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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二兌澤, 이태택)'은 호수만을 뜻하지 않고, '호수 같은' 것을 의미한다.

290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8월 16일)

세상이 시끄럽게 분열되고, 날씨마저 연속되는 폭염으로 우울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위로를 주는 것이 연초부터 공부하기 시작한 <<주역>>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역(易)'을 받아들이니, 나의 고정된 인식 체계가 유연 해지면서, 마음이 열린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단순한 진리에 눈을 던지면서 변화하는 모든 것에 대해 너그러워지고, 그 변화를 읽어 내는 섬세한 감수성과 함께 인문 정신이 고양된다. 모든 변화의 한가운데서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알아간다. 그건 다음  세가지이다.
- 우주 자연의 생성 원리와 순환
- 인간을 인간으로 남게 하는 진정한 사랑
- 그 사랑과 함께 싹트는 연대 의식으로 이루어지는 대동(大同)의 이상

지난 9월 9일에 <<주역>>의 8괘 중 '☱(이태택, 연못)' 괘를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이 괘는 태상결(兌上缺-제일 위에 구멍이 있는 모습)로 '이태택(二兌澤)'이라 부른다. 오늘은 '☴(손하단, 巽下斷-제일 아래가 잘려진 모습으로 '오손 풍괘(五巽 風卦)'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다. 이 괘는 '바람'을 뜻하지만, 날아다닌 것은 새이든, 비행기이든, 먼지이든 '☴'으로 표현한다. 뿐만 아니라, '오손괘(五巽卦)' '☴'은 냇물도, 전해져 오는 소식, 새로움, 유행, 벌판을 뜻하기도 한다. 천천히 생각해 보면 바람과 닮아 있는 것이 많다. 길, 문, 열려 있는 것이고, 쏟아지는 물, 어린 아이의 걸음걸이도 '☴(손하단)'이다. 또한 새로 발생하는 기운찬 의미도 '☴'이다. 뿐만 아니라, '☴'은 여인의 부드러운 손길 같은 것이다. 부드러움은 바람과 같다. 또한 들판처럼 넓은 곳, 새롭고 어디론 가 통한 곳, 시원하게 달리고 있는 것 등도 '☴'이다. '☴(바람)'은 새로 발생하는 기운찬 의미를 지닌다. 

성격이 차분하고 내성적이며, 먼저 나서지 않고, 화를 잘 내지 않으며, 남의 말을 잘 받아들이고 자세가 단정하다면, 주역으로 분류할 때 '☱'(연못, 호수, 澤, 택괘)에 해당한다. '☱(二兌澤, 이태택)'은 호수만을 뜻하지 않고, '호수 같은' 것을 의미한다. 호수란 자연계에 실제로 있는 어떤 존재를 나타내지만, '☱(택괘)는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무수히 많은 사물이 갖고 있는 성질을 뜻한다. 호수는 그 중의 하나일 뿐이다. 예컨대, 한 여성의 성격이 ☱로 분류된다면 그녀는 수동적 타입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바람)'으로 분류되는 여성은 외향적이고 지도자 타입이다. 화를 잘 내지만  풀어지기도 잘 한다. 이른바 바람처럼 화끈한 성격이기 때문이다. '☴(바람)'인 여지는 행동을 먼저 한다. 생기발랄한 타입도 '☴(바람)'에 해당된다. 사람의 성격을 원래 알기가 어려운 법인데, '☱(호수)'와 '☴(바람)'으로 정해서 분류하니 조금이나마 알기 쉬운 것 같다. 어떤 것을 비교할 때, 우리는 더 그 구분이 분명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분을 좀 더 이어가 본다.

'☱(호수)'는 방안이고, '☴(바람)'은 벌판이다. 고향은 '☱(호수)'이고, 타향은 '☴(바람)'이다. 흐르는 것은 '☴(바람)'이고, 고여 있는 것은 '☱(호수)'이다. 현재 유행인 것은 '☴(바람)'이고, 필수품은 '☱(호수)'이며, 사치품은 '☴(바람)'이다. 온 세상은 '☱(호수)'와 '☴(바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 특히 만물의 상태를 알고자 한다면, '☱(호수)'와 '☴(바람)'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호수)'는 음이고,  '☴(바람)'은 양이다. 흔들리는 것은 양이고, 어쩐 틀에 갇혀 있는 것은 음이다. 어린아이는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가? 어린아이는 연못처럼 안에다 두고 보호해야 한다. 그렇기에 '☱(호수)'이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성품이 '☱(호수)'이면 아이들이 잘 자란다. 하지만 '☴(바람)'같은 어머니는 아이의 경쟁력을 키울 수도 있다. 어떤 성품이 더 좋은지는 알 길이 없다. 주역의 괘상은 선악이 따로 없다. 그저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 뿐이다. 

