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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자신을 낮추어 행하면 해결된다.

302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1월 23일)

이번 주 금요일에는 도반들과 <<주역>> 함께 읽기를 했다. 지금은 <<천택 리>괘를 읽고 있다. 이 괘의 제목을 굳이 붙인다면, "자신을 낮추어 행하면 해결된다'가 될 수 있다. 조심스레 삶을 밟아 나간다면,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사람을 물지 아니하니 형통하다는 거다. 괘상을 보면, 내괘는 연못 <태괘>로 기뻐하는 덕이 있고, 밖으로는 하늘 <건괘>로 강건한 덕이 있다. 사람도 안으로는 늘 기쁜 마음을 가지고, 밖에 있는 <건괘>처럼 강한 세상에 응하라는 말이다. 강하고 무서운 세상을 사는 데 안으로 늘 기쁜 마음으로써 세상살이에 응하면 물리지 않는다고 <괘사>에서 말한다. 호랑이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평상시에 자신의 이미지를 잘 형성시켜야 한다. 

이번 주 금요일에 읽은 것 중에 "색색(愬愬)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어려워 다시 사유를 해 본다. <천택리>괘의 '사효'에 나오는 말이다. 대신 자리인 '사효'는 현재 지위가 높아 호랑이 꼬리를 밟고 있는 격이지만 그럴수록 더욱 조심하면서 뜻을 펴 나가면 길하다는 거다. "愬愬終吉(색색종길)",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조심하면 끝까지 간다는 거다. "색색(愬愬)"은 무서워하여 놀라는 모양을 뜻하는 형용어라 했다.

 "색색(愬愬)"에서 "색(愬)"은 '초하루 삭(朔)'과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이다. 처음 리더와 함께하던 때의 초심(初心)을 잊지 않고 잘 지켜야 한다는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삭(朔)'자를 파자 하면, '거스를 역(屰)'자와 '달 월(月)'로 분해된다. 보름달에서 점점 빛의 영역을 잃으며 그믐달이 되었다가 완전히 사라지는 달은 초하루가 되면 사라졌던 곳과 반대 방향에서 초승달의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다. 초하루에 뜨는 달은 그믐날에 졌던 달이 아니다. 새달의 빛이 우리의 마음을 비추듯, 아직 남아 있는 우리 마음 속 어둠을 책과 글로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색(愬)'자는 '달(月)'을 거스르려는('屰') 상이니 묵은 달을 보내고 새 날을 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 '색'이라는 글자에 '두려워하다'의 뜻이 담기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새라새롭다'는 말을 알게 되었다. '새롭고 새롭다 혹은 여러 가지로 새롭다'를 뜻하는 형용사이다. 초하루에 뜨는 달은 그믐달에 졌던 달이 아니다. 새달의 빛이 우리의 밤을 비추듯이, 아직 남아 있는 우리 마음 속 어둠을 새롭게 하는 것이 "색색'이 아닐까?

'구사'의 <소상전>은 "象曰(상왈) 愬愬終吉(색색종길)은 志行也(지행야)라"이다. 번역하면, '상전에 말하였다. 조심하고 조심해서 마침내 길함은 뜻이 행해지는 것이다'가 된다.

'경외'라는 말이 소환된다. 노자의  <<도덕경>>을 읽다 보면, 이런 말을 만난다. 세상은 도의 작용으로 움직이는 신령한 기물(天下神器)이다. 제29장 이다.  “세상은 신성한 기물, 거기 다가 함부로 뭘 하겠다고 할 수 없습니다. 거기 다가 함부로 뭘 하겠다고 하는 자는 그것을 망칠 것이고, 그것을 휘 잡으려는 사람은 그것을 잃고 말 것입니다.” 원문은 이렇다. "天下神器(천하신기) 不可爲也(불가위야) 爲者敗之(위자패지) 執者失之(집자실지)". 나는 이렇게 읽는다. 세상은 신비로운 그릇이라, 얻고자 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함부로 뭘 하겠다는 자는 실패할 것이고, 억지로 잡으려는 자는 잃게 될 것이다.

왜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하는가? 세상은 신령하니까. 다시 말하면, 세상은 다양하고 복잡한 원리와 리듬이 내재해 있어서 우리 인간으로서는 그 깊고 높은 차원을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을 대할 때 제발 '경외(敬畏)'의 태도로 대할 줄 알라는 이야기이다. 난 경외(敬畏)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 말은 말 그대로 하면, “공경하면서 두려워 함”이다. ‘외경(畏敬)’이라고도 한다. 두려워 할 ‘외'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도 '경외'의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 좀 두려워 하면서 만나야 한다.

