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는 75주년 광복절이었다. 한 신문의 기획보도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조선 민중들이 기뻤던 것은 8월16일뿐이었다” 해방 당일이던 15일 건준 출범을 위한 실무작업을 담당한 안재홍은 “8·15 이래 실망, 실망에 떨어져 들어가고 있는 민중이 기뻤던 것은 8월16일 뿐이었다고 개탄하고 있다”고 말했다. 70년 넘게 이어지는 분단과 골육상쟁의 비극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참이었다. 8·15는 일제의 압박 속에 시름하던 조선이 해방된 가장 기쁜 날이 동시에 지금까지 이어지는 질곡의 역사가 시작되는 가장 어두운 날이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그 다음은 대통령 축사의 다음 말이 인상적이었다. 광복절을 맞아 나라 뿐 아니라 개인들에게도 광복이 깃들었는지를 되물으면서 나라가 개인들의 행복과 희망에 보답하는 것이 진정한 광복이라고 말했다. '개인 광복론'이다. 인문운동가로서 나도 늘 생각해왔던 주장이다. 축사의 한 구절을 인용해 본다.
우리는 광복 75주년을 맞아, 과연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광복이 이뤄졌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저는 오늘, 75주년 광복절을 맞아 과연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광복이 이뤄졌는지 되돌아보며, 개인이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나라를 생각한다.” "2016년 겨울 광장을 메운 것이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의 정신이었다면, 이제는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는 헌법 10조의 시대이다.” “그동안 자유와 평등의 실질적인 기초를 탄탄히 다지고, 사회안전망과 안전한 일상을 통해 저마다 개성과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한 사람의 성취를 함께 존중하는 나라를 만들고자 노력해 왔다." “결코 우리 정부 내에서 모두 이룰 수 있는 과제라고 생각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을 국민들께 드리고, 확실한 토대를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 하겠다." 말로만이 아니라, 이젠 사회를 이런 식으로 개혁하겠다는 철저한 로드맵과 정책을 펼칠 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는 윤동주 시인의 <길>이다. 윤동주 시인은 그토록 염원하던 해방을 불과 반년 앞둔 시점에서 세상을 떠나셨다. 기구한 운명이다. 오늘 시 제목의 <길>은 인생 행로일수도, 우리가 다니는 길일 수도 있다. 시의 성격은 갈망하는 자유의 고백적 어조를 띤다. ‘잃어 버렸습니다’로 시작된 상실은 무엇일까? 구체적 언급이 없어서 상징적 의미로 가늠해본다. 화자가 가는 길이 자아성찰의 공간으로 다가오지만 돌담, 쇠문과 같은 시어는 의지를 가로막는 장애물 또는 단절의 의미로 읽힌다. 풀 한 포기 없는 길이란 게 불행한 개인사를 넘어 참담한 시대상황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절망에 매몰되지 않고 극복의 의지를 나타냄으로써 젊은이다운 미래지향적인 희망의 자세로 갈무리하고 있다. 아침 사진은 어린 백로가 날기 전에 걷는 연습을 하고 있는 현장을 지난 금요일 산책길에서 포착한 것이다. 아직 어려서 가까이 가도 날지 못했다. 아니면 어린 새가 어린이 마음처럼 맑아 무서워 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고 보았다.
길/윤동주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오늘은 조용한 일요일 아침이다. 그래 오늘 아침도 매 일요일마다 만나는 짧지만 긴 여운의 글들을 공유한다. 인문운동가의 시선에 잡힌 인문정신을 고양시키는 글들이다. 그리고 이런 글들은 책을 한 권 읽은 것과 같다. 이런 글들은 나태하게 반복되는 깊은 잠에서 우리들을 깨어나도록 자극을 준다. 그리고 내 영혼에 물을 주며, 생각의 근육을 키워준다.
1. 인간은 본질적으로 '길을 가는 사람'이다. 공간의 이동만이 아니라 현재에서 미래로의 이동,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과정도 길이다.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라고 하는데 '떠도는 사람', '길 위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방황하며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찾는 존재를 가리킨다. 호모 비아토르는 길 위에 있을 때 아름답다. 꿈을 포기하고 한곳에 안주하는 사람은 비루하다. 집을 떠나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진 사람만이 성장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항상 선택 앞에 놓인다. 한 가지 길의 선택은 가지 않은 많은 길의 포기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좋은 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류시화 시인의 답이다.
