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고요를 수련해 보시겠습니까?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헛것들로 넘쳐나는 도시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내면의 평화를 찾아가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TV를 안 보거나 도시를 떠나 자연이 가까운 곳에서 사는 거다. 고요를 즐기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라고 생각하는 내가 진짜 나인지' 더 자주 숙고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나'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욕망'이 아니라, '자본의 욕망'에 포섭될 확률이 높다. 시인 김선우는 이런 것들을 하라고 한다.
-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스마트 폰 꺼 놓기
- 침대나 소파 곁에 언제든 손에 잡을 수 있게 책 두기
- 가방 속에 일기장 넣어 다니기
- 하루에 10분 하늘 바라보기

이런 소소한 일상에서 실천은 개인의 정신을 새롭게 갈무리하고, '더 나은 나'로 존재하고 싶은 욕망의 성장을 돕는다는 것이다. 소유보다 존재의 풍성함을 챙기고 싶은 욕망의 성장을 도울 것이다.

이번 주 <배철현의 월요 묵상> 칼럼 제목이 "고요를 수련해 보시겠습니까"이다. 코로나-19가 다시 극성을 부릴 채비를 한다. 이런 현실이다. "[바이러스가] 물러서기는 커녕, 오히려 기승을 부리기 시작해 암울하고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라고 호통친다. 인간에게 삶의 재미, 기쁨 그리고 의미를 부여하는 대면활동을 금지했다. 먹을 것을 마련해주는 생계를 위태롭게 만들었으며, 집 밖으로 나가지 말 것을 요구한다.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공동체를 이루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문명을 건설해왔던 인류에게 그러지 말라고 명령한다. (…) 지인이나 타인이나 상관없이 누구를 만나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네지 않겠다는 표시로 마스크를 쓴다. 마스크는 당신도 나에게 말을 걸지 말라는 경고다. 대면문화를 구축한 문화의 문명 핏줄인 경제는 벼랑 끝에서 깊은 바다로 몰락하기 직전이다."

배교수는 두 개의 대안을 제시한다. 하나는 오늘이라는 일상에 감사하라고 한다. "아무리 장구한 시간이라도 지나고 보면 순간이 인생이란 사실을 깨달은 인간에게 희망이 있다. 그는 자신의 사적인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발굴하기 때문이다. 그는 매 순간 자신을 살아있게 만드는 움직임을 응시하고 기뻐한다. 들숨과 날숨은 나의 생명을 지켜주는 알파와 오메가다. 누군가가 나에게 호흡을 선물해 내가 의식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잠을 잘 때도 호흡을 유지해 준다. 누군가 저 높은 산과 저 깊은 샘에서 물을 만들어 나에게 선물했다. 내 입으로 들어간 물 한 모금이 목구멍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 나를 살아있게 할 것이다. 이 위기는 내가 지나쳤던 일상을 응시해 감사하게 만든다."

또 하나는 고요를 수련하라고 한다. "애벌레는 고치를 삶의 끝이라고 부르지만, 고요를 수련하는 인간에게 고치란 나비가 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준비과정이다. 다가오는 겨울은 '우울'이 아니라, 우리에게 '고요'를 이야기한다. 이 겨울은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나비가 되라는 총성이다. 희망은 절망이 낳은 자식이며 확실은 불확실의 제거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 시는 김선우 시인의 <오늘>이다. 오늘이라는 하루는 경유지가 아니다. 노예였다 스토아 철학자 된 에픽테토스는 남다른 고통과 고생을 통해 하루를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훈련을 말했다. 그의 철학은 추상적이 개념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일상을 개선하기 위한 실천 가능한 조언들이다. 예를 들면, "너희들은 간절히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으며, 너희들이 피하고 싶은 상황에 절대 빠지 말아라!" 쉽고도 어려운 조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 '인문 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인문 정신이란 자신에 주어진, 자신에게  알맞은 인생의 과업을 심사숙고하여 찾아내는 여정이다. 만일 그가 인생의 과업을 발견했다면, 자신답지 않은 것, 즉 자신이 피하고 싶은 상황을 미리 감지하고 피할 것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알아야, 우리가 피하고 싶은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이젠 그의 조언을 이해했다.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일상의 훈련을 통해, 일상을 지배하기 위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분야를 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 욕망(慾望) (2) 선택(選擇) (3) 승복(承服).
• 에픽테토스가 말하는 욕망은 팔을 움츠리지 말고 최대한으로 펴는 연습을 하라는 조언이다. 세상에는 내가 팔로 획득할 수 있는 것과 획득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걸 구별하는 것이다. 내 팔로 획득할 수 없는 것을 욕망하는 것은 탐욕이라고 본다. 그러니 내가 잘 할 수 있는 한 가지에 몰입하여 최고의 성과를 내려는 마음이 에픽테토스가 말하는 욕망이다.
• 에픽테토스가 말하는 선택은 나의 최선을 집약 시킬 대상을 선별하는 능력이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훌륭하게 마칠 수 있게 하는 내 일은, 심사숙고를 통해, 내가 사적으로 한 선택의 결과이다. 또한 선택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과감하게 거절할 수 있는 단호함도 포함한다.
• 에픽테토스가 말하는 승복은 자신이 선택한 대상에 완전히 몰입하여 완수하려는 결심이다.

