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2.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1월 24일)
세상은 시끄러운데, 나는 조용하다. 내가 원래 원하던 삶이었다.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러려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이로부터 필요한 것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적게 가지며 욕심을 양심으로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가난 하라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게 살자는 것뿐이다. 적게 가졌다고 가난한 사람이 아니다. 끊임없이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삶은 자유로운 삶이다. 그러려면 타인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에 근육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많이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일은 자동차가 제자리에서 공회전을 하듯이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면서 기름만 태우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느라 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은 자유로운 이가 아니다. 물론 인간의 본성으로 타인으로부터의 인정과 사랑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일상을 방해 받을 정도로 지나치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따뜻한 사람이 되어,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친절하자는 것이 우선이다. 나를 좋아하고 싫어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그 사람의 자유이다. 적어도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어도, 모든 사람에게는 친절할 수 있다. 허름한 옷에, 번뜻한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자신이 한 따뜻한 한 마디를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하게 하는 사람도 있고, 멋진 차에 좋은 옷을 입고, 돈이 많거나 좋은 직장을 가졌거나 훌륭한 일을 한다고 해도, 다른 이의 단점만을 들추어내며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다. '너는 너의 노래를 불러라! 나는 나의 노래를 부르리라!'
▪ 내가 처한 환경에서 성실하고 부지런함으로, 그만큼 활기차고 건실하게 산다. 다른 이에게 의존하지 말고, 내 수고로 살아간다.
▪ 네 처지에서 욕심이나 허세 부리지 않고 자유롭고 차분하게 살아가며 행복하게 질 지낸다.
▪ 초조해 하거나 조급할 필요 없다. 바라는 것을 줄이면 된다. 그러면 두려울 게 없다. 자유로워야 한다. 조르바처럼, 어느 것에도 예속되지 않는다. 조르바는 고용되어 있지만 자본주와 동등하다. 대신 받은 대우 이상으로 임무를 완수한다. 그리고 현실적인 삶에 충실했다. 과거와 미래는 그에게 없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싶은 것을 한다. 그리고 모든 자연의 변화와 삶에 경외감을 느낀다. 바라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과거와 미래로부터 비롯된다. 이런 것들이 없으면 두려워할 거리가 없다. 그냥 현세적, 현실적 삶을 살아가면 그만이다. 그래야 자유롭다.
물론 '나의 노래를 부르면서', 나는 계속 '사람 됨'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동물의 때를 벗은, '사람 됨'의 평가는 다음과 같이 3개의 차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 1단계
일차원 적으로 자신의 입장(세계관, 추구하는 가치관)의 위치로 단지 좌와 우로 점을 찍는다.
좌파(진보)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은 사회적 평등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일반적으로 경제적 평등을 위한 정부의 개입과 사회의 진보를 주장한다. 우파(보수)는 기존의 사회 질서를 옹호하며 경제적 자유와 사회 질서 유지를 주장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현재 우리 사회에는 진정한 보수가 없다. 일종을 '수구파'일 뿐이다. 보수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동체이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한다. 반대로 개인을 공동체보다 더 중시하는 쪽이 자유주의이다. 보수가 공동체를 중시하기 때문에 바로 가장 근원적인 공동체로서 민족을 중요시 하는 것이다. 그래 보수주의자는 대부분 민족주의자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보수라는 자들은 민족을 경시하고 외세에 붙어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무리들일 뿐이다.