"그 어떤 길도 수많은 길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너는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하나의 길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을 걷다가 그것을 따를 수 없다고 느끼면 어떤 상황이든 그 길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마음이 그렇게 하라고 한다면 그 길을 버리는 것은 너 자신에게나 다른 이에게나 전혀 무례한 일이 아니다. 너 자신에게 이 한 가지를 물어보라. '이 길에 마음이 담겨 있는가?' 마음이 담겨 있다면 그 길은 좋은 길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길은 무의미한 길이다.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다면 그 길은 즐거운 여행길이 되어 너는 그 길과 하나가 될 것이다.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길을 걷는다면 그 길은 너로 하여금 삶을 저주하게 만들 것이다. 한 길은 너를 강하게 만들고, 다른 한 길은 너를 약하게 만든다."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나란히 걷는다. 행복의 뒤를 좇는다는 것은 아직 마음이 담긴 길을 걷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담겨 있다면 자신이 걷는 길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자신에게는 유일한 길이며, 다른 길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2. 지난 주는 틈나는 대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2권을 다시 읽었다. 언제 읽어도 즐겁고, 새롭게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마을대학>의 설립에 도전하는 즐거움이 크다. 돈키호테처럼 도전하고 싶은 거다. 창의적 도전은 집단적으로 함께 내달리던 정해진 방향에서 급선회하던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믿는다. 전진(前進)하다 역진(逆進)하는 사람은 두 방향을 다 경험하지만, 이 경험의 여정에는 전진과 역진이 교차하는 신비한 지점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이 바로 문화적이고 창의적이며 인간적인 활동의 시작되는 것이다. 이게 인문정신을 가진 자들의 활동이기도 하다. 이런 인문정신에서 나오는 창의력를 통해, 우리 인간은 변화를 야기한다. 그리고 변화를 야기하려고 시도하는 인간에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주체적이라고 말해준다. 반대로 누군가가 야기해 놓은 변화를 수용하거나 답습하기만 하면 종속적이라고 말한다.
"변화를 야기하는 쪽은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주체적이고, 변화를 수용하거나 답습하는 쪽은 종속적이다. 자유로운 인간은 한 곳에 멈춰 서서 머무르지 않고 별 소득이 없어 보여도 애써 어디론 가 건너간다. 이것을 문화적 활동이라고 한다. 이런 인간이 진짜 인간이다. 문제는 그들이 건너갈 그곳은 익숙한 문법으로는 아직 해석되거나 이해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곳은 무섭고 이상하다고 소문이 난다. 여기에 무모한 도전과 모험을 쑤셔 넣어 무서움에 균열을 내며,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꾸고, 닿지 않는 별을 잡으려 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진짜 인간이다. 진짜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다. [그런] ‘건너 가기’를 시행하는 자가 건너가는 자신을 직접 자각하고 경험할 때 그는 매우 ‘신비한 요동’ 속으로 빠지는데, 그것이 바로 황홀경이다. 이를 영어로 엑스터시라고 한다. ecstasy(황홀경)은 정해진 현재의 상태(stasis)에서 다른 곳으로 건너가는(ex) 자에게 오는 신의 선물이다.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나만의 여정을 떠나기 란 쉽지 않다. 과거가 나를 안정과 편안이라는 이름으로 유혹한다. 이 유혹을 떨쳐내려면 불편하고 낯선 미지의 세계로 자신을 진입시켜야 한다. 어제의 상태로부터 자신을 강제로 이탈시키는 행위를 '엑스터시(ecstasy)'라고 한다. 엑스터시는 흔히 무당이 경험하는 입신의 경지나 마약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자신의 과거나 사회가 부여한 수동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가려는 투쟁'을 의미한다. 무아의 상태로 진입하려는 마음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이다. ‘건너가는 자’는 아직 명료하게 해석되지 않은 것이 주는 공포와 위험(險)을 뒤집어쓰지(冒) 않을 수 없다. 모험(冒險)이다. 이러하니 모험(冒險)은 인간이 존재론적 의미에서 위대한 탑을 쌓는 첫 번째 벽돌이다." (최진석, 새말새몸짓 이사장)
