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1월 25일)
어제에 이어 오늘도, 도에 이르는 9 계단인 '도가구계(道家九階)' 중 마지막 아홉 번째인 의시(疑始) 이야기를 한다. 어제 살펴 본 그윽한 경지(⑦현명, 玄冥), 조용하고 텅 빈 경지(⑧삼료, 參廖)를 체험한 다음 시원(始原)의 도(⑨의시, 疑始)와 하나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거다. '의시'는 시작을 알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뜻한다. 도(道)는 스스로를 근본으로 삼기(자본자근, 自本自根) 때문에 그 시작을 추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장자에 의하면, 도(道)는 만물의 근원으로 어디에나 있다. 그러면서 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道)는 정(情)과 신(信)은 있지만 작용이나 형체는 없는지라, 전해 줄 수(전, 傳)는 있지만 받을 수(수, 受)는 없으며, 터득할 수는 있지만 볼 수는 없으니, 스스로를 근본으로 삼아 아직 천지가 있기 이전에 예로부터 이미 엄연히 존재하여 온 것이다. 귀신과 상제(上帝)를 신령하게 하며, 천지를 생성하며, 태극(太極)보다 앞서서 존재하면서도 높은 체하지 않으며, 육극(六極)의 아래에 머물면서도 깊은 체하지 않으며, 천지보다 앞서 존재하면서도 오래된 체하지 않으며, 상고(上古)보다 오래되었으면서도 늙은 체하지 않는다." (<대종사> 16장)
여기서 정(情)과 신(信)은 같은 뜻으로 모두 도(道)가 진실한 존재임을 나타낸 표현이다. 無爲無形(무위무형)은 작용이나 형체가 없다는 뜻으로 道의 모습을 감각으로 포착할 수 없음을 형용한 것이다. 道(도)는 깨우침을 통해 알 수는 있지만 물건을 주고 받는 것처럼 지식으로 전달받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마음으로' 전해 줄 수는 있지만 '손으로 주고' 받을 수는 없다는 거다. 도는 터득할 수는 있지만 볼 수는 없다. 곧 마음으로 터득할 수는 있지만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도를 터득한 사람이 말로 전하기는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은 그것을 정말 알아들을 수 없다. 영어로 도는 'taught' 될 수 없고, 오직 'caught' 될 수밖에 없다. 이심전심(以心傳心), 곧 문자나 말을 떠나 오로지 마음으로만 전해질 수밖에 없다. 도는 체험의 영역이지 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터득할' 것이지 '떠들'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스스로를 근본으로 삼는다는 自本自根(자본자근)은 도(道)의 무한성과 무의존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모든 것이 그것에 의지해 있지만 그것은 아무 것에도 의지하고 있지 않다는 거다. 도가 모든 존재의 근원이고, 모든 존재가 지니고 있는 지금 '그러함'의 바탕이라는 거다. 그리고 도(道)에 앞서는 어떤 사물도 없다는 뜻은 모두 도(道)의 무한성(無限性)과 초월성(超越性)을 표현한 것이다. 어렵다. 그래서 도는 시작을 알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 '의시'이다. '의시'는 늘 처음처럼 사는 사람이다. 처음과 끝이 하나인 거다.
'의시' 이야기를 하다가, 신영복 선생님의 서화가 떠올랐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살다 보면 숱한 난관과 부딪히고 그때마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내라는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는 성찰이며, 날마다 갱신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뜻 같다.
오늘 아침 시는 문태준 시인이 소개한 거다. 이 시의 풍경은 매우 고요하다. 마당에 환하게 밝은 햇볕이 내리고 있다. 그리고 종이를 떠서 널어 말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햇살은 내리고, 그 햇살에 종이를 널어 말리고 있는 이 집의 마당은 마치 오래된 책의 낱장과 낱장 사이처럼 조용하고 잠잠하다. 속껍질처럼 희고 깨끗하다. 한 자락의 바람만이 은은하게 불어와서 백지 위에 어떤 구절을 써놓고 가는 것만 같다. 감나무의 그림자마저도 비켜서는 이토록 명명(明明)한 공간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다. 청천백일(靑天白日)이라고 했으니 하늘이 맑게 갠 대낮을 요즘은 더러 볼 수 있다. 가을이 짧은 게 아쉽지만, 가쁜 숨을 좀 내려놓고 말없이 가만하게 앉아 소란하지 않은 것을 바라보기도 할 일이다. 호수를 바라보면 우리의 마음도 수면이 참으로 잔잔한 호수가 잠시 동안이라도 될 수 있기에.
