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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마음 먹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왔다 갔다 한다.

302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1월 27일)

우리가 무엇을 가졌는지, 어떤 사람인지,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우리 자신의 행복과는 상관없다. 행복과 관계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어떻게 생각 하고, 마음 먹고 있느냐는 것이다.

생각은 마음 먹기에서 나온다. ‘마음먹다'란 말은 결심과 연결된다. 생각은 크게 ‘하겠다는 것'과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나뉘는데, 마음을 먹을 땐 이상하게 하겠다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 역시 ‘하는’ 것이어서 그럴지 모른다. 마음 먹고 떠나고 찾아가고 이야기하고 마침내 극복한다. 마음먹으면 어려운 일을 해낼 수도,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매일 먹지만 소화되는 양이 들쭉날쭉한 것도 마음이다. 그러나 먹은 마음이 행동으로 연결될 때 우리는 어제와는 자못 다른 사람이 된다.

명품 신발이 아님을 불만을 갖기 전에, 걸을 수 있음을 감사하라!                                                            
출근길에 투덜대기 전에, 직장이 없는 사람의 설움을 생각하라!  
반찬 투정 하기 전에 무료 급식소에, 줄 서있는 노숙자를 생각하라!    
자녀가 말 안 든다고 화내기 전에, 자신의 어릴 적을 생각하라!              

마음 먹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왔다 갔다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내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느 한 신학생이 입이 퉁퉁 부어 있었다. 교수가 왜 그렇게 됐냐고 물으니, 학생이 대답하기를 “이놈의 입이 실수해서 제가 크게 망신을 당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주먹으로 입을 쥐어 박았는데 이렇게 됐습니다” 그 말을 들은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그 입이 무슨 죄가 있냐? 쥐어 박으려면 너의 마음을 쥐어 박아 야지". 이렇듯 마음은 참으로 중요하다.  물론 세상이 마음 먹는다고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 아침에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세상은 우리가 마음으로 만든다는 것을 말하려 한다.

마음을 헬라어로 '카르디아'라고 하고, 히브리어로는 '레브'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마음', '영혼'으로 번역 한다. 즉 마음이나 영혼이나 성경에서는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마음이 뭘까?. 성경에서 마음은 세 가지를 뜻한다.  인간의 내적인 생명, 영혼의 모든 힘과 기능의 근원과 자리, 인격의 중심이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은 인생의 출발점이고 종착지이다. 모든 문제는 언제나 마음에서 비롯되고 마음에 있다. 우리는 이 마음을 잘 지키고 가꾸며 살아야 한다. <구약성경> 잠언에서는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니 마음을 지키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다.

인문학에서는 마음이 다음과 같이  크게 세가지 능력이 있다고 본다. 
- 아는 능력으로 알고, 깨닫고, 이해하는 모든 지적인 능력을 말한다. 
- 마음은 감정을 느끼며 서로 공감하며 살아가게 하고, 
- 마음 먹은 대로 행동하게 하는 의지적인 능력이다. 그래서 마음은 무엇인가를 새 길 수도 있고, 열 수도 있으며 무엇인가를 간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감추거나 위장할 수도 있다.

세상만사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불교에서 나온 말로, “어떤 일이든 마음먹기에 따라 이루어진다” 라는 뉘앙스로 들리기도 한다. “일체유심조란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은 불교의 사상으로 세상 모든 일체를 오직 마음이 만든다” 라는 뜻이다. 엄격히 말한다면 “세상은 마음 먹은 대로 된다” 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차이이다. 

일체유심조와 관련해 자주 인용하는 것이 신라의 원효대사의 이야기다. 원효는 어릴 때 황룡사로 들어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는데, 34세가 되던 661년(문무왕 1년) 8세 아래인 의상과 함께 공부를 좀 더 하기 위해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당항성에 이르러 날이 저물어 어느 무덤 앞에서 잠을 잤다. 한 밤중에 목이 너무 말라 물을 찾다가 옆에 바가지에 있는 물을 아주 맛있게 마시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간밤에 마신 물은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 원효는 너무 놀랍고 역겨운 나머지 구역질을 하였고, 그 순간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 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해골에 담긴 물은 어젯밤 달게 마실 때나 오늘 구역질 날 때나 아무것도 변한 것도 달라진 것도 없지만, ‘어제와 오늘 달라진 것은 자신의 마음’ 이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생겨나므로 모든 것이 생긴다' 라 말했다 한다.

