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제1복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가을비가 하루 종일 대지를 적시던 지난 주일에 침대에 누워, 페이스북을 보다가 <중앙일보> 종교 담당 기자인 백성호의 "현문우답" 칼럼을 읽게 되었다. 제목이 "현대인에게 고(故)차동엽 신부가 전했다. 8가지 '행복의 비밀'"(중앙일보 11월 17일자). 내 마음에 빗금을 그는 몇 가지를 내용을 공유한다. 어제에 이어, 오늘은 "산상수훈 팔 복"을 공유한다. "산상수훈(山上垂訓)의 팔 복(Beatitude)"은 <마태복음>  5장 3-7절에 나오는 거룩한 말씀이다. 고 차동엽 신부님은 현대인의 소망은 행복지는 거라고 하며, 그 비밀의 길은 '팔 복'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신부님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성경의 "신약성서에는 두 개의 기둥이 있"는데, 그 것은 "'주님의 기도(주 기도문)'와 '산상수훈의 팔 복'"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히브리어, 더 정확히 말하면 히브리어 사투리인 아람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예수님 사후, 성서가 그리스어로 기록되는 바람에 '산상수훈'이 명쾌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어제 살펴 본 '주님의 기도'가 수직선으로 나와 하느님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라면, '산상수훈의 팔 복'은 수평선이다. 우리에게 수평적인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차신부님에 의하면, '산상수훈 팔 복'은 "실존 교본이자 생활 교본"이라고 한다. 우리 현대인들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다들 고민한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대한 답을 던지신 것이다. 그러니까 행복을 위한 8가지 길을 제시한 것이다. 이 여덟 가지는 관념적이거나 아름다운 시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구체적인 강령(綱領)이다. '팔 복'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차신부님은 비록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처방전'에 담긴 통찰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 지금껏 누렸던 행복의 차원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 씩 차신부님의 설명을 따라가며, 더 깊은 이해를 하고, 내 삶 속에서  실천할 생각이다. 오늘 아침은 제1복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는 문장을 해부한다.
- 행복(happiness)의 어원은 'happen(일어나다, 발생하다)이다. 그러므로 행복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하는 것이다. 누가 발생시키는가? 바로 나 자신이다. 이게 행복의 테크닉(기술)이 아니라, 행복에 대한 원리이고 법칙이다. '팔 복'은 예수님께서 행복을 발생시키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을 알려 주신 것이다.
- '마음이 가난한'에서 가난은 히브리어 '에비온(ebiyon)'이다. 뜻은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가난'이다. 절대적 가난을 말한다. 상대적 가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 이 가난은 물질적 가난이 아니라, 영성적인 가난이다. 구약 시편의 영성가들이 말하는 기도 속의 가난이다. "저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하느님, 저를 돌봐 주셔요. 주님의 도움 없이 저는 살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라 고백할 때의 가난을 말한다. 자기가 무지(無知)함을  인정해야 배우려는 마음이 나오는 것처럼, 자신이 영적으로 가난해야 주님께 간절하게 기도하고 기댈 수 있는 것과 같다.
- '영적인 가난'이란 "하늘의 은혜, 자연의 은혜에 맡기면서 살려는 자세"라 설명한다. 내가 인공적으로 나의 안전을 구하지 않고, 하늘과 자연에 맡기고 의지하면서 살려는 태도이다. 스스로가 영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이런 자세가 나온다고 본다. '팔 복'을 영어 Beatitude라 한다. 이걸 풀면, "Be(존재)+Atitude(태도)"이다. 가난하려는 것은  존재의 자세 문제이다.
- 차신부님의 설명을 듣는다. 왜 영적인 가난이 중요한가? "사람들은 다들 '내 삶의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돈을 통해, 직장을 통해, 가족을 통해, 명예를 통해 그걸 구축한다. 그리고 안전장치가 버텨 주길 바란다. 그런데 이런 장치는 결국 무너지게 마련이다. 궁극적 안전장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너지지 않는 안전장치가 있다." 그게 영적인 가난의 태도를 지니는 것이다. 그래야 하느님께 나를 맡기고 의지할 수 있다.
- '영적인 가난'의 태도는 "이 세상을 소유하려 하지 않고, 누리려고 하는 거다. 내게 주어진, 이미 주어진 이 하늘의 은혜, 자연의 은혜를 누리는 거다." 그러면 하늘 나라가 영적으로 가난한 자의 것이 된다. 차 신부님은 우물 안 개구와 우물 밖 개구리의 차이로 설명한다. 우물 안 개구리는 집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를 보고 행복해하려고 한다. 그런데 우물 밖 개구리는 하늘에 달린 별을 보고 행복해 한다. 우물 밖 하늘을 보면 다시 우물로 들어가도 개구리의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여유 있고, 지혜롭고, 넉넉하고, 잘 살 수 있게 된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어떤 일을 하든지 자신의 뜻대로 하기보다는 하느님, 아니 자연의 힘에 맡길 줄 아는 자이다.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고 그 일 자체가 돌아가는 것을 볼 줄 아는 것이다. 초조해 하거나 조급해 하지 않는다. 그러니 행복한 것이다.

말을 좀 바꾸어 좀 세속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현 카톨릭 교종(한국에서는 '교황'이라 한다) 프란치스코는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빈다”고 기도 하며, “막대한 부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를 경고했다. 그리고 낮은 자세로 사회·경제적 약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껴안자고 말했다. 교종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저파(低派)’였다. 교종은 취임 후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독재이며 불평등이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경제적 문제”임을 계속 강조해 왔다. 한국을 방문하여, 교종은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싸우라”고 강론했지만, 우리나라 유력 일간지가 교황 방한을 축하하며 뽑 았던 기사 제목은 “돈이 도네요… 고마워요, 프란치스코”였다. 또한 교황은 “무한경쟁 사조에 맞서라”라고 강조했지만, 정부와 기업의 최상부는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제도와 문화를 아직도 찬미하고 있다.

교종이 지적한 문제는 단지 신심(信心)과 기도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세속의 정치, 법,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의식 있는 사람들이 연대하여 세상의 모순과 부딪치며 끈질기게 노력할 때 세상은 조금씩 바뀐다. 교종 자신이 “공동선을 위한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이기적”이라며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중립을 지켜야 하니 세월호 리본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답했음을 기억한다.

영적인 가난도 있지만, 실제 우리의 삶에서 물질적 가난도 심각하다. 해가 거듭될수록 빈부의 불평등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글이 너무 길어져, '팔 복'의 나머지를 열거하고, 나머지의 설명과 이해는 내일 아침으로 넘길 생각이다.
②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③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④ 행보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⑥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⑦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⑧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내일 수요일에는 나희덕 시인이 우리 동네에 강의 차 오신다. 저녁도 함께 먹을 수 있는 기회인데, 서울 강의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 그래 11월이 다 가기 전에 나 시인의 "11월"을 오늘 아침 공유한다. 자연은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모든 것은 겨울을 이길 만한 눈동자들이다." 내 방식으로 고쳐 기도한다. "행복하여라, 물질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월/나희덕

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져 뜯어 달아난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
나무는 눈물 흘리며 감사한다.

길가에 풀들을 더럽히며 빗줄기가 지나간다
희미한 햇살이라도 잠시 들면
거리마다 풀들이 상처를 넣어 말리고 있다

낮도 저녁도 아닌 시간에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에
모든 것은 예고에 불과한 고통일 뿐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모든 것은 겨울을 이길 만한 눈동자들이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_시하나 #나희덕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