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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간의 삶을 모두 효율과 속도로만 판단할 수 있을까?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공지능으로 인간이 쓸모 없다고 말하는 것은 경제 문법이다. 예컨대 목적지로 더 빨리 데려다 주는 인공지능이 나타난다면 택시운전사는 쓸모 없다. 그런데, 인간의 삶을 모두 효율과 속도로만 판단할 수 있을까? 새로운 경제적인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인간은 더 적게 일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지 정신적인 측면을 면밀히 고려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삶의 문법을 찾아야 한다.

많은 것을 소유하는 행복은 일시적이다. 무엇을 가져서 맛보거나 주변환경을 바꿔서 행복해지려는 것은 일시적이다. 자기 마음 속을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찾아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는 행복해질 수 없다. 진화 심리학자 스티븐 핑거는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 ‘진정한 자아(true self)’가 없다고 말한다. 다만 한 묶음의 수많은 다른 자아들이 있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자아들이 서로 다른 모습을 서로 다른 상대에게 드러낸다. 자아도 일종의 시스템이다.

그래 지난 여름에는 풀에 졌지만, 내년에 또 주말농장을 가꿀 예정이다. 오늘 아침도 문태준 시인의 서정성에 놀란다. 게으른 농사꾼은 다 안다.

극빈/문태준
    
열무를 심어 놓고 게을러
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치고
가까스로 꽃을 얻었다 공중에
흰 열무 꽃이 파다하다
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
사람들은 묻고 나는 망설이는데
그 문답 끝에 나비 하나가
나비가 데려온 또 하나의 나비가
흰 열무 꽃잎 같은 나비 떼가
흰 열무 꽃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가녀린 발을 딛고
3초씩 5초씩 짧게 짧게 혹은
그네들에겐 보다 느슨한 시간 동안
날개를 접고 바람을 잠재우고
편편하게 앉아 있는 것이었다
설핏설핏 선잠이 드는 것만 같았다
발 딛고 쉬라고 내줄 곳이
선잠 들라고 내준 무릎이
살아오는 동안 나에겐 없었다
내 열무 밭은 꽃밭이지만
나는 비로소 나비에게 꽃마저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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