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1월 17일)
우리는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를 맹신하고 싫어하는 정보는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이성적’이라 생각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은 ‘비이성적’이라 비판한다. 사실은 정반대다. 확증편향 (確證偏向)이 강할수록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다. 확증편향에 빠지면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더 많이 수집하려 하고, 어떤 정보를 해석할 때 기존의 신념과 일치하는 해석을 선호하며, 기존 신념과 다른 정보는 무시하거나 거부하며, 반대 의견이나 다른 시각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비판적 사고 분야의 연구자인 리처드 폴과 린다 엘더는 <<왜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하는 가>>에서 ‘어떤 사람들은 일단 특정 신념체계를 형성하면 나머지 인생 동안 그것을 방어하면서 산다. 그들의 견해에서 발전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마음의 지평이 확장되지도 않는다’라고 한 바 있다.
"철학적 성찰은 그러한 방어를 넘어서서 마음의 지평을 넓히도록 하는 작업이다. 자신의 신념체계가 논리적으로 구성되었는가, 문제점은 없는가를 끊임없이 따져 물으면서 말이다. 유튜브 시대에 모두 확증편향을 걱정한다. 철학은 확증편향을 넘어서고 확증편향을 해체하려는 노력이다."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의 말이다. 나도 동의한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가치관이나 기존의 신념 혹은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과 태도를 말한다.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심리로 자기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여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이다.
이런 성향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간절히 바랄 때, 어떤 사건을 접하고 감정이 앞설 때,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기가 싫을 때, 저마다의 뿌리 깊은 신념을 지키고자 할 때 나타난다. 따라서 확증편향에 빠진 사람은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생각은 듣지 않으려 하며, 자신의 생각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거나, 어떤 것을 설명, 해석, 주장할 때 편향된 방법을 동원한다.
확증편향에 사로잡히게 되면 자신의 신념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이 많은 객관적 자료들과 함께 제시되어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또한, 자신의 믿음에 대해 근거 없는 과신을 갖게 하며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다른 사실에 대해 불신하며, 과학적 사실에 반해 자신의 믿음을 고수하려 하기도 한다. 과학적 탐구에서도 확증편향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다.
오늘날 같은 모바일 환경의 정보 과잉 시대는 확증편향을 그야말로 일상으로 만든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닿는 정보 중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그래서 더 편향되고 더 확신이 굳어진다. 이를 부추겨서 클릭 수를 늘리는 일부 언론들이 가세해 자극적 제목으로 각을 키운다. 나중에 진실이 밝혀진 대도 이들은 부끄러움이 없다. 다시 낚싯바늘을 던지면 그만이다. 우리가 익히 경험한 대로 확증편향은 흔히 패거리주의와 짝을 이뤄 종말론적인 아집과 독선을 낳는다. 사무실 PC를 빼돌리는 장면을 보면서 “증거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해설을 할 수 있는 게 그래서 이다.
일단 편이 갈라지면 우리 편은 팥을 쒀도 메주가 되고, 상대편은 흰옷을 입어도 검게 보인다. 이해득실의 판단만 있을 뿐, 진실을 보려는 노력은 성가시다. 상대가 아무리 명백한 증거를 제시해도 조작이요 거짓일 뿐이다. 싸움이 시작되고 상대를 향한 분노와 증오는 이제 필연이다. 시퍼렇게 날 선 말들이 오가고 육두문자가 춤을 춘다. 그러다 고소 고발로 이어지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다 다툼의 원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삿된 감정싸움만 남는다.