사물 자체에는 정(淨=깨끗할 정)도 부정(不淨)도 없으며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달렸음을 알고, 원효는 그 길로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왔다.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좋은 것과 싫은 것, 선한 것과 악한 것, 등의 모든 분별은 자기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지 물질 그 자체에는 깨끗함도 더러움도 없는 것임을 깨달었다.

만약 지난밤에 마신 해골 물이 본래 그 자체가 더러운 물이었다면 그때 이미 토했을 것인데, 그것을 냉수라고 믿었기 때문에 시원하고 맛 좋은 냉수가 된 것이다. 그러나 아침에 와서는 그것을 더러운 송장에서 나온 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장이 뒤집혀 구역질을 했던 것이다. 해골 물이 더럽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더러운 것이 되고, 깨끗하다고 생각하면 깨끗한 것이 되는 것이다.

원효는 모든 것이 외부의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크게 깨달었다. 인간 만사 모든 일은 사람의 마음에 따라 바뀐다는 뜻으로, 마음에서 길흉화복, 흥망성쇠, 희로애락 등이 결정되는데, 인간의 마음이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 좋은 일과 선한 일 일수도 있고, 나쁜 일과 악한 일 일수도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세상일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해 보이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한 것이 아닐까? 내 마음이 머물러 있는 곳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삶이 편할 것이다. 어차피 오늘도 하루의 삶을 산다면 불평을 감사로, 부정을 긍정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보자. 

지금 나 자신의 모습은 나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좋은 생각, 바른 행동, 매사 발전적인 생각으로 나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보자.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따라 이 세상이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이 세상에 근심 없는 사람이 있을까? 많건 적건 간에 우리는 늘 근심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인 데도 낙천적인 사람과 비관적인 사람이 있다. 낙천지명(樂天知命) 이라는 말처럼 하늘(天)을 즐기고, 명(命)을 알면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

내가 좋아하는 중국의 고대 시인 박거이의 자가 낙천이다. 이는 <<주역>>의 "계사편"에 나오는 "낙천지명고불우(樂天知命故不憂, 천명을 즐기고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다)"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는 낙천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로 생활했기 때문에 중앙정치 무대의 격심한 당쟁에 휘말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의 거이도 마음에 든다. 그 이름은 『중용』14장에 나오는 "군자거이사명(君子居易俟命, 군자는 평범한 자리에 살면서 천명을 기다린다)"라는 말의 거이(居易)를 따온 것이라 한다. '거이'는 거할 거(居)+평범할 이(易)'가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까 '평범한 곳에 거한다'는 뜻이다. 시인은 아마도 평범한 일상을 지향하면서, 다가오는 운명이 어떤 것이든 그에 맞는 가장 최적의 인생 방법을 찾아낸 고수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처럼, '낙천'하며, '거이'하게 살고 싶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김동명 시인은 마음을 호수로 비유했다. 평소 잔잔하게 맑아 보이는 호수도 돌풍이 불면 물결친다. 호수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찌꺼기들이 호수를 흐트러트린다. 사람의 마음은 호수 와도 같다. 별 걱정 없이 평온 하다 가도 막상 누 군가로부터 욕을 듣거나 비난의 소리라도 듣게 되면 마음은 곧장 흔들린다. 호수를 흐리는 찌꺼기들처럼 마음에서 별별 생각들이 다 일어난다. 

