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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시는 인간의 모든 감정을 가장 짧고도 긴 울림으로 전달한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11월 24일)

오늘부터 나의 <인문 일지>를 다시 공유한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리듬을 잃었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월이 화살처럼 흘렀다. 다시 리듬을 회복하고 나의 <인문일지>를 공유한다. 바람은, 이 글과 시를 통해, 우리 모두 자신들의 어휘가 풍부해지고 언어를 통한 추론과 논리 능력이 성장하면서 인문 정신을 기르는 시작이 되는 거다. 이게 인문 운동가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특히 시를 큰 소리로 낭독하면, 목소리도 안 늙고, 정서의 폭과 깊이가 생길 것이다. 언젠가 공유했던 글을 다시 정리해 본다. 시를 읽으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가 좋다.
(1) 시를 읽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특히 내 영혼의 떨림을. 나는 이런 단어에 끌리는 구나, 이런 소재에 반응하는구나, 이런 문장에 마음을 내어주는 구나, 몸의 반응을 느낀다.
(2) 시를 읽으면, 내가 시적화자가 되어,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배양되기도 한다. 어떤 시는 잘 모르는데, 시를 읽는 순간 내 몸을 파고 든다. '파고든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시적 상황에 깊이 스며든다는 것이다.
(3) 시를 읽으면, 일상의 새로운 면, 일상에서 자기가 쓰고 있는 언어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시를 읽으면, 질문을 발견할 수 있다. 인문정신의 핵심은 질문하기이다. 질문 그거 싶지 않다.
(4) 시를 읽으면, 나의 발견, 타인의 발견, 일상과 언어의 발견 그리고 다르게 보기의 발견이 된다. 그 발견은 단숨에 사그라지지 않고, 질문으로 이어진다.

오늘 아침은 이설야 시인이 소개하는 시를 우선 읽는다. "시인은 어머니를 ‘태인 씨’라 부른다. ‘어머니’ 안에 갇혀 있던 한 사람의 오롯한 이름을 찾아준다. 태인 씨는 아프다. 아픈 몸이 부자연스럽게 춤을 추다가 수돗물을 잠그지 못한다. 시인이 걱정하는 것은 줄줄 새는 수돗물이 아니라 ‘태인 씨 마음’이다. ‘85년 된 마음’이 콸콸 쏟아지지 않게 시간을 붙잡고 있는 시인의 심장 소리를 따라가 본다."(이설야 시인) 시란 이런 거다.

수돗물 좀 꼭꼭 잠가 주세요
-힘내요 태인 씨/문계봉

30년생 태인 씨, 다음부터 수돗물은 꼭꼭 잠가 주세요. 태인 씨가 수돗물을 잠그지 못할 때마다 나는 정말 많이 속이 상해요 물이 아니라 태인 씨 마음, 태인 씨 몫의 시간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웅덩이 속으로 자꾸만 안타깝게 끄르륵 끄르륵 빨려 들어가는 것 같기 때문이지요. 그까짓 물값이야 뭔 대수겠어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수돗물은 꼭꼭 잠그셔서 자꾸만 춤을 추는 태인 씨 마음, 태인 씨 몫의 시간 좀 꼭꼭 붙잡아 주실 수는 없는 건가요. 화장실 다녀간 우리 태인 씨, 또 마음을 안 잠그셨네. 태인 씨 센 머리칼처럼 하얀 전등불 밑으로 85년 된 마음이 콸콸.

시를 읽는다는 것은 다음과 같이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진다. "‘아프다’의 주어로 자주 등장하는 ‘마음’은 세상의 온갖 것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귀, 눈, 벼랑, 계단, 빛, 온도, 눈물 등을 질질 끌고 다니다가 접다, 상하다, 끌다, 지우다, 썩이다 등을 만나면 송곳처럼 찌르는 말이 되어 가슴 밑바닥을 박박 긁는다. 진흙처럼 눅진하게 응어리진 그 말들을 어서 꺼내지 못한다면 병에 걸린 채 우리는 습지에 갇혀버릴지도 모른다. 셀 수 없이 많은 마음이 있다. 매일매일 무너지는 마음, 지붕이 새는 마음, 거울과 유리처럼 쨍그랑 깨지는 마음, 있다 가도 없는, 없다 가도 있는 마음이 있다. 사십 오억 년도 더 넘은 마음들이 있다. 그 차고 넘치는 마음의 총합이 오늘도 어딘가로 맹렬하게 지구를 굴리며 가고 있다." 이설야 시인의 시에 대한 평이다.

시는 인간의 모든 감정을 가장 짧고도 긴 울림으로 전달한다. 그래서 시를 매개로 하면 창의적인 산물이 나오고, 시를 상실하면 세상을 다 잃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대립과 폭력의 불협화음이 난무하는 시대다. 국경을 위협하는 전쟁과 이념 대립도 심화되고 있다. 이런 단절의 시대에 부드러운 시의 감성과 교감으로 ‘경계’의 안팎을 보듬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치유와 화합의 명약이 곧 시다. 고두현 시인의 주장이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의 <인문 일지>를 다 읽을 시간에 없다면, 시라도 소리 내어 읽길 바란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xn--com-568n/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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