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1월 22일)
오늘 아침도 서울대 한소원(서울대 심리학) 교수의 <<나이를 이기는 심리학>>이라는 책을 읽으며, '어른'이 되는 길을 찾아 보고 있다. 살다 보면 자연스레 나이를 먹게 되어 도달하는 생물학적 어른이 아니라 ‘어른다운 어른’의 길을 그리려 한다. 공자는 “나이 서른에는 스스로 섰고 마흔엔 미혹되지 않았으며 쉰에는 천명을 알았다. 예순에는 들음의 평정을 얻었고 일흔에는 마음 가는 대로 행해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했다. 그 언급 외에도, 공자는 “나이 마흔, 쉰이 되어서도 그 이름이 칭해지지 않는” 어른은 두려워할 만하지 못하다고 잘라 말했고, “장성해서는 남들에게서 일컬어지는 게 없고 늙어서는 죽지 않고 있으니 이는 도적일 뿐”이라며 친구 원양을 호되게 몰아붙이기도 했다. 들고 있던 지팡이로 원양의 정강이를 때리기까지 했다 한다. 김월회 교수의 글에서 읽었다.
공자뿐 아니라, 그의 학설을 창의적으로 이어받은 순자는 “공부를 함에 자신은 늙고 자식이 다 자라도록 어리석은 자와 다름없거나 심지어 자기 잘못조차 알지 못하는” 이를 ‘망인(妄人)’, 곧 망령된 자라고 비판했고, 장자는 한술 더 떠 “나이가 많으면서도 세상사 이치와 경중을 뒤에 올 이들에게 보여주지 못한다면 선배가 아니다. 사람이면서 선배가 되지 못한다면 그에게는 사람의 도가 없는 것”이라고 전제한 후 “사람이면서 사람의 도를 지니지 못한 사람”을 ‘진인(陳人)’, 곧 썩은 사람이라고 쏘아붙였다 한다. 김월회 교수는 여기 선배를 어른으로 읽으라 했다.그러니까 어른은 모두 누군가의 선배이다. 그렇게 모두가 어른임에도 어른답지 못하면 사람들로부터 '도적', '망령된 사람', '썩은 사람'으로 치부되고 만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 주부터 어른의 길을 <인문 일지>에서 정리해 보는 거다. 오늘은 '뇌' 이야기를 좀 한다. "뇌 기능은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한 소원 교수의 글을 읽고 있다. 모든 기억은 '현재의 뇌의 활동'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뇌의 활동에 '다른 경험'이 연결되어 같이 활성화된다면 그 '다른 경험'까지 기억되는 것이다. 그 편집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사건의 줄거리와 일부분만 기억할 때가 많고 나머지는 우리가 추론하고 잃어버린 조각들을 채워 넣는 경우가 많다. 뇌는 실제로 알고 있는 사실과 추론한 바를 뒤섞어서 이야기를 지어내고도 이 두 가지를 엄밀하게 구별하지 못한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이야기를 더 많이 지어내는 양상이 된다. 뇌의 기능은 느려지는데 수많은 기억들을 앞다투어 서로 무관한 일인데도 마음에서는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우리의 시각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모든 환경의 시각 자극들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정보들만 처리하고, 뇌는 과거의 경험들과 논리적 추론으로 나머지를 채우는 것이다. 뇌는 환경에서 실제로 발견한 것과 추론한 것을 뒤섞어서 처리하고 우리도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다. 중심 내영을 찾아서 나머지 부분을 채우는 것이 기억의 기제이며,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경험과 추론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과거를 기억할 때, 우리는 과거의 일부만을 기억하고 나머지는 잊어 버린다. 그런데 분명히 기억나는 것이나 망각한 것이나 중요도로 치면 같을 수 있다. 기억하는 것이라고 중요한 것도 아니고, 잊어버렸다고 해서 안 중요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현재 주변의 모든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분류할 때, 일부를 선택해서 그럴듯하게 짜 맞추고 나머지는 배제한다. 이러한 선택과 배제는 객관적인 기준 없이 독단적으로 행해진다. 포괄적이지도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다. 회복된 기억은 객관적인 과거를 되살려 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기억을 출력하면서 맞추어 나간다. 나이가 들면서 편집된 기억은 더욱 많아진다. 뇌의 처리 속도는 나이가 들수록 느려지는데, 경험한 기억은 더 많아지고 수많은 기억들이 뇌 활동 패턴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어떤 한 가지 정보를 생각하려고 할 때 여러 가지 기억들이 같이 발현되고, 이런 기억의 조각들을 연결해가면서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우리의 기억 중 특히 자기 경험에 관한 기억은 목표 지향적고 관점지향적이다. 목표나 관점에 일치하는 정보를 가지고 전후 맥락을 편집하게 된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이반지식과 내 경험을 편집하여 삽입한 기억인 데도 우리는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진실이라고 믿게 되기도 한다.
