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11월 26일)
오늘은 내 생일이다. 그래 어젯밤에 지인들과 파티를 했다. 오늘 아침은 생일 기념으로 따뜻한 이야기 하나를 공유한다.
70회 생일을 맞이한 노인이 갑작스런 치통으로 치과를 찾았습니다. 급히 차를 몰아 갓길에 주차하고 치료를 받고 나오니, 교통순경이 딱지를 떼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경찰에게 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오늘이 70회 생일인데 아침부터 이빨이 아파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요. 평생 法을 어긴 적이 없는데, 생일날 딱지까지 떼게 생겼네요. 한 번만 봐줘요. 안 그러면 오늘은 정말 가장 재수 없는 생일날이 될 거에요."
두 사람의 대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들어, 경찰이 법(法)과 인정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지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한 번만 봐 달라고 동정하는 노인의 하소연에도 경관은 표정 변화도 없이 고지서를 기록한 후 무심하게 건네 주고는 돌아섰습니다. 둘러선 사람들이 중얼거렸습니다. "역시 법이야! 경관에게는 법이 우선이겠지. 그래야 세상이 굴러가는 거야!"
노인도 포기하고는 고지서를 받아 들고 車에 올랐습니다. "법은 법이지, 그래도 너무하네, 젊은 사람이 냉정한 표정하고는!" 차에 올라탄 노인이 벌금이 얼마인지를 확인하려고 고지서를 펼쳐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너털웃음을 지었습니다. 고지서에는 벌금 대신, "생신을 축하합니다. 어르신!"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노인이 멀리 걸어가는 경관을 바라보자, 경관이 노인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경관은 사실 노인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둘러선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린 판단은 노인과 구경꾼 둘 다를 만족시키는 二重 플레이를 생각해냈습니다. 고지서를 끊기는 하되, 벌금 액수 대신 축하 편지를 건네 주는 것이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대립 상태의 중간에 서게 됩니다. 양쪽을 만족시킬 수 없는 진퇴양난의 길에 설 때도 있습니다. 그 때 필요한 것이 '경관의 고지서' 입니다. 엄한 표정을 짓고 고지서를 발행하지만, 내용은 따뜻한 축하 편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매년 생일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다짐한다. "사람은 마지막까지 유쾌하게 살아야 한다. 사소한 기쁨과 웃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즐거움은 마음만 먹으면 주변에서 언제든지 찾을 수 있다."(이근후) "인생의 비극 앞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절망할지 언정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이근후) 그래 나는 아침마다 <인문 일지>를 쓴다 그 이유는 이 시대에 대해, 내가 훈련 받은 '생각하는 능력'으로 갖게 된 어떤 '시각'으로 내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내 글이, 사람들이 나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더 나은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는 플랫폼이 되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이 플랫폼을 통해 내가 이 세상에 다녀갔기 때문에 모두가 더 행복해지고, 더 건강해지고 더 깨끗해 졌으면 한다. 이 플랫폼이 있었기 때문에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과감하게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많았으면 한다. 우리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흔적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기는 좋은 기억들이었으면 한다. 내가 죽은 후에 누군가 나로 인해 사는 게 조금은 행복해졌다고 말해 준다면 그보다 값진 삶이 또 있겠는가? 생일에 했던 다짐이다.
나는 다섯 가지의 "유'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걸 지향한다. (1) 자유(自由) (2) 사유(思惟) (3) 여유(餘裕) (4) 온유(溫柔) 마지막 다섯 번째가 YOU(당신)이다. 인간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왔던 흙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 사실과 진리를 깨달은 인간은, 한정된 시간에 자신의 최선을 발휘되는 전략을 짠다. 유한함에 대한 아쉬움이 인문-과학-예술이다. 인간은 자신이 아닌 타자들, 타인과 자연과 함께 살기 위해 ‘문화(文化)’를 구축하였고, 그 문화를 가시적인 성과로 표현한 것이 ‘문명(文明)’이기 때문에 마지막 YOU가 중요하다.
