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최근 내 삶의 즐거움은 내가 직접 농사 지은 수확물을 즐기는 일이다. 갓 수확한 채소를 배어물면 땅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와인도 그렇다. 좋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면, 그 포도밭의 기운을 느낀다. 의도적으로 열흘 이상 '주'님을 멀리했다가, 어제 친구들과 좋은 음식과 와인을 즐겼다.
그래 오늘 아침은, 가보지는 못했지만, 영화와 블로그에서 알게 된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노마(NOMA)' 이야기를 좀 하면서, <청국장>이라는 시를 공유한다. 'NOMA'는 스칸디나비아, 북유럽을 뜻하는 노르디스크(Nordisk)와 음식을 뜻하는 마드(Mad)의 첫 두 글자를 떼어 만든 이름이라 한다. 요즈음 TV만 켜면, "먹방"이다. 이 "먹방"이라는 말은 번역 없이 이 한국말로 세계에 펴졌다고 한다.
맛있는 음식에는 비결이 있다. 뜨거운 음식은 뜨겁게, 차가운 음식은 차갑게 낸다. 온도는 맛의 기본이다. 하지만 음식을 더 맛있게 하는 비결이 있다. 음식 안에 시간과 계절을 담아야 한다. 오래 발효된 장이 깊어지는 것도, 김치가 숙성되는 것도, 오래된 차가 맛있어지는 것도 그런 이치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마(NOMA)'는 앉아 있는 이곳이 스칸디나비아이고, 지금이 겨울이거나 여름임을 알려주는 식재료를 쓴다. 흥미로운 건 이 레스토랑을 움직이는 스태프 중 놀랍게도 야생 베리나 버섯, 청어, 순록 등을 모으고 잡는 '전문 채집가'와 '어부' '수렵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노마'가 몇 년 전부터 실험을 감행했다. 레스토랑에서 쓸 식재료를 직접 가꾸고 키우는 농장을 만든 것이다. 흥미로운 건 식당에서 쓸 채소 몇 가지를 키우는 걸 뛰어넘어, 스테이크에 쓸 염소와 돼지, 소를 방목해 직접 키우는 실험적 레스토랑 역시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 레스토랑 가이드북인 '미슐랭'도 이런 식당을 점점 더 주목하고 있다. 이런 경향성은 건강한 먹거리와 함께 공장식 집단 가축 사육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음식은 '때우는 것'이 아닌 '음미하는 것'이어야 한다. 밥을 먹다가 "지금 우리가 여름을 먹지요."라고 말하는 것은 시인의 은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우리가 먹은 건 음식이 아니라 계절이다. 혹독하고 매서운 겨울을 뚫고 기어이 싹을 틔운 봄의 초록을 지나 여름의 짙은 녹색의 기운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음식은 몸을 살리는 약이 된다. 우리 동네에는 꽤 유명한 청국장집이 있다. 우선 청국장에서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 집의 노하우이다. 청국을 한문으로 쓰면 이렇다. 淸麴. '푸른 누룩'이라는 말이다. 어느 지역, 아니 어느 나라 콩을 사용하는 지는 모른다.
청국장/허정분
청국을 띄우려고
햇콩 두어 되를 가스불에 앉혔다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는
노란 콩들이 양은솥 속에서
동글동글, 데굴데굴, 콩콩통통,
경쾌한 비명을 질러가며
개나리 꽃잎 같은 꺼풀을 불리더니
결국 뜨거운 압력을 견디지 못해
제 빛을 잃고 몸의 탄력이 풀어진다
전혀 다른 이름을 얻기 위해
뭉그러지는 서너 시간 사이의 완전해체
통통 튀던 생을 죽인 삶은 콩을
소쿠리에 담아 섭씨 30도가 넘는 아랫목에 파묻는다
일정한 온도에서 사흘 간 썩어야 될 운명
죽은 콩들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지독한 부패의 힘이,
새롭게 결속을 다지며 태어나는 신토불이 청국, 청국장
푸르게 넘실거리는 본향으로의 회귀를 꿈꾸던 노란 콩알
알알이 들어와 박힌 고향의 맛을 끓이며
그리운 어머니를 불러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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