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오늘 공유하는 시의 제목처럼, "천년의 바람" 같은 글을 공유한다. 한 문장 씩 천천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 제2도 "서명, 인간의 소명"을 한형조 교수님이 번역한 것이다.
"'하늘을 아버지, '땅'을 어머니라 부른다. 나는 여기 조그마한 몸으로, 그 가운데 존재한다. 그러하기, 내 몸(體)는 천지에 가득 찬 물질의 일부이며, 내 정신(性)은 천지를 이끌고 있는 분자이다. 이 땅의 백성들은 내 동포이며, 다른 사물과 생명들은 내 친구들이다."
이 세상에 놓인 우리 자신을 잘 위치시킨다. 한형조 교수는 하나의 '바둑판'에 놓인 돌처럼, 우리의 위치를 설명한다. 우리 인간은 생(生)인 동시에 명(命)이다. 풀이 자라듯 주어진 조건 속에서 살아감이 생이라면, 그 의미를 묻고 그 의미에 따라 살아감이 명(命)이다. 그 명을 깨닫는 것이 인간의 소명(召命)을 아는 일이다. 가야할 길을 알고 걷는 이의 발걸음은 흔들림은 있을지언정 방향을 잃는 이는 없다. 그런 차원에서 한문과 함께 그 뜻들을 좀 자세하게 풀이해 본다. 눈이 열린 이들은 걸림돌을 디딤돌로 삼는 법이다.
(1) 乾稱父坤稱母(건칭부곤칭모): 하늘의 원리를 아버지라 칭하고, 땅의 원리를 어머니라 부른다. 건곤은 우주적 아버지와 어머니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주란 커다란 가족이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식을 낳아 기르고 있듯이, 우주 또한 건곤이라는 빅(大) 부모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정은 작은 우주이고, 우주는 큰 가족 공동체라 할 수 있다. 가족의 의미가 새롭다.
(2) 予玆藐焉 乃混然中處(여자묘언 내혼연중처): 어려운 한자들이 많다. 나(予) 여기(玆) 자그마한(藐焉) 몸으로, 이에(乃) 뒤섞여(混然) 가운데(中) 존재(處)한다.
이를 한형조 교수는 이렇게 번역했다. "나는 여기 가물가물하나, 콩 알만 한 크기로 천지만물과 구분되지 않고, 그 한가운데 서 있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의 산수화에 인간은 화면 중심에 있지 않고, 변두리나 아주 작게 그려진다. <서경>은 사람이 아니라 우주가 그리고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가 중심에 있다. 그러다 보니 주자학에서 개인은 전체의, 이를테면 우주나 사회, 가족 등 공동체의 유기적 일부로서 각자가 점하는 위치와 상황에서 적절한 역할과 의무를 다하도록 요구된다.
(3) 故天地之塞吾基體, 天地之帥吾基性(고천지지새오기체, 천지지수오기성): 허여(故) 천지의(之) 가득 찬 물질(塞)이 나의(吾) 몸(體)이고, 천지의(之) 정신(帥)이 나의(吾) 그(基) 본성(性)이다.
어려운 말이다. 변방의 '새' 장수 '수'자를 이해하여야 한다. <맹자>에게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내 신체(體)를 채우고 있는 것이 바로 기(氣), 즉 생리적 정서적 컨디션이고, 그것을 주도(帥)하는 것이 내 결의(志)"라는 것이다. 맹자는 두 길을 제안한다. 선을 향한 의지를 굳건히 하고, 한편 신체와 감정을 편안한 상태에 두도록 노력할 것. 여기 이(理)와 기(氣)의 논쟁이 나온다. 주자학에서 건곤(乾坤)은 이기(理氣)를 합친 이름이다. 그 가운데 기(氣), 우주의 물질적 활동인 음양은 사람을 포함한 만물의 '신체'를 구성하며, 이(理), 즉 우주의 정신적 동력인 건순(乾順, 하늘의 순리)은 사람을 포함한 만물의 '의지'를 부여해 주고 있다. 하늘의 순리, 이(理)가, 우리가 근대 이후 산업화와 자본화 그리고 개인과 민주의 세월을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잊혀진 신화와 형이상학에 속하는 어떤 것이 되었다.
