulness』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마침 지난 주 소설가 백영옥도 자신의 칼럼에서 이 책 이야기를 했다. 저자가 말한 '팩트풀니스'란 '사실 충실성'을 뜻한다. 팩트(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습관을 의미한다. 저자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이 아닌 '느낌'을 말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종종 자신의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는 실수를 범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긍정적인 신호보다 부정적인 뉴스에 더 예민하게 진화해왔다. 유명인의 결혼보다 이혼, 주가 상승보다 폭락 같은 뉴스에 더 눈길이 가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러나 이 책은, 예상과 달리, 양극화, 인종 갈등, 지구 환경오염 등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고 생각한 세상이 사실은 좋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우리는 데이터를 읽는 리터러시가 부족하다. 그래 통계를 잘 읽지 못한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장기적으로는 개선되고 있지만, 일시적으로 후퇴하는 상황을 골라 위기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건 매우 쉽다. 그러나 너무 위험하다. 그러니까 공정한 판단을 하려면, 우리는 특정 정보 '하나만' 가지고 따지지 말아야 한다. 거대한 숫자로 된 통계는 더 그렇다. 특히 요즘은 SNS에서 정보를 얻는 일이 많아지면서 왜곡된 시각과 버블이 끼기 쉽다. 필터 버블은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정보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정보 편식으로 인한 확증 편향을 갖게 한다. 소설가 백영옥의 말이다.

지금처럼 많은 것이 두렵고 혼란스러울 때는 더욱더 본능이나 느낌이 아닌 데이터를 확인해야 한다. 공포와 위험은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느낌을 팩트인 것처럼 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오늘이 6월의 마지막 날이다. 그래 오늘 아침은 허후남 시인의 <6월에 쓰는 편지>를 공유한다.

6월에 쓰는 편지/허후남

내 아이의 손바닥만큼 자란
6월의 진초록 감나무 잎사귀에
잎맥처럼 세세한 사연들 낱낱이 적어
그대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도무지 근원을 알 수 없는
지독하고도 쓸쓸한 이 그리움은
일찍이
저녁 무렵이면
어김없이 잘도 피어나던 분꽃
그 까만 씨앗처럼 박힌
그대의 주소 때문입니다

짧은 여름 밤
서둘러 돌아가야 하는 초저녁별의
이야기와
갈참나무 숲에서 떠도는 바람의 잔기침과
지루한 한낮의 들꽃 이야기들 일랑
부디 새벽의 이슬처럼 읽어 주십시오

절반의 계절을 담아
밑도 끝도 없는 사연 보내느니
아직도 그대
변함없이 그곳에 계시는지요

어제 약속했던 것처럼, 오늘 아침도 옥수수와 얽힌 사유를 공유한다. 나는 여름철마다 옥수수를 잘 먹지만,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몰랐다. 관찰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배철현 선생의 <묵상>을 읽고 알았다. 좀 더 정보를 알고 싶어서, 네이버를 켰더니 이미 만들어진 옥수수 열매만 이미지로 많이 보여준다.

옥수수는 암술과 수술이 서로 다른 꽃 봉오리에 있어, 우리는 옥수수의 암꽃과 수꽃을 잘 구별할 수 있다. 옥수수는 소위 '자웅이가(雌雄異家)'이다. 한 나무에서 두 개의 집안이 '딴 집' 살림을 한다. 수 이삭은 줄기의 끝에 달려 있다. 우리가 여름철에 삶아 먹는 암 이삭은 줄기의 중간 마디에 껍질에 쌓여 두세개가 달려 있다. 암술대의 수염은 껍질 밖으로 나가 꽃가루를 받는다. 우리는 그걸 옥수수 수염이라고 해서 따로 말려 옥수수 수염차를 만들어 마신다.

옥수수는 봄에 옥수수 씨앗을 심거나 모종을 사다 심는다. 여름철이 되면 내 키보다 더 큰다. "옥수수의 꼭대기에 있는 수술을 외부에 보이기 위한 왕관이고, 껍질로 켜켜이 싼 암술은 자신의 가슴이 간직한 보불이다." 배철현 선생의 멋진 표현이다. 옥수수를 잘 들여 다 보자. 만약 옥수수가 맨 꼭대기 수술 위에서 열매를 맺기 원한다면, 옥수수는 다 자라나지 못하고 그 힘에 못 이겨 땅으로 쓰러질 것이다. 옥수수의 심장에서 만들어지는 '보물'은 아직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껍질 밖으로 소위 수염만 엉성하게 분산한다. 조선 양반의 수염처럼.

이 대목에서 나는 흥분했다. 실제로 농사를 지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것들을 잘 모르면서. 배철현 선생에 의하면, 옥수수의 수술이 인간의 말과 행동이라면, 암술은 그것을 조절하는 인간의 생각이다. 생각이 익어 우리가 먹는 맛있는 옥수수가 되는 것이다. 옥수수에 암술이 너무 많으면 말과 행동이 분산되고, 생각이 흩어진 결과 처럼, 그 결실이 부실하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이다. 무언 가에 한가지에 몰입할 일을 찾아, 생각을 집중할 때 결과가 튼실하다.

배철현 선생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본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간절히 원하고 있는 그것이다. 내가 그것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찾을 때, 세상의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하고 희귀한 보물이 된다. 그 생각이란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가만히 관찰하는 것이다. 이 관찰을 통해 생각을 훈련하는 사람은, 급기야 감동적이며 독창적인 생각을 떠올릴 수 있다."

하루를 일생처럼 살기를 다짐하는 사람은 그런 참신한 생각이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이 훈련을 통해 매일 새롭게 등장하는 인간의 마음가짐을 우리는 심지(心志)라 한다. 마음의 생각이 의지가 되는 사람은 행복하다. 옥수수를 이젠 다시 새롭게 본다. 옥수수를 먹을 때 마다 이 사유를 기억하리라. 생각이 있어야 하고, 그 생각에 몰입하여야, 튼실한 열매가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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