산책은 넓은 곳의 기운을 몸과 마음에 유입시키는 것으로 '☴(바람)'에 해당한다. 이는 우리의 생명체의 활동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바람)'은 노출을 의미하기도 하기에, 심약한 사람은 산책을 지나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데 있어서 주역의 괘상을 응용하여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또 하나 더 예를 들어 본다. 무술을 수련하는 사람은 방랑생활을 하는데, 이는 '☴(바람)'의 기운을 습득함으로써 자신을 강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런데 사람이 기력이 쇠약 해져서 병을 얻게 되면 '☴(바람)'의 기운을 차단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방 안에서 안정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방 안에서 머무는 행위는  '☱(호수)'를 뜻한다. 이처럼 주역의 괘상을 알고 나면 그것을 곧바로 사용할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본다.
-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사람은 '☴(바람) 손괘'가 많으므로  '☱(호수) 택괘'가 필요하다. 따라서 오랫동안 방안에 머무르면서 정신을 가다듬으면 혼란스런 운명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 운명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람은  '☴(바람) 손괘'의 기운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행을 통해 사람들과 교류를 늘려야 한다.
- 말이 많은 사람,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은 '☴(바람) 손괘'이다. 반대로 성실하고 예의 바른 사람은 '☱(호수) 택괘'이다.

주역은 아는 만큼 총명 해진다. 지혜는 원래 비교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다음은 언젠가 개인적으로 바람에 대한 생각을 적어두었단 것을 오늘 다시 공유한다. '바람'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온도나 기압 등의 차이 때문에 공기가 이동하는 현상'으로 대기가 이동하여 바람이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으로도 쓰인다. 일상 언어 중에는 '바람 피우다'란 말이 있는데, 한 이성에만 만족하지 아니하고, 몰래 다른 이성과 관계를 가지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주말농장을 해 보면, 야채가 햇빛으로만 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창문을 닫은 채 아파트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우면 잘 자라지 않는다. 아마도 바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바람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성장을 돕는다. 


고인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힘이 없다.
물 한 잔을 우묵한 곳에 부으면, 그 위에 검불은 띄울 수 있다. 
잔을 얹으면 바닥에 닿아 버린다. 물이 얕은데 배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바람이 두텁지 못하면, 큰 날개를 띄울 수 없다.
구만리 창공에 오른 붕새는 큰 바람을 타야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거침이 없이 남쪽으로 날아간다.


'바람'의 문제이다. 여기서 바람은 '신바람'이라는 말처럼, 우리 속에 움직이는 생기(生氣)를 의미한다. 실제 우리의 일상 속에서 신바람이 나면, 자신의 능력 이상의 실력을 발휘한다. 그리스어로는 '프뉴마', 히브리어로는 '루악', 산스크리트어로는 '아트만', '프라나' 그리고 한문으로는 기(氣)와 통하는 개념이다. 우리 말로는 숨, 숨결, 생기, 기운, 바람을 뜻한다. 장자는 제2장 재물론에서는 '하늘의 퉁소 소리'라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우리에게 말한다. 건조하고 무의미한 인간 실존을 뛰어 넘는 초월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려면, "바람을 타라, 생기를 찾아라 그리하여 활기찬 삶을 살라"고 말한다. 오늘 사진은 바람 맞고 있는 무궁화 꽃들이다. 문태준 시인의 산문집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라는 제목을 좋아한다. 이 책의 제목은 김용택 시인의 인터뷰 내용에서 얻었다고 한다. 그 내용이 찹찹한 최근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좋은 삶의 지혜로 삶을 만한 것이라 공유한다. 나무는 비가 오면 그냥 받아들인다. 맨몸으로 비에 젖는 나무가 된다. 눈이 오면 그냥 받아들여 눈이 쌓인 나무가 된다. 그리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된다. 그러니 나도, 나무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바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주역의 '☴(바람) 손괘'처럼 말이다. 바람처럼, 멈추지 않으리라.


멈추지 말라고/정공량

멈추지 말라고
흐르는 바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삶에 지쳐 세상 끝에 닿았다 생각되더라도
멈추지 말라고 멈추지는 말라고
흐르는 바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길은 어디까지 펼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길은 그 어디까지 우리를 부르는지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내일이 있기에 여기 서서
다시 오는 내일을 기다려 봅니다

누가 밀어내는 바람일까
흐느끼듯 이 순간을 돌아가지만
다시 텅 빈 오늘의 시간이 우리 앞에 남겨 집니다
내일은 오늘이 남긴 슬픔이 아닙니다
내일은 다시 꽃 피우라는 말씀입니다
내일은 모든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오직 하나의 먼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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