기억이란 모든 사람에게 애당초 완벽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기억은 계속해서 변한다. 어떤 면에서, 기억은 도구다. 기억은 우리를 미래로 인도하는 과거의 안내자이다. 우리가 과거에 나쁜 일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고 그 이유까지 떠올릴 수 있다면, 그런 나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기억의 목적이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다시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안 좋은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걸 예방하는 도구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늘 학습을 해야 한다. 나는 컴퓨터 화면에 다음 그림을 늘 올려놓는다.
독서나 체험을 하지 않으면, 즉 새로운 기억을 넣지 않으면, 위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절차 기억과 신념 기억으로만 사는 꼴이 된다. 우리 동네 박문호 박사의 책, <<뇌 과학 공부>>에서 가져온 거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학습을 해야 한다. 그림이 말하는 것처럼, 60세에 배움을 하지 않으면, 독서인 처럼 학습 증가형이 되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절차 기억과 신념 기억에 지배를 받는 자연인이 된다.
'배운다'는 것은 다음과 같이 3 단계로 이루어져야 한다.
1. 인류에게 유익하다고 인정되었지만, 내게는 생소한 학문을 접하는 배움
2. 그 배운 것을 자신의 일부로, 습관으로 만들기 위한 연습
3. 연습한 내용이 자신의 생각, 말 그리고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실행이다.
자신이 배웠지만,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인내와 반복을 동반한 연습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이 자신의 마음 속안에 자리 잡아, 자연스런 일부가 되었지만, 자신의 실생활에서 실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쪽이며 가짜일 수밖에 없다. 교육은 답습이 아니라, 자신이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하고 발휘하는 기회이다. 그리고 배움과 실천이 중요하다. 내가 배운 것을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을 강제로 반복하여 자신의 중요한 일과로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하루의 스케줄에, 일주일의 중요한 행사로 도입해야 한다.
탁월한 무술인, 예술가, 운동 선수는 지겨운 행위를 인내하며 반복한 사람들이다. 그 인내하며 반복하는 연습은 신체의 근육 뿐 아니라 정신적인, 심지어는 영적인 근육이 되어 자신을 전혀 다른 인간으로 변모 시킨다. 공부는 좋은 책을 한 번 읽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되고 싶은 자신을 매일매일 상기하고, 그 거룩한 자신에게 매일 당부의 말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기록은 매일 자신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다.
윤정구 교수에 의하면, 만델라가 영국 제국주의의 흑인 차별과 평생을 싸워서 얻은 교훈을 "인간은 학습하는 죄인이다"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글을 공유한다. '인간은 학습하는 죄인'이라는 말은 "과거를 돌릴 수 없지만 과거의 잘못을 학습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지렛대로 사용하는 사람들만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설파한 것이다. 또한 죄는 남들에 의해서 강제로 들춰지거나 들춰지지 않기 위해 남의 죄를 먼저 들춰내는 '내로남불'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자복[자백]하고 더 온전한 사람으로 거듭날 때 진정으로 용서받을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기억/문정희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지만
젊은 시절에도 나는 젊지 않았어
때때로 날은 흐리고
저녁이면 쓸쓸한 어둠뿐이었지
짐 실은 소처럼 숨을 헐떡였어
그 무게의 이름이 삶이라는 것을 알 뿐
아침을 음악으로 열어 보아도
사냥꾼처럼 쫓고 쫓기다 하루가 가고
그 끝 어디에도 멧돼지도 없었어
생각하니 나를 낳은 건
어머니가 아니었는지도 몰라
어머니가 생명과 함께
알 수 없는 검은 씨앗을 주실 줄은 몰랐어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지만
젊은 시절에도 늘 펄펄 끓는 슬픔이 있었어
슬픔을 발로 차며 거리를 쏘다녔어
그 푸르고 싱싱한 순간을
함부로 돌멩이처럼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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