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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권력은 지나고 나면 꿈과 같다.

3016.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1월 18일)

권력은 지나고 나면 꿈과 같다. 산다는 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열흘 동안 붉게 피는 꽃이 없다'는 뜻으로, '한 번 성한 것은 얼마 가지 못해서 반드시 쇠하고 만다'는 것을 보여준다. 잘 나간다고 거드름을 피워 봤자, 얼마 아니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 얘기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죽는다. 자존심이 강하고 욕심 많은 사람일수록 화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유명세를 타거나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삶에 대한 애착이 더 많다. 하지만 영원히 살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언젠가는 죽는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소용이 없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인은 "사는 것"을 이렇게 노래한다.

사는 것은/안중득

길 하나 만들어
바람에 띄워 놓고 가는 일
뒤돌아보면 구겨진 길
비바람에 찢기고
푸른 달빛에 씻겨온 길
바라보며 가노라면
밝은 내 별에
닿을 수 있겠지

우리는 지금 국가권력의 모든 부패상을 보고 있다. 좀 다 열거해 본다. 사태의 원인은 민주주의의 결함에도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현 대통령의 능력과 자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1. 국가 차원의 문제
• 민주주의 붕괴,
• 법치주의 훼손,
• 몰락하는 경제,
• 권력사유화,
• 역사퇴행,
• 불공정과 비상식,
• 전쟁위기 등

2. 구체적인 사안
• 김건희 여사의 국정농단,
•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 명품 수수,
• 국회법안 거부,
• 검찰권력 사적 이용,
• 채 상병 사망사건,
• 뉴라이트 인사,
• 이태원 참사,
• 공천개입 등

핵심은 도덕성이다. 왕조국가 조선이 무려 500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조상들이 강조한 수기치인(修己治人)과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전통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리론(主理論)을 편 이황은 기대승과의 사단칠정 논쟁에서 이기불상잡(理氣不相雜)의 논리로 인간의 본성은 순수하고 잡됨이 없다고 보았다. 천리를 보존하는 수양을 통한 내면의 도덕성 확립으로 사회질서를 바로 세우고자 했다. 주기론(主氣論)에 선 이이가 성혼과의 논쟁에서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을 주장한 것은 사람의 기질은 순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규범과 제도로써 도심과 덕이 우위에 서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성리학의 가르침엔 참된 이치와 도리를 부여한 하늘에 대한 공경심이 선행한다. <<도덕경>>에서 “하늘의 그물은 크고 성긴 것 같지만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고 한 가르침이 잘 보여준다. 이를 "天網恢恢(천망회회) 疏而不失(소이불실)"라고 한다. 이 말은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틈이 있는 것 같지만 실수가 없다'는 거다. 여기서 "천망(天網)"은 '그물'이다. 그것은 그물을 씌워 범인을 잡는다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들어있다. "살활(殺活)"의 우리 인간적 판단은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법망(法網)'을 통한 사회 기강의 정립은 좁은 소견에 그치고 만다는 것이다. 결국 "법망'이 아닌 "천망"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천망"은 매우 성글게 보이지만 범인을 놓치지 아니한다. 그것이 "소이불실"의 의미라고 본다. "疏而不失(소이불실)" 대신 "소이불루(疏而不漏)"라고도 한다.

나는 언젠가 이 구절을 보고, 이렇게 적어 둔 적이 있다. 하늘이 모르는 죄가 있는 듯하지만, 벌 주기에 적당한 때를 선택할 뿐이다. 큰 물고기는 홀로 다니지만, 작은 물고기는 떼를 지어 다닌다. 작은 물고기는 서로 뭉쳐 돕지 않으면 큰 물고기한테 다 잡혀 먹히고 말 것이다. 하지만 큰 물고기도 수명이 다해서 죽거나 그물에 걸려 잡힐 때가 있다. 그걸 알아야 한다.