에픽테토스는 매일 아침 자기 안에서 이 세가지 원칙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이것도 배철현 교수한테 배운 것이다. 매일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집중하여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너무 힘들게 살 필요 없다.

아침 사진은 지난 주 제주도 여행에서 건진 것이다.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두 모녀가 걷는 모습이 너무 평화롭고, 인생은 매일 매일의 완벽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나에게 절실한 한 가지에 몰입하여 쌓이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몰카를 찍은 것이다.  

오늘/김선우


여기는 경유지가 아니다.​

여기를 저 높은 문을 위해 인내해야 하는
경유지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있다면
침묵할 것을 요청한다.​

나는 내 책상 위에
최선을 다해 오늘의 태양을 그린다.​

여기는 내일로 가는 경유지가 아니다.​

나는 날마다 꽃핀다.​

내 말을 완전히 이해하는 나의 태양과 함께.​

다른 사람이 보기에 덜 핀 꽃이어도
나는 여기에서
완전하다.


어제는 <소소한 연구소>에서 동네 분들과 인문학 수업을 했다. 김누리 교수의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를 함께 읽어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동네 분들은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니 유쾌하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정치적인 문제라고 여기며 피하려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인문학을 단순한 문화활동의 영역으로만 이해할 때, 그 인문학은 탈 정치화되고 탈 역사화 된다는 점이다.

단순한 문화 활동으로 생각하는 인문학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녀야 할 사회나 세계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게 하고, 구체적인 변화가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실천적 삶에 무관심하게 만든다. 인문학을 탈 정치 화하면 인문학이 지닌 중요한 비판적 성찰과 세계에 대한 개입의 의미를 보지 못하게 한다. 그래 내가 인문학자보다 인문운동가가 되기를 택한 이유이다.

인문운동가 하는 일은 비판적 성찰, 해답 찾기가 아닌 새로운 물음 묻기를 통한 세계 개입 그리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서의 정의, 평화, 평등, 연대의 가치를 더 확장하고 실천하기 위한 비판적 저항이다. 그건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간에 고정하려 하는 것과 제한하려 하는 것, 절대적인 것의 위험성과 불확실성을 성찰하는 일이다.

이런 비판적 저항은 다음과 같은 인문학의 기초에서 이루어진다.

• 세상의 모든 권위와 권력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하기: 한나 아렌트는 비판적 사유는 나 자신과의 대화이고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고독'이라고 말했다.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보다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  이성적으로 사유하기: 이를 위해  자신을 말과 글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 물음 묻기, 즉 질문하기: 좋은 질문과 나쁜 질문이 있다. 좋은 질문은 질문 받는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고 내 안에 또 다른 세계를 찾게 만든다. 나쁜 질문은 "예 혹은 아니오"로 단정 짓게 만드는, 생각이 필요하지 않은 질문이다. 답을 내릴 때 기억해야 할 다음 세 가지가 중요하다. (1) 모든 답은 잠정성을 갖는다. (2) 모든 답은 부분성을 갖는다. (3) 모든 답은 특정한 정황 속에 매여 있다.

이를 통해 키워진 인문 정신은 확실성을 내려놓고 불확실성에서 사유를 시작하는 것이다. 끊임 없는 불안감을 끌어 안고 살아야 하는 수고가 있다 할지라도,
• 고정된 정답보다 새로운 질문 묻기를 하는 것이다.
• 상투성에 저항하고 자명성에 물음표를 붙이는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누리 교수의 책은 좋은 인문 정신을 키워주는 책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디지털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김선우 #복합와인문화공방_뱅샾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