감정은 마음을 오염시키고 아프게 한다. 이것이 일종의 마음의 독소이다. 마음의 면역력을 키우려면 마음의 호수바닥을 청소할 필요가 있다. 외부에서 아무리 강한바람이 분다 한들 청정한 마음은 여여(如如=같을 여)하지 않겠는가? 불교에서 마음의 독소로 세 가지를 꼽는다. 
▪ 탐욕(貪=탐낼 탐), 
▪ 분노(嗔=성낼 진), 
▪ 어리석음(痴=어리석을 치) 에서 온갖 걱정과 근심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삼독(三毒)이다. 
쉽게 말하면,
▪ 좋다고 여기는 것을 더욱 원하는 마음, 
▪ 싫은 것에 화나는 마음, 
▪ 좋고 싫음에 가려 대상을 그대로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마음의 독이다.

탐욕은 마치 거센 불길과도 같다. 식욕, 수면 욕, 성욕과 같이 본능적인 욕구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취욕들을 잘못 다스렸 다간 자칫 마음을 잿더미로 만들지도 모른다. 분노는 칼과 같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끊어내고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다. 어리석음은 어둠이다. 대상을 자기 식대로 판단하는 오류는 삶을 어둠의 나락에 빠지게 한다. 독은 어떻게 생기는가? 흐르지 않고 정체될 때 생긴다. 고인물이 썩는 것처럼, 몸도, 마음도, 인간 사회도, 머물렀을 때가 문제다. 건강은 순환과 소통에서 유지된다.

몸도 마음도 독소에 의해 면역력이 떨어진다. 마음의 독소는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생각이다. 특히 전체를 보지 못하고 한정된 정보에만 의지하면 마음에 독이 커진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 생각이 최선이라고 착각한다. 이는 소통의 부재를 낳는다. 여기서 소통은 내, 외면이 모두 포함된다. 내면의 소통은 자신을 아는 것이고, 외부와의 소통은 사회적 교감 능력을 말한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마음의 해독제로 희망을 꼽는다. 희망은 암처럼 자라나는 절망에 대한 해독제라고 했다. 몇 년 전 교황은 터키 이슬람 사원을 방문해 이슬람 지도자와 합동 예배를 올림으로써 종교 간 화합을 위한 큰 발걸음을 내 디딘 바 있다. 천 년 동안의 반목에서 화합으로 나아가는 희망의 빛을 우리에게 주었다. 삶을 단순화 하면 마음도 단순화 된다. 여기 에다 긍정과 희망, 감사와 용서라는 양식을 섭취하면 마음에 새로운 길이 나기 시작한다. 사실 자신의 마음은 자기 자신이 길들이기 나름이다. 긍정과 희망적인 생각의 반복은 마음의 길을 새로 닦는 작업이다. 긍정의 고속도로가 깔리면 삶의 패턴이 긍정적으로 변화된다. 이렇게 모든 세상사의 일과, 행복과 불행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마음 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어제 대구 10회 강의를 마치고, 대전에 도착하니 첫눈이 내렸다. 그래 이재무 시인의 <첫눈>을 공유한다.

첫눈/이재무

첫눈은 우리가 잠 든 사이에 왔으면 좋겠어 
도둑 떼처럼 남몰래 쳐들어와서 세상이 만든 
지도를 지웠으면 좋겠어 
늦은 아침 오줌이 마려워 문을 열었다가 
빛을 반사하는 흰빛에 깜짝 놀라 
잠시 눈이 멀었으면 좋겠어 
가지마다 열린 눈꽃 음표를 읽으며 
콧노래를 부르면 좋겠어 
이웃에게 정답게 인사를 건네고 
이민 간 옛 친구에게 
야, 네 살던 마을에 첫눈이 왔어야! 
문자를 남겼으면 좋겠어 
하늘이 내려준 하얀 도화지에 
괴발개발 낙서를 남기며 
늑장 부리다 지각하여 상사에게 
꾸지람을 듣고 
퇴근길 주머니가 허전한 실직을 불러내 
따뜻한 술을 마셨으면 좋겠어 
첫눈은 눈꽃 화음에 귀가 젖어 곤한 
잠자는 사이에 내렸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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