▪ 2단계
이차원의 문제로 인성(인간성)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건 고(결)/저(열)로 나뉜다. 고매한 인품 아니면, 저열한 인품으로 나뉜다. 그 기준은 타인과의 나눔, 베품 그리고 보살핌의 정도이다. 고/하로는 안 나눈다. 그건 지위나 신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성은 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나날이 노력하고 자신과 싸워서 얻어야 하는 덕목이다. 동물적, 이기적 인간[己]이 뜻을 정성스레하고 자신을 다듬는 과정[修己]을 통해 저열한 욕망을 이기고[克己] 함께 사는 법[禮]을 아는 인간으로 거듭날 때 비로소 ‘인간 답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품성은 늘 신의 뜻을 물어 자신을 바로잡고, 그 뜻에 거스르는 바를 무찌르는 사람한테만 존재한다. 성인(聖人)은 인간이 이루어야 할 궁극의 인간형이자 이상적 인격이다. 성(聖)은 축문을 읊으면서[口] 발꿈치를 높이 들고[壬] 신의 목소리를 듣는[耳] 일이다.
성인은 사람 다움[仁]을 완전히 체득해서 무엇을 하든지 신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이루려 할 때 남을 이루게 한다. 자신이 서려고 남을 주저앉히는 일에는 인간이 없다." (장은수)
<<미가서>>가 도움이 된다. 여기서 선행이 무엇인 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정의를 행하고, 자비를 추구하며, 겸손하게 내가 만난 신이 요구한대로 생활하는 것이다."(<미가서> 6:8) 이를 요약하면, 정의 실천, 미쉬파트), 자비(헤세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사랑) 추구(아하보쏘,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는 삶을 갈구해야 한다) 그리고 겸손(자신이 믿는 신에 대한 경외 하기) 생활이다.
▪ 3단계
삼차원의 문제로 교양의 수준, 심/천으로 나뉜다. 교양이 높고, 넓고, 깊은 사람을 우리는 심오하다고 한다. 그 반대가 천박한 교양 수준이다. 여기서 인격(성품), 품격(품위)이 나온다. 신사의 조건은 자기 통제력, 정직성, 공정성, 원칙 준수, 유연성, 균형성 등이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다.
우리 사회는 '가진 자'가 되기 위한 책은 수없이 쏟아지고 있는데, 그만큼 약자를 배려하고 많은 사람이 사람 답게 사는 사회를 위한 이론적 토대를 주는 교양서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런 교양과 좋은 취향(bon goût, 프랑스어 봉구)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다. 관심과 경험으로 사는 거다. 돈보다 노력이 훨씬 중요하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우리는 '문화 자본'이라고 한다.
천박한 사람은 가격에만 관심이 있고, 가치라는 말을 모르는 자이다. 전외교통상부 장관이었던 윤영관의 말을 공유하고 싶다. “한 번 밖에 없는 아까운 인생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지 꼭 고민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 명예 권력 쾌락 승진 등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의 노예로 살다 보면 몹쓸 짓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웃들의 삶이 풍요롭게 되도록 하는 게 가치 있는 인생입니다.”
올해도 가을이 저물기 전에 꼭 공유하고 싶은 시가 하나 있다. 이재무 시인의 <감나무>이다. 시인은 붉은 감들이 떠난 이가 그리워 그렁그렁 붉은 눈물을 매달고, 바람의 안부에다 귀 기울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것 같다. 인간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정서는 '그리움'이다. 글과 그림, 그리움의 어원은 같다. 종이에 문자로 쓰면 글이고, 이미지로 그리면 그림이 되고, 마음에 기다림이 쌓이면 그리움이 된다. 고마움도 그리움의 방법론이다. 고마운 기억이 있어야 그리움도 생긴다. 그런 그리움의 다른 말이 기다림이다. 시인은 깊은 그리움과 오랜 기다림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시인의 마음으로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보통의 우리는 보이지 않는데, 시인의 눈에는 그리움이 보인다. 그리움은 어떤 생각이나 이미지를 마음 속에 긁는 것이기도 하다. 그 그리움이 현실이 될 때가 '설렘'이 된다. 설렘이 많아야 그만큼 더 행복하다. 행복은 작은 것에 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한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행복하다. 행복은 평범한 일상 속에 순간이라는 이름으로 숨어 있다. 나는 매일 그걸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감나무/이재무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 놓은
붉은 눈물
바람 곁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놓고
주인은 삼십 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 오 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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