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1박2일로 남해의 독일마을을 다녀왔다. 카톡으로 매일 받는 한 자료에 의하면, 1965년에서 1975년까지 10년간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이 온몸을 던져 일궈 고국에 송금한 외화가 1억 153만 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이는 연평균 1천만 달러 수준으로 1967년 대비 GNP의 2퍼센트에 육박하는 수치였다. (참고로 광부와 간호사들의 임금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는 등의 이야기는 낭설이라고 한다.)
그 돈은 세계 최빈(最貧)의 나라가 그 늪에서 몸을 일으켜 박차고 나올 수 있었던 디딤돌 가운데 하나였다. "어디에 묻혀야 할지 분간이 안 간다."면서 자신이 왜 독일로 와야했던지를 의아해하는 이제는 백발이 된 광부와 간호사들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들은 3만 달러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 모두의 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 은혜를 일일이 갚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럴 수 없다고 한다면,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그들을 잊지 않는 일일 것이다. 그래 오늘 이 시를 공유한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인문운동가박한표 #사진하나시하나 #대전문화연대 #고정희 #와인비스트로뱅샾62
독일 광산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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