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그제 아침에는 곱게 홀로 핀 능소화 꽃무리를 만났다. 봄의 꽃들이 다 지고, 뜨거운 여름에 당당히 피는 꽃이 능소화이다. 꽃 피우는 것을 힘들어 하는 꽃은 없다. 핀 꽃이 덥다고 모습을 바꾸는 꽃은 없다. 장마 더위에 귀를 활짝 펴고 웃는 능소화를 보라. 일반적으로 꽃이 피고 질 때는 꽃이 시들어서 지저분하게 보인다. 그러나 능소화는 꽃이 질 때 예쁜 모습 그대로 뚝 떨어진다. 꽃이 시든 채 나무에 매달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옛날 양반집에 주로 이 능소화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곳 저곳에서 쉽게 눈에 띤다. 몇일 전에 못다 한 능소화 이야기를 한다. 능소화의 꽃말은 영광과 명예라고 한다. 조선 시대에 자원급제를 한 사람의 화관 꽂아 주었기 때문에 능소화를 '어서화'라고도 한다. 꽃의 자태가 아름답고 고고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제에 이어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 제2도 "서명, 인간의 소명"을 공유한다. 다음은 한형조 교수님이 번역한 것이다. "'하늘을 아버지, '땅'을 어머니라 부른다. 나는 여기 조그마한 몸으로, 그 가운데 존재한다. 그러하기, 내 몸(體)는 천지에 가득 찬 물질의 일부이며, 내 정신(性)은 천지를 이끌고 있는 분자이다. 이 땅의 백성들은 내 동포이며, 다른 사물과 생명들은 내 친구들이다."
어제 우리 인간 하늘과 땅 사이에 조금한 몸으로 가운데(中)이 놓여 있는 존재라고 했다. 그리고 우주는 한 가족이다. 그래서 "백성들은 나와 피를 나눈 동포요, 친척이다. 지구상의 다른 생물종들은 내 동료요, 친구들이다." 이를 <성학십도>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4) 민오동포, 물오여야(民吾同胞, 物吾與也): 이 땅의 백성들(民)은 나와(吾) 같은 탯줄(同胞)이며, 다른 사물과 생명들(物)은 내(吾) 친구들(與)이다.
그러나 유가(儒家)적인 사고로 우주가 비록 한 가족이기는 하나, 그것은 평등한 인간들의 수평적 집합체가 아니라, 그 안에 차별적 위상과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차이의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우주, 국가 그리고 가정은 같은 원리 위에 있는 동심원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5) 大君者吾父母宗子 其大臣宗子之家相也(대군자오부모종자, 기대신종자지가상야)" 군주(君子)란(者) 내(吾) 집안(父母)의 맏이(宗子)이고. 그(其) 대신들(大臣)은 그 맏이(宗子)를 도와주는 사람들(家相)이다.
우주처럼, 가정처럼, 국가 역시 그 중심인 맏아들이 있는데, 그가 바로 임금이다. 여러 신하들은 이 '국가의 종손'을 도와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질서가 최근의 정치권을 보면 무너졌다.
(6) 尊高年所以長其長 慈孤弱所以幼其幼(존고년소이장기장, 자고약고이유기유): 노인(高年)을 공경(尊)하는 것이 곧 내(其) 어른(長)을 받드는(長) 일(所以)이고, 외롭고(孤) 힘없는(弱) 이들을 사랑하는(慈) 것이 곧 내(其) 아이들(幼)을 돌보는(幼) 일(所以)이다.
우주처럼 국가도 내 가족 공동체이다. 그런 점에서 내 어른만 모신다 거나 내 아이들만 돌보겠다는 가족 이기주의는 용납될 수 없다. 나이든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바로 내 어른을 섬기는 도리이고, 고아나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이 곧 내 자식을 보호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우주적 가족을 마음 속에 새기고, 좁은 자아와 가족 이기주의를 넘어 '우주적 자아로서의 삶'을 사아가리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영웅적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성현(聖賢)이다.
