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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현재부터 답을 찾아야 한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2월 13일)

매년 이 때쯤 이면, 교수들이 뽑는 올해의 사자성어가 교수신문을 통해 발표 된다. 올해는 "묘서동처(猫鼠同處)"였다.  고양이 ‘묘’, 쥐 ‘서’, 함께할 ‘동’, 있을 ‘처’라는 네 자로,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 도둑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됐다'는 뜻이다. 중국 당나라 역사를 기록한 <<구당서>>에 등장한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쥐는 곡식을 훔쳐먹는 '도둑'에 비유된다. 고양이는 쥐를 잡는 동물이다. 둘은 함께 살 수 없는 관계이다. 그 둘이 함께 있다는 것은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거리(한통속)가 됐다"는 뜻이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했던 교수(영남대 최재목)는 "국정 엄정하게 책임지거나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고 시행하는 데 감시할 사람들이 이권을 노리는 사람들과 한통속이 돼 이권에 개입하거나 연루된 상황을 수시로 봤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이 묘서동처 격이라면, 한 마디로 막나가는 이판사판의 나"라며, "기본적으로 케이크를 자르는 사람은 케이크를 취해선 안 된다. 케이크도 자르고 취하기도 하는 꼴, 묘서동처의 현실을 한해 사회 곳곳 여러 사태에서 목도하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이 사자성어를 선택한 교수들의 말들을 들어보면 문제 의식들이 비슷하다. 국가나 공공의 법과 재산, 이익을 챙기고 관리해야 할 처지에 있는 기관이나 사람들이 불법과 배임, 반칙을 태연히 저지르는 것을 우리는 목격했다. 그러니까 감시자, 관리자 노릇을 해야 할 사람이나 기관이 호시탐탐 불법, 배임, 반칙을 일삼는 세력과 한통속이 돼 사적으로 이익을 챙기는 일들이 밝혀졌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 지도자들이나 고위 관료들이 적폐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차원에서, 내년의 대선은 나라를 바꾸는. 우리 사회의 대 개혁이 일어나는 원년이 되었으면 한다.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나라 교체, 세상 교체가 필요하다.

교수들 사이에서 두 번째로 많이 얻은 표는 '인곤마핍(人困馬乏)'이었다. '사람과 말이 모두 지쳐 피곤하다'는 뜻이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기나긴 피난길에 '날마다 도망치다 보니 사람이나 말이나 기진맥진했다'고 한 이야기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교수(이화여대 서혁)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유비의 피난갈에 비유하며, "코로나-19를 피해 다니느라 온 국민도 나라도 피곤한 해였다고 말했다. 이 사자성어를 선택한 여러 교수들은 덕과 인을 상실한 몇몇 지도자들의 말과 행동을 본 많은 국민들이 깊은 피로감과 실망감을 느끼며, 비상식적 정치판의 모습을 비판하였다.

3, 4위도 정치권을 비판하는 것들이었다. 3위는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의 '이전투구(泥田鬪狗)'였다. 자기 이익을 위해 비열하게 다툰다는 말이다. 이 사자성어를 택한 한 교수는 국민들은 코로나-19에 높은 물가와 집값으로 힘셔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정치 지도자들은 권력에 눈이 멀어 저속한 욕설로 서로 비방하면서 싸우고 있다고 우리 사회를 비판했다.

4위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이었다.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자 뱃전에 그 자리를 표시했다가 나중에 그 칼을 찾으려 한다'는 뜻이다. 판단력이 둔해 융통성이 없고 세상 일에 어둡고 어리석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교수(경희대 김윤철)는 부동산, 청년 문제 등 민심을 제로 읽지 못한 현실 정치권을 빗대어 표현하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나는 한 야당 후보가 '닥치고 정권 교체'를 외치지만, '무엇을 어떻게'가 빠진 채 주장하는 것에서 나는 '각주구검'을 읽는다.