더 나아가, 정치적 목적이 끼어들면, 분노와 증오는 맹목적이 된다. SNS에 한마디씩 던지며 찍는 좌표에 따라 대중들의 분노는 이리 쏠리고 저리 달려간다. 90년 전 괴벨스가 히틀러를 위해 한 짓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말했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프로파간다의 가장 큰 적은 지성주의다.” 이런 싸움은 대부분 파국을 맞고 서야 끝나게 마련이다. 사람은 바뀌지 않고 인간사 역시 늘 그 모양이다. 숱한 오해와 옥생각이 중첩되는데, 분노와 증오가 너무 짙어 진실의 바탕색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때는 화해라도 했다. 그 화해가 얼마나 지속할지는 몰라도 화해하려는 노력이라도 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인스턴트 분노의 시대에는 화해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분노와 증오의 통조림을 따서 오븐에 넣고 끓인 뒤 맛을 보기도 전에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는 새 통조림을 딸 준비를 한다. 화해가 자리할 틈이 없다.
처음부터 분노와 증오의 싹을 잘라야 하겠다. 정당하게 분노하고 증오할 일이 왜 없겠냐마는, 자칫 소비되고 버려지는 게 분노하고 증오했던 나 자신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나 한테 화가 미치는 까닭이다. <<법구경>>이 말하는 게 그것이다. “증오를 품는 것은 벌겋게 달아오른 석탄을 집어 드는 것과 같아서 그것을 다른 이에게 던진다 하더라도 나 먼저 데고 마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괴벨스한테 배우면 되겠다. 선전 선동의 천재 괴벨스가 스스로 약점을 고백하지 않았나 말이다. ‘지성주의'가 별 게 아니다. 화를 내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하는 게 지성이다. 우리 편이 뭐란다고 무조건 믿는 게 아니라 한 번만 다시 생각해보는 게 지성주의인 것이다.
세계는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가상 세계의 등장으로 '현재'의 개념이 매우 중요 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새로운 지각의 확장, 더 나아가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배움을 통해 그 세계로 진입해야 한다. 새로운 지각을 열어야 한다.
그 방법은 지금까지 자신이 가졌던 가정(if)를 살펴 보아야 한다. 그 가정이 확증편향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지각의 가장 큰 걸림돌이 기존의 가정(if)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존의 가정을 깨는 유일한 방법은 질문이다. 왜냐하면 가정한테 꼼짝 못하는 게 지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각을 바꾸려면 가정을 바꾸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가정(if)이 지각을 막는다. 가정이 지각에 박스를 쳐버린다. 무슨 말이냐면, 지각을 꼼짝 못하도록 가두는 우리의 많은 가정들이 지각을 상자 속에 가둔다는 거다. 그게 확증편향으로 확대된다. 그래서 새로운 지각을 가지려면 창문을 새롭게 내야 한다. 가정의 감옥에 있는 유일한 창문을 우리는 개념이라 하고, 그 개념으로 우리는 세상을 본다. 그 개념이 우리가 보통 말하는 프레임,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지난 주, 서울의 한 식당에서 찍은 사진이다. 징소리는 제 몸의 상처가 깊을수록 가슴속에서 길어 올린 소리로 멀리 퍼져 나간다고 한다. 상처 없이 완성되는 삶이 어디 있으랴! 징 채도 한 번 제대로 못 잡고, 그렇다고 목청껏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는 붉은 징 같은 삶이 곧 서민들의 삶 아닐까 싶다. 언젠가 가슴 한 복판에 명중하는 징소리를 꿈꾸며 오늘도 처마 밑에 쭈그려 앉는다. 지난 2년 반 동안, 우리는 편한 날이 없었다. 다들, 오늘 아침 사진처럼, 징이 벽에 붙어 있다.
징/박정원
누가 나를 제대로 한방
먹여줬으면 좋겠다
피가 철철 흐르도록
퍼런 멍이 평생 지워지지 않도록
찡하게 맞았으면 좋겠다
상처가 깊을수록
은은한 소리를 낸다는데
멍울 진 가슴 한복판에 명중해야
멀리멀리 울려 퍼진다는데
오늘도 나는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서쪽 산 정수리로 망연히
붉은 징 하나를 넘기고야 만다
징 채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제대로 한번 울어보지도 못하고
모가지로 매달린 채
녹슨 밥을 먹으면서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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