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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장맛비가 내리면/홍수희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한 해의 반인 유월을 끝내는 주말에 임실을 다녀왔다. 노령산맥 섬진강 상류 지역으로 행정상으로는 전라북도이다. 대전문화연대가 기획한 <땅끝마을까지 가는 기차여행>의 한 코스이다. 임실을 한문으로 어떻게 쓰는가 궁금했다. 任實, 맡길 '임'에 열매 '실'자를 쓴다. 무슨 뜻일까? "열매를 맡긴다." 임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자두와 살구를 파는 두 아주머니를 보긴 했지만, 주변에 과실 나무보다는 옥수수 밭과 담배 밭이 더 많았다.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임'은 '그립고 사랑하는 사람'이고, '실'은 실(谷, 마을)로 '서울'처럼 순 우리말이리고 한다. 그러니까 임실은 '그립고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을 한자로 취음한 것 같다.

내 기억으로는 임실하면, 치즈가 떠오른다. 그리고 지난 4월에 돌아가신 벨기에에서 오신 지정환 신부님이 생각난다. 난 일행이 예약한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멀리 돌아 그들과 점심시간에 만났다. 무궁화로 익산까지, KTX로 남원까지 간 다음, 다시 무궁화로 갈아타고 임실로 다시 올라왔다. 호우주의보가 내린 날씨였지만, 불편하지는 안 했다. 남원역에서 거의 한 시간을 손님 맞이방에서 '멍'때리는 호사를 누렸다.

점심을 먹은 후, 마을의 어른들이 몇 분 탄 시내버스를 타고 성수산 자연휴양림을 찾아가 걸었다. 장맛비가 내렸지만, 심하지 않아서 우리는 한적한 길을 그냥 걸었다. 중간 중간에 만난 산딸기를 마음껏 따먹으면서, 고려와 조선의 건국 설화가 얽혀 있는 숲길을 실컷 걷다가 예약해 둔 택시를 타고 나왔다.

기차로 다시 돌아오는 동안, 창밖의 장맛비는 굵어졌다. "장맛비가 내리면", "한 사나흘", 우리도 물이 되어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2019년도 반 년이 지나간다. 내일이면 벌써 7월이다. '미끈유월(농사 일로 바빠 한 달이 미끄러지듯이 쉽게 지난간다는 말)'이 가고 '어정칠월(칠월은 한가해 어정거린다는 말)'이 온다. 회두리에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그 누구나 농부다. 이제 땅의 소출이 경제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를 잊으면 헛사는 것이다. '떵떵' 거리며 산다는 말도 기실 '땅'에서 왔다. 그런데 수십 만 평의 땅보다 한 뼘 남짓의 그 마음 농사가 더 중요하다.  

장맛비가 내리면/홍수희

한 사나흘
나도 물이 되어볼란다

내리는 비만 탓하지 않고
나도 물이 되어볼란다

독방 속에 갇힌 수인(囚人)처럼
단단한 내 마음의 벽안에 갇혀

벽지만 후벼파던 결별의 세월
아, 이제사 나도 물이 되어볼란다

제 모양만 고집하지 않고
담기는 대로 네가 되어주는

자유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 이제사 나도 바다로 가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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