여기까지 <성학십도> 제2도 <서경>의 앞부분이다. 오늘 아침은 여기서 멈춘다. 꼼꼼하게 읽다 보니 "천년의 바람" 같다. 자연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얼마나 큰 계시인지 모른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자들이 주변에 많다. 상식과 사회 이성을 벗어난 자들이 우리의 눈앞에서 세상을 어지럽힌다. "천년의 바람"은 알겠지? 오늘 아침 사진은 우리 동네 정원에서 찍은 것이다. 포도도 바람을 먹고 큰다. 나도 "천년의 비람"으로 한 뼘 영혼이 성장하는 이침 글쓰기였다.
천년의 바람/박재삼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오랫동안 읽지 못했던, 나에게 커다란 힘을 주는 배철현 교수의 담벼락을 만났다. 그는 "아침에 눈을 뜨고 그 날 완수해야 할 일이 있다면 행복하다"고 했다. 내가 그렇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오늘은 위한 최선의 전략을 짜기 위해 정해진 일을 선택과 순서를 정한다. 그리고 매일 <인문 일기>를 쓰며, 하루를 충만하게 살 에너지를 모은다. 그 일은 내가 선택한 일이라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 이런 라이프 스타일을 만든 것은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내 배역을 찾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정체성은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애벌레가 고치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 이게 '자기 구원의 길'이다. 그런 마음으로 한동안 <성학십도>를 꾸준히 읽을 생각이다.
기원전 4세기에 등장한 헬레니즘은 피안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삶에 관심을 두고 이야기 한다. 특히 우리의 일상을 행복하고 지혜롭게 살기 위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건 자신의 개성을 발견하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과 고독을 가장 기본적인 훈련으로 소개하였다. 그런데 세상을 나를 가만히 있게 나누지 않는다. 다른 이들과의 만남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고독을 빼앗고 고독이 선물해주는 평온을 쉽게 흔들어 놓는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하나?
우선 다른 이와 관계를 맺기 전에 자신이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라고 한다. 자신의 개성과 성향을 구체화하고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특징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타인을 만나더라도, 개성을 지닌 존재로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의 개성이 존경할 만한 타인의 개성과 마주하여, 유사한 점을 즐거워 하고, 상이한 점을 상대방만의 개성으로 존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 좋은 지혜이다. 그러면 타인과 만남에서 내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름을 틀림이 아니라, 단지 차이로 받아들이기 쉬울 것 같다.
그러나 친구가 될 사람에 대한 선택권은 언제나 우리에게 있다. 스토아 철학자들도 자신과 세계관이 다른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들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더 훌륭하게 실천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리라고 충고한다. 배교수는 이런 주장들을 소개하고 있다. 나도 공유한다.
"행복한 사람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 곁에서 얼쩡거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타인을 험담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지 않습니다." 다윗이 <시편> 제1편에서 한 말이다. 자신과 가치관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 나의 평정심이 무너지고 가치관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당신은 사람을 선택하는데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이 당신의 소중한 사람을 부여할 만큼 가치가 있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것입니다."(세네카, <평정심에 관하여> 재7단락) 사람 만나기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나의 부동심(부동심), 즉 정신의 평정(平靜, 아타락시아) 때문이다. 나는 '습정양졸(習靜養拙 고요함을 익히고 고졸함을 기른다), "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고 실천하고 있다.
또한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는 참석할 모임에 대한 기준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사려가 깊은 사람이나 철학자가 주선한 모임이나 연화가 아니라면, 참석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만일 그런 모임에 참석할 수밖에 없다면 말을 삼가하라고 말한다.
"침묵이 연회에서 당신의 규범이 되게 하십시오. 혹은 필요한 말만 몇 마디 하십시오,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검투사, 경마, 운동선수들, 마실 것, 먹을 것, 특히 누구를 지나치게 칭찬하거나 욕하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가능하다면, 당신은 당신을 잘 아는 사람들과 함께 적당한 대화를 유지하십시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면, 침묵하십시오, 모르는 사람이나 무식한 자가 추천하는 잔치에 가지 마십시오, 만일 가야한다면, 당신은 정신을 차리고 성급한 말과 행동이 나오지 않도록 유의하십시오."(에픽테토스 <인생수첩>) 당시 사람들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상관이 없는 타인에 관한 이야기로 시간을 축냈는가 보다. 우리에게 하루는 누구와 만나고 어울리느냐 에 그 가치가 매겨진다. 그보다도 먼저 '나'라는 인격, 나의 개성과 성향을 구체화하고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특징으로 발전시키는 하루 하루가 되도록 수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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