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6월 27일)
지난 주말에는 앤드류 매튜스의 <<마음 가는 대로 해라(follow your heart)>>를 읽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마음 가는 대로 살라면서도 다음과 같은 주제를 갖고 10개의 장으로 나누었다. 나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나는 멋진 문장들을 공유할 생각이다. 그러면서 나는 그 문장들을 기억하며, 일상에서 필요한 내 마음의 방향을 잡아가며, 내적 평화를 유지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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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우리의 스승이다. 우리가 세상으로 교훈을 배우는 데 실패하면 계속 시련을 겪고 또 겪는다. 한 번 교훈을 얻게 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교훈이 바닥날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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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편애하지 않는다. 성공과 행복은 자연 법칙을 따른다. 따라서 성공과 행복은 우리가 자연 법칙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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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믿는 대로 살게 된다. 세상에 대한 뿌리 깊은 믿음을 바꾸면 삶도 따라서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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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든 돈이든 무언 가에 집착하는 순간, 그것이 우리를 거꾸로 옭아맬 것이다. 더 나아가 무언가를 소유하면, 그 소유에 우리는 다시 소유 당한다. 인생의 중요한 덕목은 모든 것에 감사하고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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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집중하는 것이 확장된다. 그러니까 원하는 걸 많이 생각하는 거다. 세상 일은 생각대로 된다. 그러니 상황을 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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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 대로 하자. 인생의 목적은 문제없이 사는 게 아니라, 신나게 사는 거다. 삶은 투쟁이 아니다. 마음 가는 대로 살며 삶을 즐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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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은 신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만든다. 신은 절대로 하늘에서 내려와 '이부터는 성공할 일만 남았네'라 말해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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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맞서 싸우면, 언제나 세상이 이긴다. 마음의 평화를 원한다면, 세상 일을 선악으로 구분 짓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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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조건 없이 사랑한다면 완벽하게 받아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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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명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바꾸는 것이다. 답은 우리 안에 있다.
오늘 아침은 두 번째 이야기를 공유한다. "우주는 편애하지 않는다. 성공과 행복은 자연 법칙을 따른다. 따라서 성공과 행복은 우리가 자연 법칙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거다. '우주는 편애하지 않는다'는 문장을 보자, 노자가 말한 "천지불인(天地不仁)"이 기억났다.
"천지불인"은 천지의 운행이나 활동, 그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감이나 바램과 무관하게 그 나름대로의 생성법칙과 조화에 따라 이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좀 야속하고 때로는 무자비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과 땅 그리고 성인들로 대표되는 도(道)를 인간적 감정에 좌우되어 누구에게는 햇빛을 더 주고, 누구에게는 덜 주는 따위의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마치 자연의 작용은 때에 따라 특정 지역에 홍수나 지진 등 자연재해를 주는 것 같이 여겨지지만, 결국은 인간 삶의 전체적인 환경을 더욱 생기 있게 변화시켜주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제1 자연의 법칙은 '씨앗의 법칙'이다. 이 법칙은 '일을 한 뒤에 씨앗을 거두어들여라'라는 교훈을 준다. '땅을 파고 씨앗에 물을 주는 행위(노력)'가 '기다림의 시간(인내)'과 만나야 콩을 수확할 수 있다'는 거다. 결과를 얻으려면, 노력과 인내가 필수라는 거다. 노력이 먼저고, 추수는 그 다음이다. 순서를 뒤집을 수는 없다. 다음과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신용카드와 우편 주문 카탈로그는 당장 무언가를 사도록 부추긴다. 다가오는 7월까지는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8월에는 파산하게끔 한다. 결국 같은 원리이기 때문에 '우선 사고 나중에 지불해라'보다는 '우선 벌고 나중에 지불해라'가 낫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구하는 대로 받게 된다.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 하고, 공부도 하고, 사람들을 사귀면서 최대한으로 노력하고 있는데도 인생에서 좋은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여태껏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우주는 변명이 아닌 노력을 보상한다. 잘할수록 게임의 판은 커진다. 작은 게임에서 이기면 더 큰 게임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 인생은 서서히 발전한다. 변함없이 중요한 질문은 '지금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이다. 대답이 '딱히 없다'라면, 아무것도 나아질 수 없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낳는 거다. 큰일을 맡을 수 없다면, 작은 일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우선은 뛰어드는 거다. 한 사례를 공유한다.
닉은 이민자로 돈도 없었고, 영어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접시 닦기 일을 지원 했다. 사장과 면접을 보기 전, 닉은 레스토랑 화장실에 들어가 그곳을 솔로 깨끗하게 닦았다. 그러고는 칫솔을 가져가 얼룩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타일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면접을 보는 동안 사장은 '화장실에 무슨 일이 있던 거지?'라며 궁금해했다. 닉은 '전 접시 닦는 일에 진심이에요'라는 의사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닉은 채용되었다. 일주일 후 샐러드 담당이 그만두자, 닉에게 요리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런 식이다. 눈앞에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기회의 문이 열릴 것이다.