3. "돈키호테는 인간의 ‘첫 벽돌’을 움켜쥐고 일반화된 자신(stasis)을 넘어서서(ex) 고유하고도 특별한 각성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높은 자가 되었다. 돈키호테를 뺀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그를 미쳤다고 했다. 돈키호테는 우선 주위의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쾌락을 나누던 취미인 사냥을 끊었다. 살아봐서 알지만, 친구들과 공유하던 취미를 혼자만 끊는 것도 어지간해서는 힘들다. 친구들로부터 미친놈이라는 소리까지 들을 각오를 해야만 겨우 가능하다.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가 미치기 위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생각과 취미를 공유하던 친구들을 끊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발짝 더 나아가 가진 땅을 팔아 책을 샀다. 책을 읽기 위해 땅을 팔고 사냥을 끊는 일이 미치지 않고 가능하겠는가. 책으로 단련한 지적 탄력이 가장 강력하다. 읽는 양이 많아지고 탄력이 커지면, 경계를 넘고, 다시 또 넘고 하다가 결국 황홀경에 빠져 미친다. 결국 자신만의 세계로 진입하여 자신 만의 고유한 영토를 갖게 된다. 핵심은 주변의 시선이나 박수나 평가 등등을 과감히 무시하고, 자신 만의 세계로 스스로를 유폐 시키는 일이다." (최진석, 새말새몸짓 이사장)
4. "돈키호테는 ‘우리'에서 자신을 탈출 시켜 완전 고립을 완수한다. "유폐된 자가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신의 눈으로 자신 만을 바라보게 되면 황홀경에 빠져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풍차라고 하지만, 그에게는 거인이다. 모두가 양떼라고 하지만, 그에게는 군대다. 모두가 다 순례자라고 하는데도 그에게는 악당이다. 돈키호테의 종자인 산초 판사도 그것들과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미친 돈키호테는 승패를 미리 가늠하려고 애쓸 정도로 자잘하지 않다. 이길 수 없거나 닿을 수 없다고 미리 판단하여 물러서는 좀팽이는 아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도 그냥 하고, 닿지 않은 별이라도 그냥 따러 나설 뿐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에 빠지고, 책에 미쳐 전답을 처분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할 수 없다. 황홀경에 빠진 자들만 불가능에 도전한다. 꿈을 꾼다. 계산이나 견적이 분명한 것들은 꿈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다 그럴 듯해 보이는 계획일 뿐이다. 불가능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것, 즉 명료하게 해석되거나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꿈이 아니다. 꿈이 바로 모험이고, 모험이 '건너 가기'이며, 건너가는 자가 진짜 인간이다. 돈키호테는 이렇게 해서 진짜 인간에 등극한다." (최진석, 새말새몸짓 이사장)
5. 돈키호테는 “미쳐 살다가 정신 들어 죽었다.” 혼자로 미쳐 살면서 자기만의 언어를 구사하다가, 제 정신으로 돌아와 누구나 사용하는 정상적인 언어를 구사하면서 죽는다. 비정상으로 살 때는 자기였는데, 정상으로 돌아와서는 우리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미쳤을 때는 풍차에도 덤볐으나, 정상으로 돌아와서는 고작 흔해 빠진 유언과 고해나 준비하는 자잘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크고 굵게 살다가 좀팽이로 죽었다. 그렇다면 세상을 향해 돈키호테가 하고 싶었던 단 한 마디의 말은 무엇일까? ‘돈키호테’ 안에서 다 버리고 단 한 줄의 문장만 남긴다면 무엇을 남길까? 나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이 문장을 고른다. “쪼그라진 심장부터 쫙 펴십시오. 그러면 나쁜 운수도 부수어 버립니다.” 우선 쪼그라진 심장부터 쫙 펴자! 좀팽이처럼 자잘해 지지 말고, 크고 굵게 살자. (최진석, 새말새몸짓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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