(7) 聖其合德, 賢其秀也. 凡天下疲癃殘疾惸獨鰥寡, 皆吾兄弟之顚連而無告者也(성기합덕, 현기수야. 범천하피륭잔질경독환과, 개오형제지전연이무고자야): 위대한 자(聖)는 천지(其)의 덕성(德, 고대 그리스어로 아레떼)이 몸에 밴(合) 사람이요, 현자(賢)는 그(其) 순수함을 탁월하게(秀) 갖춘 자이다. 무릇(凡) 天下에 고단하고(疲癃) 병든 사람(殘疾), 부모 없고(惸), 자식 없고(獨) 아내 없고(鰥), 지아비 없는(寡), 이를 모두(皆)는 내(吾) 兄弟 가운데(之) 넘어지고도(顚連) 하소연(告)할 데 없는(無) 사람들이다(者也). 참고: 해칠 잔(殘), 피곤할 피(疲), 느른할 륭(癃), 근심할 경(惸), 홀아비 환(鰥), 넘어질 전(顚)자이다.
성자(聖者)는 그 우주적 책임에 튜닝된 사람이고, 현자(賢者)는 그 우주적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는 자기 주변에 핍박 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병든 사람, 장애자, 고아나 독거노인, 배우자를 잃은 홀아비와 과부 등, 세상에 의지할 바 없고 버림받은 사람들은 모두 네 피붙이 형제들이다. 여기 까기가 <서명>의 상반부에 해당한다. 우주 안에 인간으로서 나의 포지션(position)을 알아차리고, 그 안에서 '위대한 개인'-성현(성현)-이 되어가는 자기 구원을 길을 탁월하게 '우주적 책임'을 다 하는 것이다.
너무 어려운 글이어서 시는 좀 쉬운 것으로 공유한다.
행복의 비결/법정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안으로 충만해지는 일은
밖으로 부자가 되는 일에
못지않게 인생의 중요한 몫이다.
인간은 안으로 충만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향기로운 차 한 잔을 통해서
행복을 느낄 때가 있다.
또 다정한 친구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전화 한 통을 통해서도
나는 행복해진다.
민주주의는 소중하지만 문제가 연약하는 점이다. 대중에게 아부를 잘하는 성동 정치가를 리더로 뽑아 전체주의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민주주의 기반은 '공정(公正)과 경쟁(競爭)'이다. 공정은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이 그 사람의 개성과 최선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차별이 없다는 것은 자신의 배경과는 상관 없이, 주어진 임무에 그 개인이 얼마나 최적화되어 있느냐 이다. 경쟁은 타인과의 경쟁에서 반칙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으로 최고가 되려는 분투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누구나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어김없이 발휘할 때 탁월한 인간이 된다고 믿었다. 그들은 이런 가치를 '아레떼(arete)'라고 했다. 우리는 이를 그냥 '덕(德)'으로 번역하나, 고대 그리스인들이 염원한 인간의 최선을 총체적으로 담은 심오한 말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지도자를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자신의 아레떼를 어김없이 발휘한 자를 투표를 통해 선출했다. 그들은 이런 과정을 통하지 않고 왕권을 자식에게 물려준 페르시아 제국의 행위를 바바로스, 죽 야만인이라고 말했다. 바바로스가 영어 단어 야만이라는 바바리안(barbarian)의 어원이다. 야만인은 자신만의 고유한 아레떼가 무엇인지 모른다. 야만인 다른 사람의 아레떼를 흉내 내는 어정쩡한 인간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만물엔, 그것이 되어야 만 하는 아레떼가 있다. 아레떼의 원래 의미는 만물이 각자 존재하는 의미이다. 개인이 자신의 시공간적으로 존재하는 이유를 묵상을 통해 깨달어 그런 삶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아레떼이다. 아레떼를 우리 말로 덕이라고 해석되지만,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최선(最善)이다. 플라톤은 이레떼를 '인간 노력의 탁월함'으로 발전시킨다. 아레떼는 자신이 최선을 이루겠다는 결심과 노력이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지속적인 마음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무엇을 이뤄가겠다는 확신, 이를 지속적으로 완성해 나가려는 겸손에서 아레떼는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이 혹독한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고, 공정한 경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타인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여 더 나은 자신을 여실히 보여주려는 노력에서 이루어진다.
어제는 정말 '최선'을 다 한 날이다. 새벽 두 시 반부터 일어나, 이른 아침에는 KBS에 라디로 인터뷰를 했다. 세상 변한 것이 스튜디오에 나가지 않고, 침대에서 스마트폰으로 대담을 했다. 그리고 <유라시아문화원>을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났다. 저녁에는 늘 응원하는 연구소장님이 찾아 주시었다. 하루 종일 아레떼를 발휘한 나에게 와인을 선물해 주고 집으로 들어 와 긴 하루를 마감했다. 그래 <인문 일기>도 어제 것과 오늘 것을 동시에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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