그러니 눈 앞의 암울한 현실에 움츠려 들지 말자. 고난은 우리를 파괴할 수 없다. 고난 그 자체는 풍뎅이 한 마리 죽일 힘조차 갖고 있지 않다. 고난이 위협을 발휘하는 것은 우리가 거기에 무릎을 꿇었을 때 뿐이다. 우리 삶은 기쁨과 슬픔의 연속이다. 삶의 여정에는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 실패와 성공은 번갈아 찾아오기 마련이다. 인생은 파도와 같다. 한 파도가 끝나면 이내 다른 파도가 밀려온다. 그러니 썰물에 한탄하지 말고 곧 돌아올 밀물에 자신의 배를 띄울 채비를 하자. 그 진리를 믿고 용기 있게 나아가자. 그것이 인생이다.

하늘을 신, 조물주, 법신, 하늘님 등 뭐라 해도 좋다. 우리가 아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주관적 신념이나 믿음으로 진실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근대는 이러한 절대적 세계관이 무너진 시대다. 유럽에선 세속 정치를 좌우했던 신의 권위가 무너진 자리를 국가권력이 차지했다. 카를 슈미트가 “현대 국가론의 중요 개념은 모두 세속화된 신학 개념이다”(<<정치신학>>, 김향역)라고 한 뜻이 여기에 있다. 국가권력은 신과의 투쟁에서 마침내 승리하고 신이 되었다. 오늘날 국가의 형태는 유럽에서 형성된 국가론을 따르고 있다. 대통령제 또한 미국이 세계 최초로 창안하여 전 세계로 파급되었다. 인류 문명은 몇몇 지도자들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는가에 따라 각 나라의 희비는 엇갈린다. 미완의 근대국가 기획으로 세계는 질서보다는 무질서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신정국가와 마찬가지로 대다수 나라의 최고 권력자는 임기 동안 그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신적 권위를 독점한다. 일시적임에도 권력자들은 하늘에 대한 외경의 마음을 갖기는커녕 스스로 지상의 신처럼 군림한다. 원익선 원광대 평화연구소장에게서 배운 거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 본다.

"신이 된 권력자들은 그 권력이 영원할 것으로 착각한다. 권력은 지나고 나면 꿈과도 같다. 윤석열 대통령은 하루빨리 미몽에서 벗어나 위민(爲民)과 애민(愛民)의 지도자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모든 잘못을 밝히고 백성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들어야 한다. 권력이 국가와 국민, 자신을 살리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8년 전 촛불혁명의 불길이 다시 타올라 백성들 스스로 그 권력을 회수할 것이다."

오늘은 시 대신 경희대학교와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연구자들의 시국선언문을 공유한다. 왜냐하면 명문이다. 특히 인문 운동가의 눈으로 그렇다. 문장들을 하나씩 읽다 보면 인문 정신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우선, 인문 운동가로서, 나도, 그들처럼 부끄럽다. 다음 12 가지 인문적 가치를 반성하고, 그것들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함께 목소리를 내자. 우리는 취약한 사람이고, 부족하고 결여가 있는 사람이 때문에 다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1. 평화와 생명, 그리고 인류의 공존이라는,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가치를 잃고 있다. 그래 나는 다시 인류가 평화를 위해 함께 살아갈 지혜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2. 보편적 인권과 피해자의 권리를 위해 피 흘린 지난하면서도 존엄한 역사에 대한 경의를 잃고 있다. 그래 나는 다시 역사의 진실 앞에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3. 여성과 노동자와 장애인과 외국인에 대한 박절한 혐오와 적대 속에서,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회를 잃고 있다. 그래 나는 다시 모든 사람이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갖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4. 강의실에서 더 이상 학생의 안녕을 예전처럼 즐거움과 기대를 섞어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래 나는 다시 서로의 생명과 안전을 배려하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5. 군 휴학을 앞두고 인사하러 온 학생에게 나라를 지켜줘서 고맙고 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격려하지 못한다. 그래 나는 다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6.  우리의 강의실이 어떠한 완력도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절대 자유와 비판적 토론의 장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래 나는 다시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럼없이 표현할 권리를 천명하고 싶다.
7. 대학 교육의 토대가 적어도 사회적 합의에 의해 지탱되기에 허망하게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래 나는 다시 우리가 공부하는 대학을 신뢰와 배움의 공간으로 회복하도록 돕고 싶다.
8. 잘못을 하면 사과하고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존중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잃고 있다. 그래 나는 다시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잘못을 사과하는 윤리를 회복하는 일을 위해 노력한다.
9. 공정을 신뢰하며 최선을 다해 성실한 삶을 꾸려가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보람이라는 것을 잃고 있다. 그래 나는 다시 신중히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정한 규칙을 찾는데 노력한다.
10.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규범을 지키는 것이 공동체 유지의 첩경이라는 사실을 잃고 있다. 그래 나는 다시 서로를 믿으면서 우리 사회의 규칙을 새롭게 만들어가는데 노력한다.
11. 진실을 담은 생각으로 정직하게 소통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그래 나는 다시 진실 앞에 겸허하며, 정직한 삶을 연습하는데 노력하고 싶다.
12. 한 번 더 고민하여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말을 건네고 서로의 말에 경청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그래 나는 다시 존중과 신뢰의 말을 다시금 정련하는데 노력하고 싶다.