기회의 문은 밀어야 열린다. "기회는 노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당신이 문을 밀어 넘어뜨릴 때 모습을 드러낸다."(카일 챈들러) 기회라는 것은 대개 일처럼 다가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회를 놓치고 만다. 기회를 일처럼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에 일을 즐기며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일이 기회가 될 거라 믿는다.
나의 채소밭 가늘 길에 매화 나무가 하나 있다. 최두석 시인은 "봄을 부르는 매화 향내를 맡고부터는/봄에는 매화나무라고 부르고/여름에는 매실나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런 매실을 보고,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의 시인은 ‘잘 익어 뒹구는 노란 매실들’을 보며 열매는 왜 둥근가를 생각한다. 관찰력과 시심(詩心)이 동시에 발동한 것이다. 매실이 둥근 것은 ‘새싹이었을 때 / 새잎이었을 때 / 꽃이었을 때 비바람을 잘 견뎠다는 점수’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온갖 시련을 잘 견딘 점수는 100점. 그러고 보니 점수의 동그라미와 매실 생김새가 똑같다. 뒤이어 시인은 "잘 익어 뒹구는 매실을 바라보다/모욕을 잘 견뎌 둥그러진 오래전 사람 하나를/한참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 사람은 아마도 등 굽은 소나무 같은 사람이리라. 시인에게는 둥그러진 사람 하나가 있었나 보다. 그 사람은 세상을 받아내는 방식이 남하고 같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다. 얼마만큼의 진물을 흘려야 사람은 둥그러질 수 있을까?
열매는 왜 둥근가/공광규
능곡 매화나무 가로수 아래를 걷는데
잘 익어 뒹구는 노란 매실들
매실을 밟으려다 열매는 왜 둥근가를 생각했다
새싹이었을 때
새잎이었을 때
꽃이었을 때 비바람에 잘 견뎠다는 점수겠다
색연필로 둥글게 채운 색깔과 향기
오래 견딘 열매에게 주는
참 잘했다는 선생님의 천지신명의 칭찬이겠다
잘 익어 뒹구는 매실을 바라보다
모욕을 잘 견뎌 둥그러진 오래전 사람 하나를
한참 생각했다
앞의 이야기와 달리, '개구리 법칙'이라는 게 있다. 똑똑하고 행복한 개구리를 뜨거운 물이 가득 찬 양동이에 떨구면 뛰쳐나올 것이다. 그러나 같은 혹은 비슷한 개구리를 차가운 물이 가득 찬 양동이에 넣은 다음 난로 위에 양동이를 올려 천천히 가열하면, 개구리는 안심하다가 몇 분이 지난 후 '따뜻한 물이 좋구나'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개구리는 익어 버린다. 이처럼, 인생도 서서히 진행된다. 개구리처럼 속고 있다 가는 어느새 너무 늦어 버린다. 인생은 누적된다. 물방울들이 모여 큰 바위를 뚫듯이 하나의 일위에 다른 일이 겹쳐진다. 개구리 법칙은 그런 경향을 조심하라고 일러주는 거다.
그래 자기 훈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하기 싫은 작은 일부터 훈련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원했던 큰일을 하며 살 수 있다. 자기 훈련이 인생에 차이를 만든다. 인생은 당장의 즐거움과 느린 보상 사이에서 맞춰진다. 자기 훈련의 핵심은 강철 같은 의지가 아니라, 바로 무언가를 왜 원하는지 그 이유를 아는 것이다. 또한 자기 훈련이 된 사람은 다른 곳에서 가르침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 결과적으로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 나가기에 다른 사람들이 이래라저래라 하지 못한다.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 영하 50도에서 꽁꽁 얼린 얼음 한 조각에 열을 가해 녹여 보면, 처음 얼마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0도에 이르면 녹아서 물이 된다. 계속 열을 가하면 여전히 반응이 없다가 약 100도에 이르면 물이 끓기 시작하면서 공기 방울이 생기고 수증기가 나온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도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도 아무런 진전이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보지 못할 뿐이지 이미 변화는 만들어지고 있다. 계속 에너지를 쏟다 보면 분명히 눈에 보이는 변화가 생길 것이다. 이 법칙을 알아야 우리는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매일 변한다. 계절이 오고 가고, 조류가 왔다 가고, 물가가 오르내리고 한다. 우주의 근본 법칙이 '변화'이다. 오늘 사실이라고 해서 내일도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늘 잘된다고 해서 내일도 잘되지 않는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 공평한지 아닌지는 문제가 아니다. 모든 건 움직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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