그리고 노자의 가르침에는 참된 이치와 도리를 부여한 하늘에 대한 공경심이 선행한다. <<도덕경>>에서 “하늘의 그물은 크고 성긴 것 같지만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고 한 가르침이 잘 보여준다. 이를 "天網恢恢(천망회회) 疏而不失(소이불실)"라고 한다. 이 말은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틈이 있는 것 같지만 실수가 없다'는 거다. 여기서 "천망(天網)"은 '그물'이다. 그것은 그물을 씌워 범인을 잡는다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들어있다. "살활(殺活)"의 우리 인간적 판단은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법망(法網)'을 통한 사회 기강의 정립은 좁은 소견에 그치고 만다는 것이다. 결국 "법망'이 아닌 "천망"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천망"은 매우 성글게 보이지만 범인을 놓치지 아니한다. 그것이 "소이불실"의 의미라고 본다. "疏而不失(소이불실)" 대신 "소이불루(疏而不漏)"라고도 한다. 

나는 언젠가 이 구절을 보고, 이렇게 적어 둔 적이 있다. 하늘이 모르는 죄가 있는 듯하지만, 벌 주기에 적당한 때를 선택할 뿐이다. 큰 물고기는 홀로 다니지만, 작은 물고기는 떼를 지어 다닌다. 작은 물고기는 서로 뭉쳐 돕지 않으면 큰 물고기한테 다 잡혀 먹히고 말 것이다. 하지만 큰 물고기도 수명이 다해서 죽거나 그물에 걸려 잡힐 때가 있다. 그걸 알아야 한다.

그러니 눈 앞의 암울한 현실에 움츠려 들지 말자. 고난은 우리를 파괴할 수 없다. 고난 그 자체는 풍뎅이 한 마리 죽일 힘조차 갖고 있지 않다. 고난이 위협을 발휘하는 것은 우리가 거기에 무릎을 꿇었을 때 뿐이다. 우리 삶은 기쁨과 슬픔의 연속이다. 삶의 여정에는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 실패와 성공은 번갈아 찾아오기 마련이다. 인생은 파도와 같다. 한 파도가 끝나면 이내 다른 파도가 밀려온다. 그러니 썰물에 한탄하지 말고 곧 돌아올 밀물에 자신의 배를 띄울 채비를 하자. 그 진리를 믿고 용기 있게 나아가자. 그것이 인생이다.

이런 인생을 사는 사람은 채우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채워 지길 바라지 않는다. 인간이란 생래적으로 '채움의 길'을 간다. 뭐든지 모자란다고 생각하고 더 채우고 더 가지려 한다. '도'를 알고 따르는 사람은 '채움의 길'을 버리고 '비움의 길'을 걷기에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 로다'하고 노래할 수 있다. '있음 그대로(being)에 자족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굳이 채우려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너덜너덜하게 하지, 새로운 모습으로 완성치 않는다(夫唯不盈(부유불영) 故能蔽不新成(고능폐불신성)."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그러므로 능히 자기를 낡게 하면서, 부질없이 새롭게 작위(作爲)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로 풀이한다. 허(虛)를 극대 화시키면서 자꾸 채우려 하지 않는다는 테마를 강조한 것이라 본다. 욕심을 채우려 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그래서 혼탁한 세상을 맑게 만든다.

나는 감나무에서 그 모습을 본다. 아름답고 애잔하다. 오늘 아침 시처럼, "참 늙어 보인다/하늘 길을 가면서도 무슨 생각 그리 많았던지/함부로 곧게 뻗어 올린 가지 하나 없다." 그리고 "가을 머리에 인 밝은 열매들/늙은 몸뚱이로 어찌 그리 예쁜 열매를 매다는지" 애처롭다. 나는 세상에서 희생이라는 말을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감나무라고 본다. 자기 것을 다 쏟아내고, 비우면서 저 붉은 열매, 감을 세상에 보내는 것이다. 감나무는 알고 잇다. 이제는 가지런히 하고, 버릴 것을 남김없이 버리고, 마지막 심장들을 하늘에 드릴 때라는 것을.


감나무/함민복

참 늙어 보인다
하늘 길을 가면서도 무슨 생각 그리 많았던지
함부로 곧게 뻗어 올린 가지 하나 없다
멈칫멈칫 구불구불
태양에 대한 치열한 사유에 온몸이 부름 터
늙수그레하나 열매는 애초부터 단단하다
떫다
풋 생각을 남에게 건네지 않으려는 마음 다짐
독하게, 꽃을, 땡감을 떨구며
지나는 바람에 허튼 말 내지 않고
아니다 싶은 가지는 툭 분질러 버린다
단호한 결단으로 가지를 다스려
영혼이 가벼운 새들마저 둥지를 틀지 못하고
앉아 깃을 쪼며 미련 떨치는 법을 배운다
보라
가을 머리에 인 밝은 열매들
늙은 몸뚱이로 어찌 그리 예쁜 열매를 매다는지
그뿐
눈바람 치면 다시 알몸으로
죽어 버린 듯 묵묵부답 동안거에 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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