다음은 경희대학교·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연구자 시국선언 전문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퇴진하라!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나는 매일 뉴스로 전쟁과 죽음에 대해 보고 듣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 전쟁에 연루되려고 하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평화와 생명, 그리고 인류의 공존이라는 가치가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가치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역사의 아픔이 부박한 정치적 계산으로 짓밟히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보편적 인권과 피해자의 권리를 위해 피 흘린 지난하면서도 존엄한 역사에 대한 경의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여성과 노동자와 장애인과 외국인에 대한 박절한 혐오와 적대를 본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회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이름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지 못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학생의 안녕을 예전처럼 즐거움과 기대를 섞어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안타까운 젊은 청년이 나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어도, 어떠한 부조리와 아집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알지 못한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군 휴학을 앞두고 인사하러 온 학생에게 나라를 지켜줘서 고맙고 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격려하지 못한다.
나는 대학교 졸업식장에서 졸업생이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팔다리가 번쩍 들려 끌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우리의 강의실이 어떠한 완력도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절대 자유와 비판적 토론의 장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파괴적 속도로 진행되는 대학 구조조정과 함께 두 학기 째 텅 비어 있는 의과대학 강의실을 보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 교육의 토대가 적어도 사회적 합의에 의해 지탱되기에 허망하게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수많은 격노를 듣는다. 잘못을 해도 반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격노의 전언과 지리한 핑계만이 허공에 흩어진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잘못을 하면 사과하고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존중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가 무너지며 공정의 최저선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고 듣는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공정을 신뢰하며 최선을 다해 성실한 삶을 꾸려가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보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신뢰와 규범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규범을 지키는 것이 공동체 유지의 첩경이라 말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수많은 거짓을 목도한다. 거짓이 거짓에 이어지고, 이전의 거짓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진실을 담은 생각으로 정직하게 소통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말의 타락을 보고 있다. 군림하는 말은 한없이 무례하며, 자기를 변명하는 말은 오히려 국어사전을 바꾸자고 고집을 부린다. 나는 더 이상 강의실에서 한 번 더 고민하여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말을 건네고 서로의 말에 경청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하루하루 부끄러움을 쌓는다. 부끄러움은 굳은살이 되고, 감각은 무디어진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나는 하루하루 인간성을 상실한 절망을 보고 있고, 나 역시 그 절망을 닮아간다.
어느 시인은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하지만 그는 그 절망의 앞자락에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리라는 미약한 소망을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두었다.

나는 반성한다. 시민으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나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나는 취약한 사람이다. 부족하고 결여가 있는 사람이다. 당신 역시 취약한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취약하기 때문에, 함께 목소리를 낸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인류가 평화를 위해 함께 살아갈 지혜를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역사의 진실 앞에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모든 사람이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갖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서로의 생명과 안전을 배려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럼없이 표현할 권리를 천명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우리가 공부하는 대학을 신뢰와 배움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잘못을 사과하는 윤리를 쌓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신중히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정한 규칙을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서로를 믿으면서 우리 사회의 규칙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진실 앞에 겸허하며, 정직한 삶을 연습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존중과 신뢰의 말을 다시금 정련하고 싶다.

우리는 이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만들어갈 우리의 삶이 어떠한 삶일지 토론한다.
우리는 이제 폐허 속에 부끄럽게 머물지 않고, 인간다움을 삶에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새로운 말과 현실을 발명하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낸다.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무관심하며,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고, 무지와 무책임으로 제멋대로 돌진하는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

2024.11.13.
경희대학교 ·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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