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6월 28일)
노자의 <<도덕경>>을 읽을수록 노자가 비유의 달인이고, 수사학의 천재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사물의 정곡을 찌르는 그 비유의 수사학이 절묘하다. 노자는 상도(常道) 대 비상도(非常道), 무욕(無欲) 대 유욕(有欲), 무명(無名) 대 유명(有名), 무위(無爲) 대 유위(有爲) 등 서로 상반되는 것, 대상의 다름과 차이를 하나로 아우르면서 양가적인 것의 동시성을 밝혀내는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지난 주 금요일 함께 읽은 제27장을 시작하는 문장 "선행무철적(善行無轍迹, 길을 잘 가면 자취가 남지 않는다) 이야기를 좀 하려 한다. 여기서 "철적"은 수레바퀴 자국과 말 발자국을 가리킨다. 길을 잘 가면 그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공중화장실에 가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문장,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가 소환된다. 머문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앞 모습보다 뒷 모습이 아름다워야 하고, 머문 자리가 깨끗해야 하며, 지나간 자리는 가지런해야 한다. 공공장소에서도 내가 머문 자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정리하는 일, 직장이나 사회에서도 내가 맡은 일을 후임자에게 깨끗하고 가지런하게 물려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래야 다음에 오는 이나 함께 머문 이가 불편하지 않고 서로의 믿음이 싹틀 것이다. 또 우리 후손들에게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을 물려주는 일이나 재정적자로 인한 빗더미를 자손에게 안겨주지 않는 일도 지금의 우리가 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한번 왔다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내가 머문 자리에 아름다운 향기와 고운 흔적이 남는 의미 있는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살면서 자기가 머문 자리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지극한 경지에 닿은 것이므로 흠이 없다. 원래 노자가 한 말은 병법(兵法)에서 원용된다. 군사가 이동한 자취는 적에게 제 위치를 들킬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 뛰어난 전략가는 군사를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자취를 남기지 않고 이동한다. 그런 용의주도(用意周到, 어떤 일을 할 마음이 두루 미친다는 뜻으로 이미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 빈틈이 없는 상태)함 말 잘하는 사람에게 흠잡을 게 없고, 셈 잘하는 사람이 수리에 통달하여 산가지(주판이나 계산기)를 쓰지 않고 셈하는 것과 같다.
노자의 생각에 따르면, 길을 가면서, 또는 살아가면서 흔적을 남기는 일이나, 빗장이나 자물쇠를 써서 문을 잠그고, 새끼나 밧줄로 사람을 묶는 것은 도를 따르지 않고 억지로 하는 것이다. 억지로 함에는 인위적인 자취가 남는다. 자취가 필요 없는데 자취를 만기는 것은 낭비에 지나지 않는 거다. 흠 없고 깔끔한 일 처리는 곧 자연의 도를 따른 결과이다. 노자는 이것을 "요묘(要妙)"라 했다. 이는 '오묘한 요약'의 줄인 말이다. 이는 자연의 도를 따르는 사람의 슬기, 도에 이르는 심오한 이치를 말하는 거다.
오늘 아침은 제31장을 정밀 독해한다. 그 내용은 블로그로 옮긴다. 제30장과 제31장은 <<도덕경>> 가운데서 노자의 평화주의 사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이다. 사람들은 전쟁에서 이긴 후 돌아오는 개선장군을 향해 꽃가루를 뿌리면서 이름을 연호한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관습에는 변함이 없다. 로마에서는 개선장군을 위해 화려한 퍼레이드를 열었고, 파리의 개선문도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건축한 것이다. 국가에서는 훈장을 수여해서 승전자의 이름을 드높인다. 그러나 노자가 볼 때 이러한 행사는 도에 합당하지 않다.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을 추켜세우는 것은 결국 살인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것이다.여기서 노자는 살상용 무기를 손에서 내려놓고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에게도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예를 갖추라고 말한다. 죽은 사람을 위해서 정중하게 장례를 치르고 마음속으로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리라고 말한다.
도올 김용옥은 이 장을 강의하며, 병법(兵法) 이야기를 길게 하고, 마지막에서 "戰勝以喪禮處之(전승이상례처지, 전쟁의 승리를 엄숙한 장례의식으로 치러야 한다)", 이 문장을 "서구적 가치관에 젖은 사람들이 진실로 결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들에게 "인생에서 우리가 겪어야 하는 모든 상황에서 패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라는"것으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패자에게 예의를 갖추라. 우리 사회에 결핍된 철학이다. 우리 사회는 지나친 승자독식사회이다.
부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눈에 우리 사회는 극단적 자유시장경제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고,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매일 매일 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연대이니 협력이니 찾아 볼 수 없고, 승자독식의 싸늘한 논리만 존재한다. 이건 정글이다. 우리 사회는 양육 강식의 정글 자본주의 사회이고, 시장이 인간을 잡아먹는 야수 자본주의 사회이다. 그 대안으로 나는 막연하게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꼽았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 해소,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 그리고 문화와 예술 향유를 통한 경쟁이 아닌 여유로운 '저녁이 있는' 삶을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으로 여겼다. 그리고 나는 최근에 여기에다 승자 독식 사회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하는 엘리트들과 전쟁을 덧붙인다. 이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도 가장 핫(hot)한 이유이다. 엘리트들이 구축한 기득권 세력들이 이젠 적폐이다.
펜싱에서 쓰이는 용어로 "Touche(뚜쉐)"가 있다. 한국 말로 하면 과거분사로 수동적인 의미를 띤, '다았다, 맞았다, 찔렀다'쯤 된다. 펜싱은 찌른 사람이 아니라 찔린 사람이 '뚜쉐'라며 손을 들어 점수를 주는 시합이었다. 우리 사회는 '멋있게 지는 법'을 잃어버렸다. 우리 사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면 그 승리를 독점하고(승자독식사회), 게다가 그 승리를 지나치게 우상화하는 경향이 짙다. 글이 길어진다. 병법 이야기는 내일로 미룬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는 내가 잘 아는 시인의 것이다. 우리 동네 시인이다.
뒤에 서는 아이/이태진
줄을 서면 늘 뒤에 서는 아이가 있었다
앞에 서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아서인지
뒤에만 서는 아이는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뒤에 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고 난 후에도
늘 뒤에 있는 것이 편안해 보였다
주위의 시선과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것을
왜 그리도 익숙해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뒤에 선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침묵으로 대변하고 있다
이젠 글을 두 가지 버전으로 쓴다. 길게 사유한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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