5위는 '백천간두(百尺竿頭)'였다. 이는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이다. 이 사자성어를 선택한 교수(고려대 송혁기)는 '백척가두'에서 한 걸음 더 내디뎌야 진정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뜻에서 우리가 지금 다시 내딛는 한 발에 21세가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보아 추천했다고 했다. 사실 매우 중요한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 3월 9일이다. 미랴로 나아갈 것인가? 과거로 되돌아 갈 것인가?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6위는 '유자입정(孺子入井)'이다. 이 것도 내년에는 밝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선택한 것 같다. 이는 '아이가 물에 빠지려 한다'는 뜻이다. 이 것을 선택한 교수(경희대 전호근)는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정치권 모든 노력을 기울여 서민들의 삶을 보살피길 바라는 마음에서 추천했다고 했다.

어제는 주일이었지만, <<장자>> 읽기를 공주에서 했다. 친구가 1960년 지은 낡은 집을 리모델링했다고 해 그곳에 가서 점심도 먹고, 집도 구경하고 책을 읽었다. 어제 만난 멋진 문장 하나만 공유한다. "若化爲物(약화위물) 以待其所不知之化已乎(이대기소부지지화이호)"('대종사') 이 말은  그저 자연의 변화를 따라 어떤 것이든 되고 그리하여 미지의 변화를 기다릴 뿐이다. 맹손재라는 사람은 변화 과정에서 한 사물처럼 되어, 알지 못하는 다른 변화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는 거다. '알지 못하는 다른 변화를 기다린다'는 말이 내 가슴에 빗금을 그었다.

어제 만난 백영옥의 다음 글과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감정 공부>>의 저자 미리엄 그린스펀은 원인 불명의 뇌 질환으로 첫아이를 잃었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둘째 아이는 근육이 굳어가는 병을 앓게 된다. 예고 없이 무너진 삶 앞에서 그녀가 알게 된 건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난 거지?'라는 질문이 소용없다는 것이었다. 죽은 아이가 살아 돌아오는 일, 아이가 완벽히 건강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총에 맞아 피 흘리는 아이 앞에서 이 총알이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이 총을 누가 쏜 것인지 알아내는 일이 가장 중요한 걸까. 총알을 제거하고, 피 흘리는 아이를 치료하는 게 먼저다. 어떤 경우에도 과거가 아닌 현재에서부터 답을 찾아야 한다."

"현재부터 답을 찾아야 한다" 좋은 통찰이다. "불행히도 세상엔 ‘왜’가 없는 질문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은 어째서 우리에게 찾아올까?" 소설가 백영옥은 이런 질문을 하고 이렇게 답한다. "나는 고통이 과거의 방식대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사인’이라고 믿는다. 병이나 죽음이 내게 찾아온 건 더 이상 과거처럼 살 수 없다는 뜻이다. 깨진 컵 안에 물을 채우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새로운 컵을 찾는 것이다. 깨진 유리를 치우는 일은 눈물 나게 힘들겠지만, 물컵이 다 채워졌을 때 즈음, 우리는 아마 과거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찻물이 끓는 소리를 들으며 느꼈던 그린스펀의 기쁨처럼 “어떤 것도 무심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순간순간이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는 방법을 알기 전까지, 우리 누구도 결코 진심으로 웃을 수 없다." (백영옥)

진심으로 웃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웃음 뒤에는 많은 울음이 배어 있는 거다. 장자는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웃음을 즐기는 것보다는 사물과 어울리는 것이 더 나으니, 사물과 편안히 어울려 변화를 잊은 채 텅빈 하늘로 들어가도록 하라"고 권한다. 좋은 한 주가 되고 싶다. 거의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과거보다 다가올 2022년을 생각하는 연말이고 싶다. 그래 칼릴 지브란의 <흙>이라는 시를 공유한다.

흙/칼릴 지브란

지금
한 줌의 좋은 흙을 집어 올려라.

그대는 그 흙속에서 씨앗을 발견하는가,
또는 벌레를?

만일 그대의 손이 넓고 충분한 힘만 있다면,
그 씨앗의 숲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벌레는
천사들의 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씨앗을 숲으로, 벌레를 천사로 바꾸는 세월은
이 <지금>에 속해 있음을 잊지 말라.
모든 세월이 바로 이 <지금>에 속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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