물이 마르는 동안/길상호
햇볕을 한 장
한지를 한 장
겹겹으로 널어둔 그 집 마당은
고서(古書)의 책갈피처럼 고요했네
바람만이 집중해서
뜻 모를 글귀를 적어가고 있었네
종이가 마르는 동안
할머니의 눈꺼풀이 얇아지는 동안
마당 한쪽의 감나무는
그림자를 살짝 비켜주었네
작년 오늘 아침에 공유했던 글을 다시 소환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들 중 하나이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30-50 클럽'에 들어 갔다.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 권에 드는 나라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이상, 인구가 5천명만 명 이상인 나라를 이렇게 부른다. 지구상에서 불과 일곱 나라만 이 그룹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2019년에 이 그룹에 7번 째로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지금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속에서 정치 민주화는 이루었는데, 사회, 경제 그리고 문화 민주화의 몸살을 앓고 있다.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라는 말이 흥미롭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정치 민주주의만 이야기 하면 안 된다. 사회 민주주의, 경제 민주주의 그리고 문화 민주주의로 나누어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1) 사회 민주주의는 사회 각 영역에서 개별 조직내의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까지 자치적인 운영을 하고, 자율적인 결정을 하느냐 하는 정도를 뜻한다.
(2) 경제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경제 기구, 특히 기업 안에서 과연 어느 정도 민주적인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가를 뜻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주화가 안 된 곳이 기업이다. 한국에서는 노조 조직률이 10% 밖에 안 된다. 한국의 많은 기업에서 소유자가 그야말로 전제 군주처럼 행동한다.
(3) 문화라는 건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들의 총합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 민주주의는 바로 이 관계들의 민주적 변화를 뜻한다. 남성과 여성,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이런 관계들이 수평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한 사회가 단지 민주주의적 형태의 정부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강하고 위대하다고 가정할 순 없다."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게 하려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긍정적인 힘이 돼야 하며, 민주주의가 모든 개인의 안녕을 진정 소중하게 여긴다고 느끼도록 해야 한다." 이게 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8 11월에 대국민 라디오 연설에서 했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사회의 중추인 중산층이 무너지고 보통 사람의 삶이 갈수록 피폐해져 가지만, 금융자본가와 권력가 등 상위 극소수 기득권층이 부의 90%를 차지하고 낙수효과조차 사라졌다. 그러면 점점 '관용 없는 사회'가 되어 간다. 그러나 "2016년 촛불혁명 이후, 곳곳에 잠복했던 특권 세력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김민웅)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현 정부를 세우면서 미래를 기대했다. 그런데 실제로 부딪혀 보니까 우리는 정부의 권력을 바꿨을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발견하고 확인하는 굉장히 중요한 시간을 보냈다고 본다. 특히 검찰 권력이 군림하고 있었음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그리고 언론이 허가 받지 않은 법정이 돼서 무고한 사람들을 그 법정에 끌고 가서 자기들 마음대로 거의 사회적 처형을 했다.
잘 알아 두어야 할 일이 있다. 생각보다 우리가 세운 민주개혁진보 정부가 취약했다. 왜? 우리를 둘러싼 적폐 세력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견고하고 교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물적토대가 엄청났다. 지금도 그렇다. 이젠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시민이 개혁의 동력을 부여하지 않으면 정치권도 기득권의 포로가 돼서 시민이 요구했던 개혁 정치를 하는데 난감한 상태에 빠지거나 한계에 봉착한다. 그래서 이번 대선이 매우 중요하다. 더 강력한 개혁 정부가 세워지게 된다면, 지난 5년 동안에 배웠던 경험과 그리고 성찰을 통해 지혜로운 전략이 결합되어 부패한 특권 동맹 카르텔 세력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을 거다. 우리 사회 전체의 정의로운 대전환을 이룰 기회이다.
우리 사회는 검찰과 함께 엄청난 토건 자본이 결합한 부패세력이 기생하고 있다. 이들은 수많은 민중의 삶 속에서 피 빨아먹는 흡혈귀 같은 기생 세력들이다. 이들을 척결하지 않으면 민초의 생활, 즉 민생은 불가능하다. 특권 세력들은 엄청난 부를 잔뜩 독점해 놓고, 나머지 작은 것을 가지고 공정하게 나누어 보라고 경쟁을 시킨다. 약자가 약자를 잡아먹게 하는 '오징어 게임'을 하게 하는 거다. 이 판을 뒤엎어야 한다. 민중들이 가져야 할 권리를 회복시키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이다. 이게 우리 사회의 측면에서 도(道)에 이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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