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1월 16일)
어제에 이어, 오늘도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인생의 현자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알아본다. 지금 우리는 '인생의 현자'들에게 '지는 해를 즐기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일종의 '하강의 미학'이다. '인생의 현자'들은 나이 들어서도 충만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려면 노화에 대해 좀 더 긍정적인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늘은 현명하게 두려움 없이 나이 들기 위한 세 번째 조언이다.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은 없다"는 거다. '아직 오지도 않은 죽음을 미리 걱정하지 마라'는 거다. '죽음을 걱정하느라 불안해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는 거다. 대신 그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비해 계획은 잘 세워 두라고 한다.
인생의 현자들은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통계적으로 70세 이하의 사람들보다 죽음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 "날개 달린 시간의 전차처럼" 죽음이 그들 모두에게 "급속하게 다가오고 있다." 지금 얼마나 건강한지, 얼마나 활동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그들에게 죽음에 대해 물었더니, 놀랍게도 그들에게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죽음을 거부하는 모습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죽음에 대해 강렬하고 압도적인 공포를 느끼는 것은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인생의 현자들은 죽음을 자주 생각하지는 않으며, 젊었을 때보다도 덜 생각한다고 했다. 그들이 죽음에 관해 들려준 이야기들을 직접 들어 본다.
"사후의 생이 정말 있는지 나도 궁금해. 이제 알게 되겠지. 더 이상 그 문제로 성가시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곧 알게 될 테니." (90세) "자네도 어렸을 때는 잠자리에 들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나? 아프기라도 하면, '이러다 영영 못 일어나는 건 아닐까? 걱정도 하고 말이야. 난 더 이상 그런 생각은 안 한다네. 나이가 드니까 평화롭게 잠자리에 들게 되더군, 만약 내가 아침에 못 일어난다면 더 좋은 곳에 가 있겠지. 그냥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해. 나도 지금은 아니야. 당장 죽을 준비가 되었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죽음이 두려운 건 아니라네. 그저 삶의 다른 지평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곳에 가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도 있고, 전혀 걱정하지 않아. 나도 내가 죽음을 이렇게 받아들이게 되리라고 생각도 못했지." (90세)
흥미로운 것은 많은 인생의 현자들은 사후의 삶이 있다고 믿으며, 삶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직접 들어 본다. "삶이 곧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이지. 죽음을 생각하는 건 더 젊었을 때나 하던 일이야. 그때는 이런 생각을 했던 같군, '어떻게 내가 죽을 수 있지?' 어떻게 내가 살아 지지 않을 수 있지? 정말 당황스러운 기분이지.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어. 나에게 그리 많은 날들이 남아 있지 안다는 건 알아. 하지만 걱정은 안 해, 할 수만 있다면 매일 밤 나가고 싶은 것도 그런 이유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다 하고 싶어. 하지만 죽는 걱정은 안 해. 걱정은 커녕 생각도 잘 안 해. 진심이야."
비종교인들은 사후의 삶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현실적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고 안심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인정할 수만 있다면 삶이 훨씬 쉬워질 걸세. 나는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사후의 삶을 믿지 않아. 천국도 기대하지 않고 지옥에 떨어질까 걱정할 필요도 없네. 물론 정말 지옥이 있다면 아주 놀라겠지. 죽음을 현실적으로 바라본다면 살아가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걸세."
죽음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생의 현자들이 우리들에게 던지는 한 가지 조언은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두라는 것이다. 그들이 걱정했던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제대로 대비하지 못해 가족들에게 짐만 남기고 떠나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여정을 위한' 준비는 책임감 있는 행동일 뿐만 아니라, 든든한 위안이기도 하다. 특히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는 행위는 삶의 마지막을 정리한다는 의미로 살아온 모든 것을 정돈해 매듭을 짓겠다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다.
어제 읽은 노자의 <<도덕경>> 제50장이 삶과 죽음을 잘 이야기 했다. 우리의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기간을 소비하면서 죽어가는 것이다. 살아가는 연습도 중요하지만 죽어 가는 연습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주어진 사람을 성실하고 아름답게 살지만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의연함을 가져야 한다. 그게 삶을 제대로 향유하는 길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이 더욱 농밀해 진다는 거다. 많은 사람이 죽음을 나와 상관 없는 남의 일로 생각한다. 영원히 살 거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누구나 죽는다. "내일이 없어, 오늘이 전부야"라고 생각하면 지금이 가장 농밀한 순간이다. 그런 생각으로 사는 것인 농밀하게 사는 거다. 미국 예일대학에서 17년간 연속 최고의 명강의로 꼽히는 셸리 케이건의 <죽음 수업>이 <<죽음이란 무엇인가(박세연 역)>>로 번역되어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우리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하게 한다. 이 책을 권한다. 이 책이 말하는 것은 죽음의 상태를 규정하는 자세가 살아 있는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죽음을 물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삶을 살아낼 방식을 구하기 위해, 잘 살아야 하는 근거를 얻기 위해서라는 거다.
사실 죽으려 하면, 우리는 무서울 게 없다. 그리고 '나는 금방 죽는다'는 사실에 대한 체득은 언뜻 생각하면, 모든 것을 소멸시키고 포기해 버리려 할 것 같지만, 정반대로 내게 두려움 대신 순간을 영원으로 확장하려는 강한 의지를 준다. 여기서 '순간을 영원으로 확장한다'는 말, 즉 '순간에 대한 체득'은 필연적으로 영원성에 대한 갈망을 낳게 한다.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것을 흔들어서 무한 확장하려는 예술적인 높이의 도전으로 이끌어 준다. 그러니까 '죽음에 대한 체득'이 우리들의 삶을 튼실하게 북돋운다.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바람직한 일보다는 자기가 바라고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단지 우리는 타자의 죽음을 통해서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전부이다. 나에게 경험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죽음'으로만 존재하지 죽어 가는 일로서의 '사건'으로 의식되지 못하는 것이다. '죽음'은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죽어 가는 일'뿐이다. 체득은 '죽음'에 대하여 내용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사건'으로 직접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죽음의 구체적인 상황 비슷한 경우 속으로 나를 밀어 넣을 수는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금방 죽는다고 기억하고 의식하는 수밖에 없다. 튼실한 삶을 위해 죽음을 의식적으로 자주 불러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덜 찌질 해지고, 나 자신을 번잡하고 부산스러운 곳에 두는 일을 그나마 조금 덜 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급한 일보다는 중요한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오늘 아침 시는 어린 시절부터 알 던 것인데, 잊고 지냈다. 마침 어제 맨발 걷기를 하다가, 시 낭송을 유튜브로 들었는데, 거기서 만났다. 오늘 아침에 공유한다.
알 수 없어요/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유성관광두레 #사진하나_시하나 #한용운 #살아있는_동안_죽음은_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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