그래 생일 즈음에는 오탁번 시인의 시를 매번 공유한다. 내가 나에게 부르는 노래이다. 반칠환 시인의 덧붙임도 아름답다. "‘왔데이’ ‘뭔데이’ ‘버스데이!’ 토착 몽골로이드 경상도 할매와 서방 코카소이드 아재가 만나 서로 딴소리 하는데 장단이 맞는다. 불통이 소통이 되는 기적이 연출된다. 경상도 사투리의 어미 ‘-데이’와 앵글로색슨어계의 명사 ‘데이’가 의미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음가적 상동의 세계에서 만나 서로 다른 버스데이를 노래하며 행복한 코스모폴리탄의 세계로 떠나간다. 웃음이 배어 나오는 동화적 설정이다. 하지만 저 불통의 아전인수가 유쾌한 것은 둘 다 승객이기 때문이다. 만약 운전기사마저 승객들의 목적지를 자의적으로 판단해 데려간다면 저 여정의 끝은 노랫말처럼 해피하지 않을 것이다."
해피 버스데이/오탁번
시골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와 서양 아저씨가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제멋대로인 버스가
한참 후에 왔다
- 왔데이!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말을 영어인 줄 알고
눈이 파란 아저씨가
오늘은 월요일이라고 대꾸했다
- 뭔데이!
버스를 보고 뭐냐고 묻는 줄 알고
할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
- 버스데이
오늘이 할머니 생일이라고 생각한
서양 아저씨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해피 버스데이 투 유!
할머니와 아저씨를 태운
행복한 버스가
힘차게 떠났다
오늘 아침 사진은 동네에서 함께 노는 지인이 가져온 바스크식 생일 케익이다. 직접 만든 거라 한다. 넓은 의미의 '바스크 지역'은 스페인령의 남부 바스크 지방과 프랑스령의 북부 바스크 지방에 걸쳐져 있는 일곱 지역을 통틀어 가리킨다. 이들 바스크 민족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민족 중 하나로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등 게르만이나 라틴족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문화를 유지해 왔다. 특수부대에서 쓰는 베레모의 유래가 이들의 전통 모자인데, 유럽에서 강한 불굴의 전투 민족으로 유명하다. 많은 전쟁을 거치며 바스크족을 건드리는 군대는 이기든 지든 결과적으로 큰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바스크 지방은 원래 나바라 왕국의 영토였지만 1512년 스페인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다만 통일 스페인이라는 국가는 기본적으로 연합체였기 때문에 지방 분권성이 강했고 다른 지방들이 그러하듯 바스크 지방 또한 폭넓은 자치를 누렸다. 특히 스페인의 군주들은 카탈루냐 지방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에 바스크 지방의 지원을 받았고 그 대가로 바스크 지방에는 더 많은 자유가 허락되었다. 어쨌든 바스크는 경계에 있는 지역이다.
보통 경계에 서 있으면 불안하다. 반면, 어떤 한 진영에 있으면 우리는 편안하다. 그 불안이 우리를 고도로 예민하게 유지해 주고, 그 예민성이 경계가 연속되는 흐름을 감지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감지 능력을 우리는 '통찰(insight)'이라고 부른다. 통찰력이란 "탁! 하면 아는 것"인데, 세계의 흐름을 단순히 이성적인 계산 능력으로만이 아니라, 감성이나 경험, 욕망이나 희망 등의 모든 인격적 동인들을 일순간에 발동시키는 능력이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오는 고도의 불안을 감당하며 키워 낸 예민함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경계에서 떠나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순간, 그 세계를 전부로 착각하고, 우리는 그 프레임에 갇혀 굳어버린다. 이 세계를 참과 거짓, 선과 악으로만 본다. 자신의 관점에서 맞는 것만 참이고 선이다. 그 나머지는 모두 거짓이고 악이다. 이 관점이 바로 이념이고 신념이고 가치관이다. 세계는 변한다. 한 순간도 멈추거나 고정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이 변화의 진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변화는 흐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흐름은 경계가 지속적으로 중첩되는 과정으로, 흐르는 것은 부드럽다. 변하는 것은 유연하다. 그리고 살아 있는 것은 부드럽고, 죽어 있는 것은 뻣뻣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변화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며, 변화가 멈추고 화석 화되어 있는 일이 죽는 일이다.
세계가 변화라면, 경계의 중첩이라면, 그 흐름을 그 흐름 그대로 마주하여야 한다. 왜? 그래야 그 변화에 제대로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생명이다. 생명은 경계의 중첩이 흐르고 또 흐르는 과정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생명체에 불사의 능력을 주는 스틱스 강은 우리에게 말한다. "경계에 서라! 그래야 흐를 수 있다! 그래야 산 자이다! 그래야 강하다!" 어제 생일 파티를 하고, 집으로 오면서 다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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